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 History(17) | 조선의 의료정책 100년 대계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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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History(17) | 조선의 의료정책 100년 대계②
  • 승인 2010.05.19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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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웅석

차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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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국 당시 교육기관을 설치한 뒤 담당 교수관을 파견하고 주교재로 <향약혜민경험방>을 지목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근 몇년 간 한국사회에서 꾸준히 이슈가 되어온 건강보험의 운영문제, 최근 미국 오바마 정부의 건강보험 개혁법안 추진을 둘러싼 국제적 관심 등은 국민의 의료와 건강이라는 문제가 통치권력이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사안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역성혁명을 이뤄 개국한 조선 정부로서도 간과해서는 안되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조선의 의료정책의 시작을 말하기 위해서는 고려 말부터 이어진 향약의학에 이해를 간단하게 할 필요가 있다. 고려 말기 <향약구급방>의 간행을 필두로 <동인경험방> <향약고방> <삼화자향약방> <향약간이방> 등의 의서가 간행되었다. 이들 의서의 간행은 국산약재를 이용한 치료기술들의 개발과 정리가 한국 의학계의 주요 화두로 등장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향약(鄕藥)’-중국약재(唐藥)와 구별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향약’이라는 명칭을 강조함-으로 대표되는 이 트렌드는 <태평성혜방> 등으로 대표되는 중국의학이 한반도에 전래되면서 촉발된 반사적인 반응이다.

동시에 당시까지 한국 의학계에 축적되어온 의학기술이 인쇄기술의 영향으로 다시 정리되고 공개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즉 고려 말기까지의 한국 의학계는 중국의학과 한국의학의 치료기술이 국산약재라는 매개를 통해 융합되면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한 단계 진보해 가는 시기이며, 이러한 의료기술이 서적의 대량 간행이라는 종이혁명의 혜택을 통해 널리 알려지는 시기이다. 이 시대의 이러한 의학적 특색을 한국 의학사에서는 ‘향약의학시대’라고 달리 부르기도 하는데, 정확하게 이 시기와 맞물려 이성계의 조선 정부가 개국한다.

개국 당시 주목할 만한 의료정책으로 태조2년(1393) ‘의원(醫院)’이라는 교육기관을 설치하고 담당 교수관을 파견하면서 교육의 주교재로 <향약혜민경험방鄕藥惠民經驗方>을 지목한 점이다. <향약혜민경험방>이 조선 초 의학기관의 대표적인 교재로 선정된 것은 조선 정부에서 생각하는 가장 합리적이면서도 유용한 의학의 형태는 향약의학이었음을 말해준다. 사실 주교재로 선정된 <향약혜민경험방>은 몇년 뒤인 1398년 조선 정부에서 직접 편찬한 향약 관련 전문의서 <향약제생집성방鄕藥濟生集成方>으로 재빠르게 대체되는 것으로 보아 대단한 수준의 의서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향약의학 기반의 의서를 조선 개국 의학교육의 주교재로 선정한 점은, 조선의 의료행정을 좀 더 자립적으로 이끌어 가겠다는 확실한 방향 설정을 의미한다. 자립 의학의 기반을 우선 정립하고 점차 고급화시켜 가겠다는 전략적 선택임을 이후의 의학정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한 첫 단추로서 ‘의학교육기관 설치’는 전국적 인프라 구축이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의원 설치와 함께 파견된 교수관의 역할이 의학교육뿐만 아니라 국산약재의 수급과 관리, 대국민 진료까지도 가능토록 했고, 또 피교육자들의 신분도 양반의 자제였기 때문이다. 즉 대국민을 위한 의료 혜택의 확대가 아닌 향약의학과 관련한 고급 의료인력 양성에 보다 무게를 둔 것이다. 조선의 의료정책 100년 대계는 이렇게 국산약재 이용을 근간으로 한국의학과 중국의학의 치료기술을 융합하는 향약의학을 정부가 주도적으로 정착시켜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차웅석/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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