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 위로 떠오른 ‘의료일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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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 위로 떠오른 ‘의료일원화’
  • 승인 2010.10.22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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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연 기자

이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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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원화 시각 세대‧ 분야 따라 각양각색
수면 위로 떠오른 ‘의료일원화’ 

의료 일원화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한의협 의협 실무진들이 최근 회동을 가졌다. 아직은 서로 간을 보는 차원에 불과하지만 그동안 잠복한 상태에서 내연하던 일원화를 공식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한의계에선 일원화를 공식적으로 거론한다는 건 역린과 다름없는 성역이었다. 비록 일원화를 둘러싼 시각이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우는 형국이지만 이제 그 금기가 깨졌으니 일원화 논의는 더욱 무성해지고 급물살을 탈 조짐이다. 일원화 논자들의 지향점과 배경은 무엇일까.

일원화 논자들은 우선 국민의 2중의료 부담과 이에 따른 의료 낭비, 이 과정에서 숱하게 두 단체가 반목해 왔고 고소·고발 등이 난무하게 되는 것이 사회적 갈등 요소로까지 커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면에는 해마다 많은 수의 의료인이 배출되고 있어 점점 경쟁이 치열해서 경영이 악화되고, 이를 타개할 수 있는 출구전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의계에서 일원화를 찬성하는 입장에서 가장 필요한 데는 각종 진단기기, 의료장비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제도화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연령대에 따라서도 조금씩 입장이 갈라진다는 점도 흥미롭다. 젊은 한의사들이 상대적으로 찬성하는 분위기가 높다고 보여지는 데는 과거보다 기초의학 학문의 비율이 높아진 커리큘럼의 영향을 받은 데다 과거의 선배들보다 의료영역이 축소되는데 대한 불안함, 환자들의 이탈 등으로 인해 진단기기의 자유로운 사용에 대한 열망이 더 높은 데 있다. 진단기기 등 현대과학의 수혜를 받을 수 없다는 한계는 나이나 입장과 상관 없이 반드시 바뀌어야 할 폐단이라고 입을 모았다. 

또한 일원화에 대해 적극적 찬성이나 적극적인 반대 입장을 내세우기보다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하는 분위기다. 다만 구체적인 일원화 방법을 제시하는 이들은 찾기 힘들다. 정경진 경기도한의사회장은 “일원화를 하면 한의계도 어느 정도 이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꽤 있는 것 같다. 특히 한의계 선배들에게서 리더십을 기대할 수 없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일원화를 강력히 원하는 것 같다”며 “한의학 패러다임에 의문이 들고 환자도 없고 비전도 없고 빚은 쌓이는 상황에서 업권 신장은 안되고, 선배들에 대한 원망과 질투가 생기면서 현실 타개책을 일원화에서 찾는 입장도 있다”고 분석했다.

