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허준의 후예, 故 류호균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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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허준의 후예, 故 류호균 원장
  • 승인 2009.01.28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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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의 삶 … 영원한 한의학 등불로 남기를

새해를 맞이한 지 불과 3주가 지났을까? 지난 15일,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故 류호균 원장(서울 은평구 세명한의원·대구한의대2기·사진)의 갑작스러운 영결 소식에 그를 알고 있는 모든 이들이 슬픔에 빠져있다.
고인은 생애 동안 KOMSTA( 대한한방해외의료봉사단)의 부단장으로, 대한약침학회의 회원으로 그리고 그의 의술이 허락하는 한 세계 곳곳에 인의를 실천하는 한의사로 활동하였기에 고인을 떠나보내는 이들의 슬픔과 아쉬움은 더욱 클 것이다.

인천이 고향인 고인은 대구한의대 2기로 입학해 의료인으로서의 꿈을 키웠다. 학생 때 큰 수술을 받아 학교를 2년 간 휴학하면서 환자의 심적 고통을 느꼈기 때문인지 복학 후 동기들과 후배들에게 자주 의료봉사를 묻고 실천하며 권유했다고 전해진다.
고인이 KOMSTA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99년, 당시 단원으로 베트남과 캄보디아로 첫 원정을 떠나면서부터다. 이후 한해에도 몇 차례 해외봉사를 떠났던 고인의 봉사에 대한 열정과 정성을 인정받아 지난 2004년 4월 18일 김호순 KOMSTA 단장의 취임과 함께 부단장이라는 중책을 맡게 된다.

단원이 아닌 부단장이라는 책무를 지고 떠난 그의 첫 해외 봉사지는 필리핀. 그의 다년간의 해외봉사 경험과 뛰어난 의술 그리고 당시 봉사단원들의 일치단결된 모습으로 마닐라에 위치한 Makati와 65km 떨어진 Cavite 지역은 봉사기간 동안 무려 2200여명의 현지주민들이 찾아왔고 그들 모두 연신 ‘말라밍쌀라무뜨(감사합니다)’를 외쳤다고 한다.
그의 이러한 봉사자로서의 삶은 의술로 백성을 구한다는 한의학의 ‘의술제민(醫術濟民)’의 정신과 어린 시절부터 길러진 독실한 가톨릭 신앙이 결부됐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함께 봉사활동을 펼쳤던 지인들에 따르면 그는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싫은 내색 하나 없고 묵묵히 봉사활동을 펼치던 우직하고 따뜻한 성품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오랜 시간 고인을 곁에서 지켜봤던 문구병 서대문·은평구 사무국장은 “고인이 처음 은평구에 개원했던 1994년 10월이 지금도 기억난다”며 “건강한 체구에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의 한의사가 지역민들에게 의료봉사에 정말 열심이었다”고 회상했다.
문 국장은 지금도 그의 죽음이 믿어지지 않아 몇 번이나 장례식장을 다녀왔다고 한다.
고인은 봉사자로의 삶뿐만 아니라 대한약침학회의 창립 멤버로 한의계 발전에 이바지했다. 그는 학술적 연구뿐만 아니라 학회의 소식지에서부터 회원관리, 연구발표 등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헌신해왔다.

몇 년전 약침학회가 약사법 위반혐의로 회원들이 노량진 경찰서로 조사를 받을 때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회원들의 구명에 힘썼다고 한다.
고인과 막역한 사이였던 강동철 KOMSTA 감사는 “대학 때부터 촉망받는 한의사이자 자신의 학문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청춘을 받쳤던 친구였다”며 “고인은 분명 그의 가족에게는 훌륭한 가장이었고 우리 한의계에는 진정한 의료인의 자세를 보여준 소중한 동료였다”며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한의학의 참된 의미와 봉사의 삶을 실천했던 고인을 떠나보내며 그의 삶이 우리 사회와 한의계를 비추는 영원한 등불로 남길 기원한다.

민족의학신문 최진성 기자 cjs5717@mj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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