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 History(28) | 조선통신사와 우리의학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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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History(28) | 조선통신사와 우리의학⑤
  • 승인 2010.09.09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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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식

함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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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신사 일본 의학 발전 산파

“조선통신사는 인삼 재배를 전해준 통로였다. 이외에도 침뜸․ 본초․ 방제 등을 전파해 일본의학 발전의 산파 역할을 했다”

무언가 배워야만 하는 절박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태도는 진지하다 못해 어쩔 때는 처절할 정도다. 그것이 산업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핵심기술이라면 더욱 그렇다. 18세기 초 산업의 핵심기술은 단연 ‘인삼의 인공재배’였다.

조선에서의 인삼 재배는 1600년대 인삼 수요량의 증가에 따른 무분별한 채취로 야생삼의 채취량이 급감한 상황에서 야생삼을 공물로 보내야 하는 지역 주민들이 공납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야생인삼의 종자를 산중에 인공적으로 심어두는 형태에서 진화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安珍均, 인삼 재배지역에 관한 지리학적 연구). 경상도 산간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하는 이 기술은 1700년대 초기가 되면 어느 정도 정착되고 점차 인근 지역으로 확산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조선에서 이미 인공재배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일본 관련자들은 필사적으로 이 비밀을 캐기 위해 달려드는 것이다.

인삼 재배에 대한 노하우를 발설할 수 없는 조선의사들과 어쨌든 대화 중에 단 하나의 단서를 찾아내고자 했던 일본의사들의 신경전은 대단했다. 우회적인 질문들 속에서 도저히 풀 수 없던 결정적인 단서 몇 가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때문에 문답에 참여한 조선의사들은 인삼의 우수성만 열을 올려 이야기할 뿐 더 깊은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인삼에는 꽃이 없다는 거짓말까지도 한다.

그러나 한쪽은 그 한 번의 만남을 위해 몇 년을 준비하고 기다린 상태이고, 다른 한쪽은 그렇게 중무장한 사람들을 매일 같이 몇 팀씩 상대하느라 지칠대로 지친 상태였다. 기력이 다한 쪽에서 빈틈은 생기기 마련. 1764년의 문답에 참여한 한 조선의사는 일본의사와 문답에서 인삼은 영물이기 때문에 절대로 재배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고서, 정작 인삼씨는 언제 채취하느냐는 질문에 “본초강목에는 10월이라고 되어있지만, 초가을에 씨가 성숙되는 것을 봐서 채취해도 된다”고 말해버린다. 이처럼 수백 명의 조선인이 몇 개월 동안 체류하면서(18세기 초 4번의 대규모의 조선통신사 왕래가 있었음) 인삼 재배에 대한 기밀은 조금씩 새어나갔다고 해야 할 것이다.

결국 일본의 인삼 재배는 1728년 닛꼬 지역에서 처음 성공하였다고 되어있다. 그러나 실질적인 재배 성공은 인삼재배법을 다룬 <조선인삼경작기>가 발간된 이후이다. 이 책은 1747년에 처음 저술되었고 1764년에 다시 증보되어 간행된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稻生若水라는 의가와 저자 坂上登 역시 조선통신사가 일본을 방문하였을 때 그들과 인삼에 관한 문답을 나눈 인물들이다.

인삼 전반에 관해 가지고 있던 의문점을 조선 의가를 통해 알아내고 나서 이 책을 간행할 수 있었다. 비록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조선통신사는 당시 일본에서 가장 중히 여겼던 인삼에 관한 것을 전해준 통로였다. 일본 의학이 조선통신사를 통해 수혜를 입은 것이 어디 인삼뿐이겠는가? 조선통신사는 조선의 선진의학 기술인 침뜸․본초․방제 등을 전파하여 일본 의학 발전의 산파 역할을 했던 우리의 훌륭한 문화유산이다.

함정식/ 청솔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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