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 History(38) | 문치국가 조선의 의료문화제도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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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History(38) | 문치국가 조선의 의료문화제도 ④
  • 승인 2010.11.25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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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웅석

차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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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의녀들의 활약상

의료행위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친구나 친척들을 오랜만에 만나게 되면 항상 병에 대한 자문요청을 받는다. 당사자들은 솔직히 귀찮을 정도라고 한다. 모든 사람이 질병의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며, 의료기술을 익히는 것 또한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자신의 측근이나 비서가 이런 치유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어떨까? 혹은 비슷한 경우라면 의료기술을 가지고 있는 쪽을 더 선호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조선왕실의 왕대비나 왕세자비 같은 고위층 여성들에게 의녀들은 최적의 조건을 갖춘 사람들이다.

의녀들의 직속상관인 내의원의 도제조, 제조 등은 국왕의 측근이었고, 왕이 자연스럽게 부를 수 있는 내의원의 의사들과 가까웠고, 왕실의 여자들 뿐 아니라 남자들까지도 치료했으며, 여기에 더해 내전의 구석구석까지도 다 통해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왕실 내 특급정보원의 조건을 저절로 갖추게 된 것이다.

남성 중심의 조선역사기록은 이들의 활약상을 제대로 전달하고 있지 않지만, 만약에 이들의 행적을 좀 더 세밀하게 추적해간다면, 대장금 같은 스타 의녀들이 곳곳에서 쏟아져 나올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 의녀제도는 태종6년(1406년) 제생원의 관리 許의 건의에 의해서 실시되었다. 건의 이유는 ‘부인들이 남자의원들에게 병을 보이기가 싫어해서’였다. 많은 연구자들이 의녀제도와 관련해서 조선 초기에 정착된 유교적인 남녀구별사상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과연 개국 초기부터 새로 들여온 유교적 관념이 그렇게 일상생활에 뿌리 깊이 박혔을까?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이다.

오히려 처음에는 다른 목적에 의해 실시되었다가 세종 이후 점차 유교국가이념을 공고히 하기 위한 장치로 인식되었다는 견해가 더 타당할 듯하다.[최순례, 조선전기 의녀제의 성립과 의녀의 활동양상] 여자들이 남자의사들에게 병을 보이기 싫어하는 현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그런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서, 최소한 왕실이나 귀족사회에서는 의료행위를 수행하거나 보조했던 여성인력들이 항상 있었다.

그러나 이것을 정부조직의 일부로 만들어서 꽤 오랜 기간 유지해간 것은 동서고금의 역사에서 조선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왕실 내의 적절한 유휴인력[관비 출신 10-15세의 총명한 여자아이]을 선발, 기본소양교육부터시작해서 의료기술을 익히게 하고 이것을 제도화시켰고 지방정부에서도 이 제도를 시행하였다.

이들의 역할은 지금의 간호조무사, 인턴, 일반의, 전문의, 간호사, 산파 등과 같은 의료영역 전반에 걸쳐있고, 병원행정 및 잡역부의 일, 비록 소수이지만 접대부 같은 역할도 했다.

최근 한 연구는 의녀들에게 의료팀을 지휘할 정도의 사회적 위치를 허락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한 두가지의 특별한 기술만을 습득해서 의녀들끼리 전승해가는 체제로 발전해서 張德, 黃乙같은 전문기술을 습득해간 의녀들의 배출을 가능하게 했다고 설명한다.[이민호, 조선전기의 전문의녀에 관한 연구].

蠱毒 치료법을 공개하라고 압박하는 관리에게 황을은 다음과 같이 읍소한다. “제가 7살때부터 배워서 16살에 겨우 익힌 기술입니다. 제가 알려주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들이 배워가지 못하는 것입니다.”[성종23년 6월14일]

차웅석/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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