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 History(9) | 고려시대의 의사국가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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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History(9) | 고려시대의 의사국가고시
  • 승인 2010.01.18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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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웅석

차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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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광종 9년 본격 도입
암기해석 논술 총 10문제

동아시아역사에서 국가고시, 즉 과거제도하면 빠지지 않는 사람이 중국역사의 유일무이한 여자황제 당나라때의 측천무후(628-705)이다. 그녀는 권력의 정점에 올라서고 나서도 많은 정적들때문에 힘들어했고, 심지어는 자기 아들들까지 사형을 시키고 유배를 보내는 고군분투하는 정치생활을 보낸 황제이다. 그런 측천무후가 자신의 세력을 키우기 위해 이전의 제도를 손질해서 본격적으로 정착시킨 것이 과거제도이다.

우리나라에도 유사한 배경으로 과거제도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는데, 958년 고려 광종(재위 949-975) 9년의 일이다. 태조왕건의 4남인 광종은 단명한 두명의 형[혜종(33세졸), 정종(26세졸)]을 이어 고려의 4번째 임금이 되며, 고려의 국가체제를 대대적으로 정비한 인물로 알려져있다. 그가 고려를 명실상부한 통일국가로 재정비하기 위한 가장 큰 걸림돌은 아이러니하게도 고려건국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아버지의 전우와 동지였을 지방호족들이었다. 그래서 재위7년에 ‘노비안검법’을 실시해서 사실상의 호족들의 사병을 혁파하고 재위9년에는 중국인 雙冀의 건의를 받아들여 ‘과거제도’를 전면 도입해서 지배구조의 대대적인 개편을 추진하였다.

이렇게해서 실시된 고려시대의 과거제도는 製述科, 明經科, 雜科의 체제를 점차 갖추어 우리나라의 명실상부한 인재양성의 창구역할을 하게된다. 醫業式, 즉 의사국가고시는 卜業, 地理業, 등과 함께 잡과의 하나로 시행되었고 이 의업식은 다시 醫業과 呪禁業으로 구분하여 실시하였다. 등과한 자에게는 7품을 품계를 주고 능력여부에 따라 4품까지의 승진도 가능하였다. 정부로부터 받는 급여도 직급에 따라 달랐지만, 당시 정부관료들에 비해서 그다지 차이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손홍렬, 조선중세의 의료제도연구, 수서원, 1988)

의업의 시험과목은 素問經, 甲乙經, 本草經, 明堂經, 脈經, 鍼經, 難經, 灸經이었고, 이 중에서 소문경, 갑을경, 본초경, 명당경이 소위 말하는 메이저과목들이었다. 외우는 문제, 해석하는 문제, 논술문제가 각각 10문제씩 출제가 되었고 이 10문제중에 6문제를 통과해야만 합격했다. 주금업의 시험과목은 脈經, 劉涓子方, 癰疽論, 明堂經, 鍼經, 七卷本草經 등이었는데 이중에서도 맥경과 유연자방(옹저및 외과치료전문서)가 메이저과목이었다. 주금업은 과거 주술적 방법으로 의료행위를 하던 전통에서 비롯된 용어로 이름은 ‘呪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이미 외과적처치 혹은 침구술을 위주로 하는 의료행위로 명과 실은 이미 바뀌었다.

이제 얼마후면 한의사국가고시가 치러지고, 수백명의 신규한의사들이 배출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몇명쯤은 총점420점에 60%인 252점을 채우지 못해서 다음 기회를 기약해야할것이다. 현재의 대학교육에서도 60%가 대략적인 낙제의 한계선이다. 언제부터 누구에 의해서 60%의 점수가 합격선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고려시대의 의사국가고시의 합격선도 100점만점에 60점이었다는 사실에서 시대를 초월한 인간심리의 묘한 공통점을 느끼게 한다.

차웅석/ 경희대 한의과대학 의사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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