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 History(30) | 단계학파와 한국한의학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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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History(30) | 단계학파와 한국한의학①
  • 승인 2010.10.01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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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웅석

차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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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腎이란 용어를 빈번히 쓰기 시작한 것은 주단계가 理氣論을 의학에 들여온 뒤이며 精氣神은 도가의 생명에 대한 관점이다”

대학에서 근무하다 보면 비슷한 의식 수준의 다양한 연령대-그 사람들이 나이 들면 이러한 사람들이 되어갈 거라는 느낌을 주는-의 사람들을 접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동일한 의식 수준의 사람들이 나이 차이로 생겨나는 구별점도 보다 극명하게 접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의 어린세대가 기성세대와 다른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하나 분명한 것은 자부심의 차이다.

내가 보고 자란 어른들은 그야말로 미군들이 나눠주는 초콜릿을 받아 먹던 세대이다. 그들에게 미국을 위시로 하는 선진국은 그야말로 선망의 대상이었다. 아마도 그런 대상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원동력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한 긍정적인 부분의 이면에는 우리 것에 대한 강한 불신과 불만이 내재되어 있다. ‘왜 우리는 근대화에 실패해서 이렇게 빈곤을 면치 못하는가?’ 그리고 이런 불만은 바로 이웃국가 일본의 경우와 대비되어서 더욱 증폭되고, 급기야는 비슷한 조건이던, 심지어는 더 열등했다고 하는 일본과 다른 길을 갈 수밖에 없던 것에 대한 대상을 분노의 시선으로 보게 된다. 그래서 그 사람들에게서 ‘조선시대’, ‘주자학’, ‘양반사회’, ‘쇄국’, ‘개항기’ 같은 용어가 제대로 대접받기는 실로 어렵다.

우리의 전통문화가 제대로 대접받기 시작한 것은 우리가 먹고 살만해진 이후라고 보여진다. 그리고 이미 태어날 때부터 자기 나라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던 우리 어린세대에게는 조선과 주자학은 더 이상 가치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주자학이 어쨌길래?’ 그리고 좀 더 영민한 학생들은 ‘세계 어느 민족 어느 국가나 굴곡의 역사가 있는 것 아닌가요?’라고 한다.

필자가 지금부터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이 주자학에 대한 이야기이다. 장황한 서두로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주자학-혹은 성리학, 유학-이라고 했을 때 너무나 많은 장면이 사람마다 다르게 연상되기 때문이다.

의학은 응용학문이다. 고대 동아시아에서 의학은 지금처럼 ‘응용과학’은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최소한 ‘응용학문’이었다. 주변의 새로운 기술과 방법, 심지어는 인체를 바라보는 관점이 변하면서 의학도 변해 왔다. 13세기 원나라로부터 아랍의 기술이 들어오면서 환약에 금박을 입히는 기술, 전통 막걸리 대신 증류주에 약을 수취하는 기술이 의학에 생겨났고, 수은제를 좀 더 정교하게 쓰기 위한 치료기술, 즉 우황청심환이 개발된 것은 수당대 연단술이 성행하던 시절의 일이다.

한의학에서 심신(心腎)이라는 용어를 빈번하게 쓰기 시작한 것은 주단계가 성리학에서 理氣論을 의학에 들여오고 나서의 일이며 <동의보감>에 나온 精氣神은 도가에서 오래 전부터 정착해온 생명에 대한 관점이다. 서역과의 교역을 통해서 호도, 마늘, 유향, 몰약이 들여왔고, 청대 말기 張錫純이 아스피린과 석고의 절묘한 시너지 효과를 알아낸 것은 물론 서양의학의 영향이다.

이 많은 영향 중에서도 ‘주자학’에 주목하는 이유는 ‘주자학’에 의해 동아시아 의학은 주목할 만한 질적인 변화를 경험하고 그리고 그 변화의 영향을 한국 한의학이 그대로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자학과 한국 한의학의 사이에는 ‘단계학파丹溪學派(滋陰學派)’라는 인터스페이스가 존재한다.

차웅석/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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