일원화 시각 세대‧ 분야 따라 각양각색
논의 시작 긍정…내부준비 철저히 주문


2009년 말 안홍준 의원이 주최한 의료 일원화 토론회 전경.
물론 일원화의 가장 큰 걸림돌은 사실 상호 면허 취득조건이라고 한의계 인사들은 입을 모은다. 제도를 바꾸게 된다 하더라도 기존 면허자들에게 경과규정을 어떻게 둘 것인가는 10여년 간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전문의제 만큼이나, 아니 훨씬 더 어려울 수 있는 문제다. 공동의 컨센서스를 마련하는 것이 어려운 데는 서로가 이득이 첨예하게 부딪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일원화를 20여년 전부터 주장해 왔다는 50대의 한 기초교수는 “일원화에 대한 필요성이 한의사와 의사가 다르다. 합쳐지는 순간 한의사가 우려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어느 한쪽이 불리한 입장에서는 결과도 그에 따라갈 수밖에 없다”며 “이미 늦은 감이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불리한 상황으로 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한 50대 교수는 “지금도 한의계는 학계든 개원가든 위기상황에서 죽을 각오로 행동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외부의 힘을 빌려서 어떻게든 상황을 바꿔 보려고 하는 것은 무리”라며 “내부의 합의된 의견도 없이 논의에 참여하는 이들끼리 꿍짝 해서 나중에 불리한 결과가 나오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60대의 한 원로 교수는 “진단 분야에서 필요한 검사가 제한돼 있어 일원화가 일부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한다. 다만 일원화가 조심스러운 것은 일종의 흡수 형태로 갈 것이라는 우려감 때문이다. 일원화 논의에 앞서 진단 치료차원에서 독자성을 확보할 수 있는 교육환경, 그에 따른 임상 발전이 우선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일원화 논의는 경제논리에 의해 끌려다니는데 이를 극복하면서 정체성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교육의 틀을 유지하고, 서로의 치료술에 대해 오픈하는 형식, 즉 바터제로 가는 것”이라며 “궁극적으로 중국처럼 둘 다 MD이면서 중의-서의 형태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일원화를 둘러싼 지역 여론도 다양하다. 최상천 울산시한의사회장은 “예전에는 그쪽(양방)에서 하자고 했지만 이제는 우리가 하자는 분위기인 것 같다. 양방에서도 내과 전문의와 일반의가 권한은 같아도 실제 행위는 스스로 제한을 두는 것처럼 한의사에게 권한을 준다 해도 실제로 자유롭게 양방 영역의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이들이 몇이나 될는지 모르겠다”며 결국 “한의사는 한방전문의로 서는 방법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그는 “진단기기 사용을 허용한다 해도 결국 규모가 큰 한의원 대 작은 한의원으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빚어질 수 있다”며 “일원화는 돌파구가 아니다. 지금보다 더 불리한 상황이 도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식논의 시기상조…아마추어 발상” 비판 존재
학계‧ 개원가 사즉생으로 타개책 적극 모색 제기


양의계는 한의계와 달리 2005년 의협 산하 의료정책연구소에서 ‘한국의료 일원화의 쟁점과 정책 방안’을 통해 통합 방안을 모색해본 적이 있다. 특히 의료정책연구소는 올해 10월 2011년 연구과제로 일원화에 대한 과제를 공모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의계에는 이와 관련한 연구자료가 미미한 상태다. 한 40대 한의사는 “일원화 논의를 하려면 비공식 팀이 꾸려져 철학적인 검토가 먼저 이뤄져야 하는데 우리가 언제 일원화에 대한 검토를 해본 적이 있느냐? 기초가 없는데 논의부터 한다는 것은 아마추어적 대응”이라며 “양방 쪽은 모든 준비를 해놓고 우리가 올 것만 기다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원화 논의가 확장되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이렇게 기반 없이 터뜨려지면 방향을 잡지 못하고 휘둘릴 수 있다”며 “우리 입장을 먼저 명확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중진인사는 “일원화의 필요성이 면허의 통합인지, 각 직능의 보완인지를 먼저 인식해야 한다”며 “현재로는 한의사 면허가 없어지는 쪽으로 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일원화보다는 의료기사지휘권을 먼저 얻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내부의 현실 자각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 30대 한의사는 “한의계가 전체 의료분야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율이 3~4%에 불과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의료보조기사가 아무리 수가 많아진다 해도 의료인이 될 수 없고 행위에 제한을 받듯, 한의사가 국가의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은 현실을 비춰볼 때 양의계와 동등한 입장이 되기는 힘들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현실인식 없이 추상적으로 얘기하는 일원화는 같은 얘기만 반복되기 십상이다. 한의계 내부에서는 우선 학문과 교육, 제도개선을 먼저 노력해야 한다. 현재처럼 아무런 개선 없이 매년 800명 이상의 한의사가 계속 배출되는 것은 의료 낭비일 뿐”이라고 일갈했다. 정경진 회장도 “부실한 학교들을 통폐합하는 게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내부의 준비가 돼있지 않은 상황에서 일원화 논의는 부실한 모래성을 쌓는 것처럼 위태롭다는 지적이다.

이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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