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열 칼럼] 한의학에 대한, 그리고 한의사로서의 자부심 회복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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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열 칼럼] 한의학에 대한, 그리고 한의사로서의 자부심 회복이 시급하다
  • 승인 2008.01.18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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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새해 벽두부터 한의계 안팎이 시끌벅적하다. 서양의학 진영의 한의학과 한약에 대한 조직적인 폄하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건만 이대로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다는 일선 한의사들의 결기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 바닥까지 떨어져 있는 한의사들의 사기를 생각할 때, 새로운 한 해를 또 이렇게 시작해야 하는 한의계의 처지를 생각할 때 안타까운 심정을 금할 수 없다.

지금처럼 한의학과 한의사의 사기가 땅에 떨어진 적이 있었던가? 불과 10여 년 전의 한약분쟁 때만 하더라도 한의사들의 한의학에 대한 자부심과 한의사로서의 자부심은 상당했다. “민족의학”이라는 구호에 가슴 뿌듯해 했고, 누구와 논쟁해도 당당했으며 한의학에 대해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불과 10여 년 사이 상황은 급변했다. 무엇이 한의사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첫 번째는 급격하게 변하는 의료 환경에 한의학과 한의사들이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한 것이다. 신자유주의 바람을 타고 의료계에도 상업화, 산업화의 바람이 불었다. 의료 소비자들의 욕구는 한없이 높아졌고 신성한 인술로만 인식되던 의료에도 자본이 결합하고 의료는 상품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일부 발 빠른 한의사들은 프랜차이즈 개념과 제도를 한의계에 도입해서 이 파고를 넘으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이런 변화 속에서 미처 해법을 찾지 못한 많은 한의사들은 방향을 잃고 우왕좌왕했다. 협회는 회원들에게 이런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주지 못했다. 협회장이 임기 도중에 낙마하는 사태가 반복되면서 협회의 리더십은 회원들의 조롱거리가 될 정도로 약화되었다.

두 번째는, 서양의학 진영과의 공존 구도가 깨진 것이다. 서구에서 부상한 보완대체의학은 한국의 양의사들에게도 자신들의 의료 영역을 넓힐 수 있는 새로운 도전과 기회로 인식되었다. 지금의 서양의학은 본래 세균설에 기초한 특정 병인설을 이론적 토대로 삼아 발전해 온 의학이다. 서양의학은 많은 전염병들을 정복함으로써 인류의 건강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그러나 이런 감염질환들이 어느 정도 극복되고 인간의 평균 수명이 획기적으로 늘어나자 질병 양상은 점차 만성병과 퇴행성, 암, 면역질환이 증가하는 추세로 바뀌었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의 서양의학은 고비용, 저효율의 의학으로 전락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 동안 민간에서 많이 활용해 왔고 비교적 저렴한 치료비가 드는 보완대체의학에 눈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서양의학 진영의 조직적인 한의학 죽이기는 이런 맥락에서 “과학”이라는 잣대를 앞세워 서양의학적 헤게모니를 한의학에도 확대해 나가려는 시도에 다름 아니다.

한의계를 둘러싼 의료 환경의 급격한 변화는 한의학, 한의사들에게도 많은 변화를 요구했다. 그러나 한의사들은 아이러니하게도 “한의학”을 포기하고 마케팅이라는 유행을 좇았다.
한의사들이 이처럼 쉽게 “한의학”을 포기할 수 있었던 것은 한의학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주지도, 한방 임상의 확실한 컨텐츠도 제공하지 못했던 한의대 교육이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러나 우리는 냉정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들은 한의사다. 그리고 국민들은 한의사에게 한의학 전문가이기를 기대한다. 최근 급격하게 부상하고 있는 의료일원화, 의료통합 논의만 해도 그렇다. 한의사가 양의사와 비교하여 한의학 전문가로서의 자질과 위상을 확실하게 갖추고 있지 못하다면 한의사들에게 어떤 입지가 있을까? 서양의학 전문가는 양의사들로 족하다. 한의사까지 서양의학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다. 한의사들이 한의학 전문가로서의 위상을 굳건히 하고, 한의학에 대한, 한의사로서의 자부심을 회복하는 것 그것이 이 위기의 파고를 넘어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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