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 History(13) | 향약의학, 왜 강조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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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History(13) | 향약의학, 왜 강조되었을까?
  • 승인 2010.04.15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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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석

강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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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약의학의 성격은 ‘궁항벽촌(窮巷僻村)’, ‘창졸지간(倉卒之間)’, 그리고 ‘인정지시(仁政之施)’라는 문장으로 압축해볼 수 있을 것이다. ‘궁항벽촌’은 말 그대로 의료 혜택을 받기 어려운 시골이란 뜻이고, ‘창졸지간’은 미리 예상하지 못하여 갑작스럽게 일어난 것이며, ‘인정지시’란 것은 임금이 어진 정치를 베푼다는 말이다. 이것으로 향약의학의 성격을 되돌아 본다면 첫째 향약의학은 의료시설이 없는 지역을 위한 의학이다. 둘째 향약의학은 일상생활 도중 갑작스럽게 생길 수 있는 질환에 대한 의학이다. 셋째 향약의학은 국가의 필요에 의해 발전한 의학이다. 애초에 출발이 국가의 필요성에 의해 제기된 의학체계이다 보니 국가가 처한 상황에 따라 향약의학은 여러 다양한 이유에서 강조되었다.

최초의 자료가 남아있는 13세기 향약의학은 원(元)과의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강조되었다. 전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특히 강화도로 천도한 상황에서 수입 약재를 쓰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향약구급방은 13세기 중엽에 간행되었다. 고려 고종18년(1231)에 몽고가 침입하여 이듬해인 1232년에는 강화로 천도를 하였다. 그리고 원종 즉위년(1260)에 몽고에 항복하여 개성으로 돌아왔다. 이때 고려는 몽고와의 항쟁을 하면서 대장도감(大藏都監)을 설치하고 대장경(大藏經)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 대장도감에서 향약구급방도 간행하였다. 대장경이 부처의 힘을 빌어 국가를 구하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볼 때 향약구급방의 성격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이전의 고려 의서들은 12세기 초 제중입효방, 13세기 초의 어의촬요방과 비예백요방 등이 있었다. 현재 남아있는 내용들로부터 미루어볼 때 이 책들도 향약을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향약구급방처럼 향약만을 강조하지는 않았다.

“출발이 국가의 필요성에 의해 제기된 의학체계이다 보니 향약의학의 존재가치는 국가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됐다.

14세기 말 향약의학은 국가 재정을 위해 사치품과 수입품의 사용을 억제하려는 분위기 속에서 강조되었다. 고려 말의 지배계급과 큰 사찰 등은 자연스럽게 친원 세력이 많았으며, 이들은 원에서 가져온 비단옷, 그릇, 금속제품 등을 많이 사용하였다. 고려 말 방사량은 시무11사(時務十一事)에서 수입약재를 포함한 수입 사치품들을 금지시킬 것 등을 상소하였다. 고려 말 성리학으로 무장한 신진 사류들이 친원 세력의 사치를 억제하여 국가를 부국강병으로 이끌기 위해 절약과 검소를 강조하였다. 자연스럽게 향약의학은 이러한 시책에 부응할 수 있었기에 강조되었다. 방사량은 조선 개국 후 향약제생집성방과 신편집성마의방(新編集成馬醫方), 신편집성우의방(新編集成牛醫方)의 저술에 참여하였다.

15세기 향약의학은 조선 왕조의 일차의료체계를 확립하기 위해 강조되었다. 조선은 전국적으로 향약을 채취하고 수집하는 방법을 체계화하였다. 동시에 향약집성방을 간행하면서 전국적으로 향약집성방을 배포하고 의사를 양성하여 파견하였다. 성리학을 바탕으로 한 국가에서 백성들에게 의료시혜를 주는 것은 왕의 덕스러움과 자애로움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다. 비슷한 예로 송나라는 태평성혜방(太平聖惠方), 태평혜민화제국방(太平惠民和劑局方), 성제총록(聖濟總錄)을 간행하였는데, 제목만으로도 이 책들의 동기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이 시기에는 값 비싼 수입약재 대신 싼 향약을 쓰겠다는 단순한 이유가 아니라 ‘멀리서 가지고 온 수입약재는 약효가 빠져나가 제대로 된 향약만 못하다’, ‘한두 가지 약재를 쓰는 것이 여러 약재를 섞어 쓰는 것보다 효과가 강하다’, ‘조선과 중국의 풍토가 달라 질병과 처방, 그리고 약재가 달라져야 된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향약의학을 크게 발전시켰다.

강연석/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의사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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