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화칼럼] 개고기와 문화주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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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화칼럼] 개고기와 문화주체성
  • 승인 2003.04.19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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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올림픽 때를 정점으로 개고기에 대해 외국인들의 시비가 잦더니 이젠 월드컵을 앞두고 또 시작이 된 모양이다.

지난달 6일 국제축구연맹(FIFA) 제프 블래터 연맹회장이 한국 축구협회 등에 월드컵 대회기간 중 개고기 식용을 중단하도록 요구하는 공개서한을 보냈다고 하며, 18일에는 ‘파이낸셜 타임스’가 성남 모란시장 개고기 점포 등을 취재해 내보냈고, ‘로이터’ 등 서방 거대통신들도 사진과 함께 한국 개고기 식용문화를 비판적으로 실었다.

또 프랑스 텔레비전2(FT2) 방송은 최근 시사 코메디 프로그램 ‘모든 것을 다 시도해 봤다’에서 한국 개고기 문화를 신랄하게 풍자하고 매도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다행히도 독일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처럼 한국인의 개고기 식용을 야만시하는 일부 서구인들의 비뚤어진 선민의식, 인종차별의식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언론도 있었다.

한겨레신문 베이징특파원이 전해는 바에 의하면 국제축구연맹과 일부 서방 언론들이 한국의 보신탕을 문제삼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중국인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에 머물다 온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그쪽의 개고기 열기는 우리나라가 무색할 정도로 음식점마다 개고기 음식의 종류가 참 많다고 전한다.

실제 우리나라만 개고기를 먹는 것이 아니라 중국을 비롯 필리핀, 태국, 대만, 싱가포르, 우즈벡스탄 등 많은 나라들이 개고기를 즐겨 먹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요리책인 ‘규곤시의방’에는 개장, 개장국 누르미, 개장찜, 누런개 삶는 법, 개장 고는 법 등 우리나라의 고유한 개고기 요리법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고, 조선시대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상차림에 구증(狗蒸)이 올랐다는 것을 보면, 개고기는 임금님의 수라상에도 올라가는 음식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농가월령가’에는 며느리가 근친 갈 때 개를 삶아 건져 가는 풍습이 나오기도 한다.

이렇게 전통적으로 먹어온 식품이 잘못된 서양인들의 오만으로 인해 비난을 받는다면 문제가 있을 것이다.

일부 목소리 큰 사람들 때문에 논리가 왜곡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엄연히 우리 고유의 민족문화가 살아 숨쉬는데 서양문화의 잣대를 들이댄다면 그야말로 사대주의라 비난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민속학자 주강현 씨는 “프랑스인들은 달팽이 요리와 말고기를 즐기고, 중국인들은 원숭이의 골을 먹는데도 근거없는 편견으로 고유의 음식문화를 야만으로 몰아치는 것은 문화적 다원주의를 이해하지 못한 처사”라고 말한다.

힌두교를 믿는 사람이 쇠고기를 먹는 사람들을 야만인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힌두교인들은 서양인들이 쇠고기 먹는 것을 시비하지 않는다. 돼지고기는 이슬람교와 유태 문화권에서는 금지되어 있지만 중국에서는 일상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인데 아랍인들이 중국을 성토했다는 말을 들은 적은 없다.

음식문화뿐 아니라 심지어는 친구가 찾아오면 그 친구에게 자기 부인을 내준다는 에스키모인들의 풍습을 우린 비난하지 않는다. 그들만의 고유 문화양식으로 보기 때문이다.

다시 한겨레신문 베이징 특파원의 말을 들어보자. 중국은 올림픽 유치를 전후해 개고기 논쟁에 시달리지 않았던 것은 ‘음식 강국’ 로 알려져 있는 데다 개고기를 떳떳한 음식으로 홍보했기 때문으로 지적된다고 한다.

정런자 칭화대학 교수는 “서방이 한국의 개고기를 문제삼는 것은 한국의 정치적 주체성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며, 중국인들은 서방의 ‘보신탕=야만적’이란 주장은 문화적 패권주의에 다름이 아닌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 당국은 지난 7월 2008년 올림픽개최지 결정투표 전 서방기자들을 개고기 식당에 데리고 가거나 중국쪽 관계자가 “중국에는 개 사육농장이 많다”면서 “당신네들이 양을 길러서 먹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말하며, ‘교화’에 나섰다고 전한다.

다행히 프랑스 공영방송인 FT2가 한국의 개고기 문화를 지나치게 왜곡 풍자한 방송을 내보낸 데 대해 프랑스주재 한국대사관이 “한나라의 문화,관습적 품격을 훼손하고 한국 국민을 모독한 것”이라며 항의서한을 보냈다고 한다.

교만한 서양인들이 잘못된 선민의식으로 우리의 음식문화를 비난하는 것에 우리는 당당할 필요가 있다.

개를 야만적으로 도살하거나 비위생적으로 유통하는 것은 반성할 필요가 있으나 개고기 음식문화 자체를 왜곡, 폄하하여 비난하는 것에는 정부나 언론, 온 국민이 결연히 대응할 것을 주문한다. 또한 우리의 문화주체가 분명히 바로 서 있도록 우리 모두가 노력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민족문화운동가 김영조(sol119@hana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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