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고정훈·성은미 부부의 濠洲일기(2)
상태바
한의사 고정훈·성은미 부부의 濠洲일기(2)
  • 승인 2004.03.16 10: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webmaster@http://


문화적 충돌에서 오는 '인간차별' 체감

교민들 "영어가 돼야 뭘 해먹지"
줄서기, 기다리기부터 배워야

살면서 느끼는 호주의 생활 환경

호주에 살면서 좋은 점들…

그냥 무작정 생각나는 대로 적어 보자. 좋은 자연, 좋은 기후, 바다, 낚시, 골프, 써핀, 지천에 널린 잔디밭과 공원, 아이들 놀이터, 싼 물가(경우에 따라), 모든 일이 붐비지 않는다는 것. 이정도가 처음에 와서 이곳에서 좋다고 느꼈던 것들이었다. 이 넓은 땅에 서울과 위성도시를 합친 정도의 사람들만 사는 이곳의 자연 환경은 솔직히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다.

한 근에 얼마 하는지도 이젠 개념이 없어진 소고기 생등심(아마 1kg에 만원 정도였던 것 같다)도 처음에는 너무 좋았었고, 한 번 라운딩에 만원에서 이만원 하던 퍼블릭 골프장들도 좋았었다. 바다라고 나가서 낚시만 던지면 제법 자주 올라오는 감성돔의 손 맛도 좋았었고 세계 최고 휴양지중 하나라는 이곳 바닷가에서 아들과 날마다 타고 노는 보디보드 써핀도 좋았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느낀 가장 좋은 것 하나만을 대라고 하면 우리는 가로등 이야기를 하는데 망설이지 않겠다.

가로등 이야기…

처음 여기 와서 얼마 안돼서 우리는 이 가로등 사건으로 이 나라의 정서를 이해하게 됐다. 아주 간단한 풍경이다.
가로등 램프를 하나 갈려고 5명의 노동자와 2명의 교통 경찰이 모여든다.

교통 경찰은 교통 통제를 하고 길을 막는 형광바를 설치하고 하느라 한 30분 이상을 쓰더니 무슨 무개차 종류의 안전바가 설치된 차가 비상등을 켜고 들어와서 사람을 들어 올리더니 가로등 램프를 간다.

한명은 차를 운전하고 다른 한 사람은 무개차를 조정하고 또다른 한 사람은 아래에서 무전기를 들고 상황을 조절한다. 나머지 둘은 안전바가 설치된 작업대를 타고 위로 올라가서 한명은 램프를 떼어내고 한명은 조수를 한다.

총 걸리는 시간은 거의 3시간 정도였던 것 같다. 정말 이렇게 걸린다! 게다가 가로등 하나 손보는데 차선을 두개나 막는다.

왜 그러는지에 대한 이유를 이제는 알 것 같다. 간단하다. 관련 규정에 그렇게 하라고 돼 있을 것이다. 만약 없다면? 이 친구들은 일을 시작하지 않을 같다.

그 뒤로도 그런 풍경에서 우리끼리 농담 삼아 이런 얘기를 하곤 했다. “야 저거 우리나라 맥가이버 아저씨들이 오면 혼자서 전봇대 타고 올라가서 10분이면 끝난다. 우린 스파이더 맨처럼 전봇줄에 매달려 옮겨다니면서 전선 설치 작업을 하는 판인데, 아이구 한심한 사람들.”

그런데 언제 부턴지 이 ‘한심한 사람들’이라는 비난이 적당히 게으른 ‘귀여운 사람들’이란 개념으로 바뀌더니, 요즘은 규정을 지키는 ‘좋은 사람들’이라는 개념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결국 이 나라의 그런 점이 좋다. 영화에서 자주 보는 150 kg 정도의 뚱뚱한 노동자들이 40도 가까이 되는 이곳 여름에 도로에서 작업을 할 때 반드시 안전모를 쓰고 안전 장갑을 낀다. 이를 어기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대신 그들은 규정대로 충분한 휴식을 하고 10분마다 한번씩 물을 마시며 기후에 따라 적용되는 노동시간을 지키며 일을 할 것이다. 그러니 처음에 와서 우스꽝스럽고 멍청해 보이는 풍경들이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안심을 주는 사회적인 풍경으로 작용을 한다.

