한의표준질병사인분류 개정안에 대한 의견
상태바
한의표준질병사인분류 개정안에 대한 의견
  • 승인 2006.07.28 11: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webmaster@http://


“한의상병명 없는 개정안은 잠재 위험성 커”

지난 7월 22일 대한한의사협회 보험위원회 주최로 한국한의표준질병사인분류 개정방안에 대한 공청회가 열렸다. 표준질병사인분류는 보건통계의 집계를 위해 WHO에서 국제질병분류(ICD)를 제정하고 있으며, 세계 각 나라가 이의 번역본 혹은 자국 실정에 맞게 수정하여 사용하는데 우리나라는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가 이 역할을 하고 있다. 다만 이에 사용되는 상병명이 양방기준으로 되어 있으므로 한의학분야에 맞추어 한의표준질병사인분류가 1973년 처음 제정되었고 1979, 1994년 2차례 개정된 바 있으며, 현행 한국한의표준질병사인분류(KCDO, 1994)가 갖고 있는 여러 문제로 인해 1999년부터 개정작업이 진행되어 왔다. 이날 공청회에서 제시된 개정(안)의 골자는 KCD의 전면 수용과 한의변증분류를 병기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하에서는 개정안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논하고 그 개선방향에 대하여 제안코자 한다.

1. 문제점

이 개정(안)의 문제점은 ①정부측(통계청)의 개정요구사항이 없음 ②한의상병명이 누락됨 ③한의사의 양방진단 능력에 대한 신뢰성 검증이 없었음 등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정부측의 요구사항 문제에 관하여.
KCD의 발행은 통계청이 주관한다. 현행 KCDO(1994)는 통계청고시 1993-3호에 의해 대한한의사협회가 발행하고 통계청이 감수했으며, 책자는 93-24-6-71이라는 정부간행물 심의필 번호를 갖고 있다. 그러나 어찌된 연유인지 모르겠으나 통계청에서는 이 책의 발행에 대해 모르겠다 하여 정부간행물로서의 공적 신뢰성을 부인하고 있는 실정이다(한창호 대한한의학회 이사). 말하자면 현행 KCDO는 법적 효력이 없는 혹은 공적 문서가 아닌 임의 발행 책자인 셈이다.
따라서 3차 개정 작업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개정(안)이 통계청의 승인을 받아 법적 효력 혹은 공적 신뢰성을 확보하는 것인데, 필자가 확인한 바로 주최측인 보험위원회의 자료로는 개정작업의 근거가 될 통계청의 개정요구가 없었다. 작업의 진행과정에서 선후가 뒤바뀔 수는 있으나(개정안 마련후 정부와 협의하는 등) 이 부분이 확실치 않으면 개정작업 자체가 무의미할 수도 있음이다.

둘째 한의 상병명의 누락에 관하여.
개정(안)은 양방병명으로 진단하고 한의변증을 병기토록 하고 있으나, 개정(안)이 통계청의 승인을 거쳐 공식문서가 되지 않을 경우 한의사의 공식적인 진단은 양방상병명이 되고 한의변증은 부가적인 임의기술이 될 뿐이다. 현행 KCDO는 한의상병명, 변증명, 증상명이 섞인 채로 있는 것이 문제이나 개정(안)처럼 아예 한방상병명이 빠져있지는 않다.
한의변증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기는지 모르겠으나 한의상병과 병증, 증상 등은 각기 그 개념의 레벨이 다른 것이며, 병명이 아닌 변증명만으로 질병분류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넌센스일 뿐이다. 개정(안)에서 한의 상병명이 누락된 것이 갖는 잠재적 위험성은 매우 큰데, 이는 질병인식의 주체성이 없어져서 한의사의 정체성이 치료수단(침, 뜸, 한약)으로 제한되며 나아가 의료일원화 논의의 근거가 될 것임을 지적해 두고자 한다. 학문적으로나 이후에 미칠 정치적 파장 등을 감안할 때 매우 위험한 발상으로 결코 좌시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셋째 한의사의 양방진단에 대한 신뢰성 검증에 관하여.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시행한 개정(안)의 시범적용연구결과에 따르면 약 절반(54%)이 찬성하고 시행을 위해서는 교육과 사용지침서가 필요하다고 하였는데, 아쉽게도 시범적용에 참여한 한의사의 양방진단이 맞는 것인지에 대한 검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개정(안)에 대한 한의사의 선호도와 그에 필요한 후속작업은 언급했으나, 시행 자체가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에는 기여한 바가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건대 한의사가 양방진단을 하려면 대학 및 수련병원에서 양의학 교육이 이루어져야 할 뿐 아니라, 한의사가 각종 진단기기를 사용할 수 있어야 진단이 가능하다.
요컨대 개정(안)이 시행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요구가 확인되어야 하고, 한의학 교육이 전면 개편되어야 하며, 한의사가 의료기사 지휘권을 획득하여야 가능하다. 개정안에 대한 찬성측 논리는 산재나 자동차보험의 요양급여 청구를 위해 필요하다 하고 있으나 이처럼 개정안이 갖는 의미와 영향력을 감안하면 견강부회요 자가당착일 뿐이다. 만약 의료일원화 혹은 의료기사 지휘권이 필요하다면 당당하게 별도의 토론장을 만들 일이지 지금처럼 한의사협회 보험위원회가 주관할 일이라 할 수 없다.

2. 대안

WHO는 ICD의 11차 개정판(2008년 예정)에 별도의 장을 신설하여 세계전통의학의 상병명을 수록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하여 WHO 서태평양지역본부에서는 동아시아 전통의학의 국제질병분류를 위한 회의(Informal Consultation on Development of 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East Asian Traditional Medicine, 6-8 June 2006, Seoul, Korea)를 개최한바 있고, 한국·중국·일본·베트남·호주 등의 국가가 참여하여 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n Traditional Medicine (ICTM)을 제정키로 합의하였다.
아직 계획단계에 있어서 향후 일정과 그 최종결과물에 대해 예단하는 것은 적절치 않으나 ICD-11의 예정 발간년도에 맞추어 빠르게 진행될 것이고, 최종결과물에는 한의병명과 변증명이 수록될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KCD는 ICD의 번역/수정본이므로 한의상병명과 변증명을 수록한 ICD의 개정은 KCD의 자연스런 개정을 이끌게 된다.
그러므로 통계청의 개정요구도 확실치 않고 그에 따라 개정(안)이 공식적인 정부문서화되는 것도 확실치 않으며, 한의상병명이 빠져서 자칫 한의학의 학문적/의료사회적 정체성이 의문시되는 것보다는 WHO의 ICTM 계획에 맞추어 현행 KCDO의 문제점을 개선보완한 안으로 ICTM 계획에 적극 임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한의 상병명에는 양방의 상병명으로 대체할 수 없는 고유의 질병 개념들이 많다. 1996년 우리나라 양의사들의 노력으로 화병이 미국정신의학회에 ‘hwa-byung’, 문화적경계의 증후군(culture-bound syndrome) 중의 하나로 등록된 바 있다. 하물며 양의사들도 우리 사회 고유의 질병개념을 버리지 않는데,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질병개념을 버려야하는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