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 History(10) | 종이혁명과 한국한의학과의 관계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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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History(10) | 종이혁명과 한국한의학과의 관계➀
  • 승인 2010.01.21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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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웅석 교수

차웅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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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역을 대상으로 치료기술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는데, 그 결과물이 16,834개의 처방을 수록한 <태평성혜방>, 20,000여개의 처방이 담긴 <성제총록>이다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로 대표되는 미국의 IT혁명의 시작은 그야말로 세계의 사회, 경제, 정치, 문화의 질서를 바꾸어 놓기에 충분한 세기의 변혁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후에 역사가들은 산업혁명 만큼이나 중요하게 지금의 이 시기를 IT라는 단어와 함께 언급할 것이다. 응용과학의 중요한 축인 의학도 그 변혁의 영향을 충분히 받고 있다고 말할 수 있으며, IT기술을 통해 세계는 급속도로 하나가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과거에는 IT혁명에 필적할 만한 사건이 있었을까? 지금으로부터 천년 전쯤 우리사회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변혁을 경험하는데, 바로 종이가 가져다준 혁명이다. 엄밀한 의미로는 인쇄혁명이라고 해야 할듯하다. 종이가 발명된 것은 2세기 초이지만, 종이가 동아시아 사회의 기록문화를 실질적으로 대신하게 된 것은 중국은 북송대, 한국의 고려시대 때 종이의 대량생산과 조판기술이 발달하고 나서이기 때문이다. 소위 책을 통한 정보의 전파와 교류는 근 천년 동안 가히 위력적이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중국은 趙匡胤은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송나라(960-1126:북송)를 창건하고 철저한 중앙집권 체제를 갖추어간다. 그리고 그 중앙집권을 이용하여 중국의 사회 전반을 일관되게 정비하는 작업을 시작하게 된다. 북송 정부의 이러한 정비작업을 더욱 분명하게 만든 것이 당시의 인쇄기술이다.

의료분야에서는 1057년 교정의서국을 설치하여 <황제내경> <상한론> <신농본초경> <천금요방> <소씨제병원후론> 등 전문가들도 쉽게 구하지 못하는 의학서들을 교열하여 간행하고 대량으로 배포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한편으로 정부 관리들을 시켜서 중국 전역을 조사해서 대규모 치료기술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게 되는데, 북송 초기에는 100권 분량, 16834개의 처방을 수록한 의서 <태평성혜방>을, 북송 말기에는 200권 분량, 20,000여개의 처방을 수록한 <성제총록>을 간행하였다. 왕유일이 鍼灸銅人과 <동인수혈침구도경>을 만들어 침구 혈자리에 대한 표준화를 실시한 것, 전국의 약재의 생산과 분포 및 약효를 정리한 <개보본초> 및 <증류본초>의 간행도 북송 정부의 체제 정비사업의 일환이었다.

한마디로 북송 정부의 의학역사에서의 역할은 산재된 의료정보의 발굴 및 대규모 의학 데이터베이스의 구축, 약재와 침구의 표준화 등으로 집약할 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 행정안전부산하 정보화진흥원에서 실시하는 ‘국가 지식DB 구축’ 작업을 했던 것 같다. 다만 그 당시의 종이가 이제는 전자매체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북송 정부가 구축한 의료DB는 상대적으로 이동 간편한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동아시아 각 지역에 전파되었고, 현재의 한국과 중국, 일본 및 베트남 등에서 자생한 토착의학은 그 지역색을 조금씩 탈피하면서 범동아시아 의학으로 발전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게 된다.

차웅석/ 경희대 한의과대학 의사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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