호주에서 익숙해져야 할 풍경들…

결국 생활 환경을 이야기하면서 ‘문화’라는 거창한 개념을 들어야 할 것 같다. 분명히 말해서 호주와 한국의 문화는 극단적으로 많이 다르다. 아주 간단하고 당연히 들릴 이 말이 사실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데 해외 생활의 고달픔이 있다.

한 마디로 위의 가로등이 자기 집의 일이라고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전화를 하나 놓는데 신청하고 2주가 걸린다(빠르면 1주에도 된다).

간단한 은행 일 하나 보려고 줄을 한시간 가까이 서야 하는데 그 이유가 앞 사람의 일 같지도 않은 일 하나 때문에 무슨 반상회 하듯이 직원 3~4명이 모여서 하 세월로 떠들어 대는 것 때문이라면 정말이지 웬만한 한국 사람은 뚜껑이 열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진심으로 이 나라 사람들은 줄 서는데 도사요 기다리는 데는 신의 경지이다. 처음이나 지금이나 감탄이 나온다.

어쩜 저리들 할 일들이 없을까…

정말 모두들 한시간씩 기다린다! 그러니 그 은행에 일을 보러간 사무실 직원들은 한시간씩 거기에 가서 함흥차사가 될 것이 뻔하다.

여러분 한의원의 간호사가 은행 일을 보러 가서 한시간씩 함흥차사라고 생각을 해 보자. 환자들은 갑자기 몰리고 하필 어제 약 다릴 때 그 직원에게 뭘 부탁했다는 환자들이 이 아가씨 어디 갔냐고 시계를 보며 계속 찾는다.

전화 벨은 울리는데 전부 바빠서 아무도 받지 못한다. 쉽게 상상이 가는 이같은 풍경이 우리의 모습이라면 이곳은 그 직원이 자리를 비운 한시간 동안 아무 것도 생기지 않는다. 그게 이곳의 풍경이다. 이곳에서는 정말 웬만해선 별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알 노인의 써핀보드 렌탈 샵…

우리가 사는 이곳 골드코스트 써퍼스 파라다이스 비치에는 그 노른자위 땅 육교 입구의 창고를 이용한 알 할아버지의 비치 용품 렌탈샵이 있다. 나이가 팔순이라고 한다(어쩌면 칠순을 필자가 잘못 기억하는지도 모른다).

이 아저씨(?)야 말로 골드 코스트의 노른자 써퍼스 파라다이스 비치의 터줏대감이다. 아침 해가 뜨면 비치에 나와 창고 문을 열고 보디 보드, 써핀 보드, 비치 파라솔, 돗자리 등을 창고 바로 앞 써퍼스 비치 입구로 옮긴다.

세워져 있는 서프 보드 위에 “AL’s beach hire”라고 써 있다. 이곳에서 40년간을 비치 용품 렌탈을 하며 이렇게 살고 있다고 한다. 이 동네 사람들은 모두 다 이 노인을 알고 있다. 노인의 인생이 어떨지 나는 상상이 가지 않는다. 다만 이곳의 모든 사람들은 이 할아버지를 좋아한다는 것을 안다.

알 아저씨의 하루 수입은 얼마나 될까? 분명한 것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할아버지는 많은 돈이 필요 없는 사람이라는 것도 확실하다. 좋은 햇볕 아래서 낮잠을 자고 샌드위치를 먹는 데는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는 법이다. 호주에서 사는 데는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는다. 물론 많은 돈을 벌 일도 마땅치 않다. 나이가 먹거나 사업이 망하면 정부가 먹여 살려 주고, 일자리를 잃어도, 이혼을 해도 먹여 살려 준다.

이곳에 살려면 줄을 서는 법, 기다리는 법, 그리고 주체할 수 없을 시간을 천천히 보내는 법 등을 먼저 배워야 한다. 그것을 내가 알기로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먹고 논다’고 표현을 하며 경시한다.

