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 History(21) | 조선의 의료정책 100년 대계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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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History(21) | 조선의 의료정책 100년 대계⑥
  • 승인 2010.06.18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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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웅석

차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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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방유취 간행과 국가의료 DB 

조선시대 어느 지역에 전염병이 창궐한다는 보고가 올라오면, 정부 당국에서 한 일은 무엇일까? 우선 해당 지역을 격리조치하고 식량을 공급한다. 그리고 의료인을 파견하며 해당 지역 전염병에 맞는 치료지침서를 제작‧ 배포했다. 조선시대에 간행된 이른바 <구급방> <구급간이방> 같은 책이 그러한 국가 의료정책의 맥락에서 만들어졌다.

이러한 지침서 등을 급히 만들려면 국가의료 DB가 필요하다. 이런 용도 외에도 국가가 자국민을 위한 의료 데이터베이스를 갖춰야 할 당위성과 효용성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1433년을 전후하여 <향약집성방>을 간행하고 <팔도지리지>를 펴내면서, 국민의료를 위한 약재 수급과 기본치료 지침서 확보까지 마친 국가 의료정책 입안자들이 추구해야 할 방향은 분명했다. 시급히 고급 의료기술을 중심으로 하는 국가의료 DB를 구축하는 일이다. 국가의료를 좀 더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중국의서에 나오는 처방을 가져다 써보는 것이 아닌 자국민에 맞는 치료기술을 고민할 수 있는 총체적인 데이터베이스와 인력 양성이 필요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의방유취 醫方類聚>이다(안상우, 한국한의학연구원).

“의방유취 완성으로 조선 정부는 국가의료 DB를 갖췄으며, 이 DB는 정부가 주관하는 교육, 정책, 구료 등에 활용됐다”


조선왕조실록의 세종27년(1445) 10월27일의 기사는 <의방유취>의 완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集賢殿 副校理 金禮蒙, 著作郞 柳誠源, 司直 閔普和 등에게 명하여 여러 方書를 수집해서 門을 나누고 각 門에 해당하는 類를 모아 합해 한 책을 만들게 하고, 뒤에 또 집현전 直提學 金汶․辛碩祖, 副校理 李芮, 承文院 校理 金守溫에게 명하여 醫官 全循義․崔閏․金有智 등을 모아서 편집하게 하고, 安平大君 李瑢과 都承旨 李思哲, 右副承旨 李師純, 僉知中樞院事 盧仲禮로 하여금 監修하게 하여 3년에 걸쳐 완성하였으니, 무릇 365권이다. 이름을 <醫方類聚>라고 하사하였다.”

기사의 내용에 의하면, 집현전의 주요 학사들 뿐 아니라 세종의 3남 안평대군까지 참여하여 3년 만에 완성한 국가의 주요 사업이 끝을 보게 된 것이다. 3년에 걸쳐 완성했다면 1443년에 시작하였을 터인데 그해는 한글이 창제된 해이다. 기사에 열거된 정부 관료들의 면면을 보면 아마도 한글 창제에 참여한 집현전의 주력이 그대로 이 사업에 투입된 듯하며, <의방유취> 사업에 이용된 의서 200여 종은 중국의서 <태평성혜방>과 <성제총록> 및 한국의서 <비예백요방>을 포함한 당대까지 알려진 중국과 조선의서의 총합이다.

그리고 ‘의서습독관(醫書習讀官)’이라는 동서의학 역사상 유래 없는 ‘의학서적 전문연구원’ 성격의 직종이 등장한 것도 이때이다. <향약집성방>의 간행보다 한 차원 높은 수준의 인력과 시간이 투입된 사업이 분명하다. <의방유취> 완성을 계기로 조선 정부는 명실상부한 국가의료 DB를 갖췄으며, 이 DB는 이후 조선 정부가 주관하는 교육, 정책, 구료 등에서 다양하게 활용되었다. 당초 그것을 기대하지는 않았겠지만, 이 DB를 구축하면서 쌓은 노하우는 한국의학계가 중국의학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중국의학을 선택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차웅석/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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