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열 칼럼] 한의학 지식과 정보를 흐르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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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열 칼럼] 한의학 지식과 정보를 흐르게 하라
  • 승인 2006.12.0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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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미래 포럼에 관여한 뒤로 협회통신망을 비롯해 인터넷 게시판을 방문하는 일이 잦아졌다. 한의사들의 최근 관심사와 한의계가 돌아가는 사정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이 중 가장 활발하고 재미있는 곳은 역시 청빈협 게시판이다. 조금 거칠기는 해도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자주 들른다.

요즘 청빈협 최고의 인기 스타는 ‘초간단원장’이다. 자칭 ‘초간단’ 임상에서부터 처방, 본초까지 회원들이 질문을 올리면 자신의 경험을 상당히 논리정연하게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답변을 올린다. 청빈협 회원들이 ‘초간단원장’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야말로 ‘초 간단’하다. 한의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부분의 임상강의가 높은 수강료를 요구하는데 비해 ‘초간단원장’의 지상 강의를 수강하는 데는 돈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청빈협 회원들은 돈을 받지 않고도 자신의 임상경험이 배어있는 지식을 제공한다는 사실 그 자체에 감동하고 있다.

한의계 안에서는 언제 부턴가 돈이 학술적인 지식이나 정보의 유통을 가로막는 높은 장벽이 되어 버렸다. 개원가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강의들은 그 질을 불문하고 높은 수강료를 지불해야하는 것이 관행처럼 굳어져있다. 개원가에 만연한 지나친 상업주의가 한의학 지식과 정보를 자유롭게 흐르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것이다.

제도권의 중심인 한의과대학, 병원과 개원가 사이의 지식 유통은 어떨까? 필자가 보기에 가장 큰 문제는 대학이나 병원이 개원의들이 필요로 하는 지식을 생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종류의 지식 생산에는 관심이 없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주된 관심은 SCI 논문이나 대단히 협소한 의미의 한의학 과학화 프로젝트에 쏠려있다. 병원에서 생산해 내는 임상 논문 또한 높은 수준의 EBM만 겨냥하고 있어 개원의들이 일차 의료 기관에서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임상지식이나 기술 생산과는 거리가 있다. 속된 말로 ‘그들만의 리그’인 셈이다.

반면 개원가에서 개발되어 유행하는 임상기술과, 형상의학이나 재야파 사상의학 등 개원의들이 선호하는 변증기술에 대한 교수들의 평가는 그 잣대가 지나치게 엄격하다. 개원의들이 만들어내고 사용하는 지식과 기술의 수준이 교수들이 보기에는 화려한 포장에 비해 알맹이가 없거나 체계적이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교수들은 이런 지식이나 기술 중에서 가치가 있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해서 체계적으로 발전시켜야할 책임이 자신들에게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학교와 개원가 사이에 장벽을 높이 쳐 놓고 개원의들의 임상을 무시하고 비판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이런 점에서 경희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다양한 무학점 강의들은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필자가 걱정하는 것은 한의계 내에서 지식과 정보가 원활하게 유통되고 있지 못한 것이 결국은 한의계 내부의 의사소통 단절로 이어지고 이것이 한의계의 미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국내외에서 진행되고 있는 생의학(biomedicine)과 대체의학의 통합, 의료시장의 신자유주의적 변화, 정부의 의료정책 방향, 보건의료 각 단체 사이의 정치적 역학관계 변화 같은 것들이 한의학의 미래를 결정할 외부 변수라면, 협회· 학회를 중심으로 한 한의계 내 중심 그룹들 사이의 정치적 역학관계, 대학·병원·연구기관의 연구역량과 연구 방향, 개원가의 임상 수준과 방향, 임상 치료기술 개발 정도, 표준화 수준 같은 것들은 내부 변수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지난 번 의철학회 세미나에서 서울대 보건대학원 조병희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한의계에 현안들을 토론하고 다양한 정책 담론을 만들어낼 수 있는 내부 역량과 구조가 취약한 상태에서 한의계와 한의학의 미래가 외부 변수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이끌려가고 있다는 점이다. 한의학 미래 포럼을 만든 이유기도 하지만 한의학의 미래를 우리가 책임지기 위해서는 한의계 내부의 활발한 의사소통을 통해 외부 변수들에 대처할 수 있는 내부 역량을 키워야 한다. 그것의 첫걸음이 바로 한의계 각 그룹이 가진 지식과 정보가 원활하게 흐를 수 있도록 서로를 인정하면서 우리 스스로가 쌓아놓은 온갖 장벽들을 허무는 것에 있다.

필자 e-mail : cylee@kyungw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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