그래서 세상에는 핸드폰을 두개씩 가지고 한꺼번에 두개의 전화를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루 종일 해변에서 낮잠을 자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문화’의 차이다.

이곳에 살면서 싫은 것들…

당연히 딱 한가지로 귀결된다. 인간차별이 그것이다. 이는 인종 차별과 좀 다른 개념이므로 부연이 필요할 것 같다. 인종 차별은 뭐랄까 눈에 뜨이게 드러나는 촌스러운 차별이다.

속된 말로 피부 색깔을 가지고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무식한 놈들이 하는 저차원적인 짓거리다. 인종차별은 솔직히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느낄 기회가 별로 없고 단발적이라서 적극적 성격을 가진 사람이면 거의 문제가 없을 것 같다.

게다가 우리는 자영업자(?)들 아닌가. 조직사회에서 스킨 컬러로의 차별 따위는 경험할 일이 없을 것이다. 아이의 학교에서는 교육적인 측면으로 의도적으로 철처히 인종차별을 배격한다. 앞서 말한 시스템 같은 것인데 이곳의 학교에서 인종차별은 상상하기 힘들다.

인간 차별이란 개념은 이에 비해 좀 고차원적이다. 이 대부분의 것은 문화적 충돌로 오는데 대표적인 것이 언어 문제이다. 즉 이곳의 주류 문화와 다른 것에 대한 문화적 차별이 인간 차별 아닐까 싶다.

그런데 이런 문제들은 정말 쉽지 않을 때가 많다. 즉, 이곳에 아무리 많은 아시안계가 산다고 해도 이곳 최고 인기 스포츠인 럭비 그랜드 파이널(결승전)을 보러 간 스포츠 바에는 유색인종이라곤 나 밖에 없었다. 온 나라가 일주일 내내 럭비 얘기로 들끓는데 거기에 아무런 생각 조차 없는 사오정이 이들이 보는 아시안들이지 않을까? 럭비를 꼭 봐야 하는 이유는 아무데도 없다. 하지만 문제는 럭비를 보는 아시안은 전무하고 거의 모든 백인들은 럭비를 본다는 데서 생기는 문화적 충돌이라고 본다.

아파트에서 김치찌개를 끓이지 못한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자신들의 블루치즈는 괜찮고 우리의 김치는 안 되는 것. 문화 차별이자 인간 차별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참 쉽지 않다. 그렇다고 혼자서 계속 김치찌개를 끓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우리는 이 모든 것의 해결을 ‘영어’에서 찾고 싶다. 이곳 교민들끼리 우스개 소리로 늘 하는 “영어가 돼야 뭘 해 먹지” 하는 말일 것이다. 영어가 된다면 하다 못해 바락바락 싸우기라도 할 일들이 많은데… 이건 정말 가슴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당해 본 사람만이 이해할 것이다.

생활 속에서 나의 작은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영어는 정말 많이 힘들다. 서바이벌 잉글리쉬와는 좀 질이 다른 개념이다. 논쟁을 벌여야 하고 그 논쟁에서 나의 입장을 주장할 수 있는 영어가 된다면… 아 정말 나는 싸울 일들 많을 거 같다.

이들의 문화 일방주의와 그로 인해 생기는 그 무식함에 대해, 모든 기준이 주류인 백인 사회에 맞춰지는 게 보편적 진리로 통하는 이곳의 오만한 그 문화들에 대해, 자신들만이 정의이고 자신들의 국민들만이 인간이라는 이들의 천인공노할 휴머니티에 대해, 아프간에서 굶고 얼어죽는 어린이를 돕기 위해 1달러 모금 운동을 열심히 벌이면서 국민의 대부분이 아프간 폭격을 찬성하는 천벌받아 마땅한 이들의 위선과 무식함에 대해… <계속>

< 필자약력 >
고 정 훈 : 대전대 한의대 졸. 강원도 원주에서 개원(93~01). 세명대 강사 역임
성 은 미 : 대전대 한의대 졸.강원도 원주에서 개원(94~01). 대전대 강사 역임(한의학박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