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 History(16) | 조선의 의료정책 100년 대계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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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History(16) | 조선의 의료정책 100년 대계①
  • 승인 2010.05.13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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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웅석

차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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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약집성방 간행은 중국의학을 한국 의학계가 어떻게 수용했느냐 하는 이슈가 담긴 사건

1433년 6월11일 <향약집성방> 완성. 1970년 6월27일 경부고속도록 개통. 역사적으로 볼 때, 대형사건이 발생하면 그 당시에는 배경설명‧파장 등 담론이 풍부했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주변 이야기들은 사라지고, 궁극에는 위와 같은 짤막한 사건기록만 남는다.

‘경부고속도로 개통’은 서울과 부산 간에 고속도로가 생겼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작게는 물류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면서, 크게는 한국의 산업화와 고도성장을 대표한다. 좀 더 넓혀본다면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 정책의 중심에 있는 사건이면서, 2004년 고속철 개통과도 맥락이 닿아있고, 개발독재의 전형이라는 꼬리표도 달려있는 사건이다.

그렇다면 1433년 6월11일의 ‘<향약집성방>의 완성’이라는 사건을 이러한 관점으로 이해해 본다면 어떨까? <향약집성방>의 간행은 단순히 조선 초기 향약의학의 내용을 정리했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새로 전래된 중국의학을 한국 의학계에서 어떻게 수용했느냐 하는 의학계의 중요한 이슈가 담긴 사건이며, 정치적으로는 조선조 태조부터 성종 대까지 일관되게 이어져온 의료정책 100년 대계에 하나의 방점을 이루는 중요한 사건이다.

세종15년(1433년) 6월11일, 세종은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을 완성하였다는 보고를 전해 듣고, 대사성 권채(權採1399~1438)에게 명하여 서문을 짓게 하였다. 그리고 8월에 강원도와 전라도에서 이 책을 간행하게 하였다. 이 책은 집현전과 전의감의 관리들이 3년 간의 작업 끝에 완성한 국산약재 이용에 기반한 의학기술을 종합한 의서이다. 30대 중후반의 세종은 <농사직설>을 배포하고, 아악을 정리하며, 토지 조사사업을 실시하고 압록강변 국경선을 확정해 가는 그 시기에 주요 대신들을 시켜 이 책을 간행하게 하였다.

따라서 조선조의 기틀을 마련해 가는 여러 가지 사업의 연장선상에 이 책의 완성과 간행이 있다고 보여진다. 우리는 대왕 세종을 많은 정치적인 업적을 남긴 성군으로 기억하지만, 기실 그 정책 입안의 기조는 태조 때부터 시작하고 있으며, <향약집성방>의 간행도 그 예외는 아니다.

태조 이성계와 그의 통치관료들은 여느 개국 정부가 그러했듯이, 국가 질서를 새롭게 세워야 하는 당위성을 갖게 된다. 무엇보다 혁신적이고, 일반 국민의 환영을 받을만한 그런 질서여야 했다. 통치권력의 정당성 확보를 필두로 민생 안정을 위한, 외적 방비, 신분제도 정립, 법질서 확립, 조세 혜택, 의료 혜택 등 조선 초기 시행된 정책들은 모두 그러한 일관된 기조를 갖는다.

의료정책에서는 무엇보다, 당시 고급 의학기술을 정립함과 동시에 그 혜택이 백성에게 고루 돌아가도록 체제를 정비해야 했다. 우수한 치료기술의 정립과 의료행정의 효과적인 정비. 이 두 가지의 모토가 태조 이래 성종 때까지 일관되게 이어지는 조선 초기 의료정책의 기조였다.

태조2년(1393) ‘의원’이라는 교육기관을 전국에 설치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성종대의 동아시아 최대의 의료정보 데이터 베이스 <의방유취>의 간행(1477), 그리고 <향약집성방>의 수정 보완 및 언해본 발간(1488)으로 일단락되는 이 과정에서 우리는 조선 전기 의료정책 100년 대계의 실제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차웅석/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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