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 입증책임 의사 전가는 ‘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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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사고 입증책임 의사 전가는 ‘폭탄’
  • 승인 2007.09.14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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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증 수단 절대 부족, 방어진료 조장 우려
한의계, 의료사고피해구제법안 결사 반대

지난달 28일 의료사고 예방 및 피해 구제에 관한 법률안(이하 의료사고 피해구제법)이 전격적으로 국회보건복지위 법안소위를 통과하자 의료계는 즉각 폐기를 요구하고 나섰다.
대한한의사협회, 대한의사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조산사협회,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대한의료기사단체총연합회 등 6개 보건의료단체는 지난 10일 성명을 발표해 “20년간 첨예하게 논의해온 의료사고피해구제법을 하루아침에 전격 심의·가결시켰다”면서 “중차대한 법안을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차관의 분명한 문제제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의료계의 의견을 배제한 채 시민단체의 안으로만 통과시킨 것에 대해 매우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이들 단체는 법안의 문제로 법안명의 불평등성, 의료인에게 입증책임 전가, 임의적 조정전치주의 도입, 형사 처분특례, 과실책임주의 등을 적시했다.
특히 의료사고의 입증책임을 기존에 환자에게 지우던 것을 의료인으로 전환한 점을 심각한 사태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의료계는 의료인에게 입증책임을 전가한 것은 의료인의 진료위축과 불필요한 과잉 사전검사를 조장하고, 결국 환자들의 부담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필요악의 제도적 장치라고 비난했다.

의료단체들은 나아가 법안이 확정되면 환자의 부담 증가와 의사의 소신진료가 철저히 봉쇄돼 환자와 의료인간의 신뢰가 무너져 환자의 피해는 물론 국가 보건의료체계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소위를 통과한 법안대로 확정될 경우 의료사고가 아닌 것도 의료사고로 둔갑될 수 있다는 게 의료인들의 한결같은 우려였다. 더욱이 피해보상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방안으로 공제조합 가입은 임의적 규정으로 하는 대신 책임보험 가입을 의무화해 보험료 납부-수가 반영-의료비 상승이라는 연쇄반응이 예상되고, 보험회사는 의료사고가 많은 행위를 제외할 개연성이 높아 이래저래 의료인의 피해가 커질 것으로 예상됐다.

의료인 중에서도 한의계의 피해가 더 클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됐다. 진단기기의 사용이 제한돼 있는 한의사들은 상대적으로 의료사고를 객관적으로 입증하기 곤란하기 때문이다. 가령 침 맞고 아프다 해도 한의사는 ‘아니다’고 반박할 수단이 없고, 자칫 양의사의 개입만 불러들이는 사태가 초래돼 ‘폭탄’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유기덕 한의협 회장은 “한방은 입증방법이 쉽지 않다”면서 “법 제정에 무조건 반대한다”고 밝혔다.
법률전문가들은 이 법안이 일부 타당성이 있지만 문제점도 있다는 의견이다. 국회 전문위원은 검토보고서에서 “과실에 대한 입증책임 전환으로 방어진료를 조장할 우려가 있다”고 “보완책이 검토돼야 한다”고 건의했다.

법률적으로도 입증책임 전환은 법률상 분쟁에 있어 상반되는 당사자간 대등한 무기를 부여해야 한다(武器對等의 원칙)는 기본원칙을 크게 훼손해 바람직하지 않고, 오히려 입증책임전환을 인위적으로 법제화 하지 않더라도 민법이 입증책임을 합리적으로 분배하고 있으므로 민법을 준용하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견해도 제시됐다.
이런 비판에 따라 지난 11일에 열린 제269회 국회 제1차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 문제를 논의한 결과 법률안 처리를 연기하고 오는 10월 12일에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를 재개하여 법안 처리 여부를 결정키로 했다.

법안 처리가 연기됨에 따라 의료계는 급한 불을 끌 수 있게 됐지만 대통합민주신당 소속 의원들이 반드시 통과시킨다는 입장을 밝혔는데다 오랫 동안 논의절차를 거쳤다고 인식하는 의원이 많고, 경실련 등 시민단체마저 시민의 여망을 담은 법이라면서 국회를 압박하는 중이어서 법 통과 저지가 만만하지 않은 상황이다.
한편, 한의협은 환자들이 권리를 주장하는 경향이 보편화되면서 분쟁사례가 증가한다는 데 주목하고 침시술로 인한 대표적인 의료사고인 ‘기흉’을 예방하기 위한 연구를 학회에 의뢰할 계획이다.

민족의학신문 김승진 기자 sjkim@mj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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