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순환구조론에 대하여(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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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순환구조론에 대하여(11)
  • 승인 2004.04.1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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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구조론은 옛 한의학기술 복원작업

이 학 로(한의사·충남 천안)

13. 해석학-한의학순환구조론

빛은 프리즘을 통하여 무지개 빛 가시광선을 드러냅니다. 우리는 빛으로 가득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가지만 정작 그 빛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한의학은 한의학 순환구조론에서 제시한 전제조건과 가정을 통해 자신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줍니다.

서양의학이 이 땅에 들어오기 전에는 한의학으로 가득한 세상이었습니다. 그때에는 모두가 그것에 매달려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한의학 순환구조론은 차분하게 흥분을 가라앉히고 한의학서적을 한권씩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직접 볼 수 없는 그래서 글자 한자 한자에 의지해서 상상할 수밖에 없는 과거를 뜨거운 가슴속에 되살리고자 노력했습니다.

상한론

그렇게 만난 첫 번째 책이 傷寒論입니다. 상한론은 기원후 100년에서 200년 사이에 중국의 장사라는 곳에서 저술되었습니다. 저자 장중경이 자신의 가족 중 2/3를 열성전염병으로 잃으면서 쓴 책입니다.

쓰라린 가슴을 부여잡고 쓴 만큼 상한론에는 진실의 무게가 실려 있습니다. 고대의학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상한론이 이 시대에도 되돌아보아야 하는 책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질병이 보여주는 다양한 현상을 냉철하게 기록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상한론은 해부학적인 사실을 전혀 모른 채 증상의 패턴을 분류했고, 그렇게 분류된 증상의 패턴에 따른 치료법을 제시했으며, 질병의 예후를 읽어낼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제시된 내용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상한론은 분명히 인류역사에 남을 불후의 명작입니다. 상한론이 이러하기에 과거 한의학의 역사를 돌아보면 내노라하는 명의들은 모두 상한론에 자신의 이름을 끼워 넣었습니다.

한의학 순환구조론의 입장에서 볼 때 傷寒論은 上中下를 설명할 수 있고 內外中을 짐작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교과서입니다. 또한 상한론은 인체구조에 대한 전체적인 사고가 빈약한 한의학의 단점을 단숨에 보안해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상한론을 한의학 순환구조론은 인체내부의 해부학적인 사실과 생리학적인 사실로 설명하려 노력하였습니다. 그런데 상한론에는 本草에 대한 설명이 부족합니다.

본초문답

그래서 선택한 두 번째 책이 1893년에 쓰여진 당종해의 本草問答입니다. 당종해가 살았던 19세기말은 중국에 서양문물이 물밀 듯이 밀려오던 시기입니다. 서양의학 역시 그 세력을 무차별하게 확대하던 시기입니다. 이런 서양의학의 기세를 보고 중국의 전통의학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찾아보고자 했던 의가 중 한 사람이 당종해입니다. 어쩌면 20세기말 우리 땅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19세기말 중국에서 먼저 일어난 것 같기도 합니다.

어쨌든 本草問答은 난해하고 방대한 本草의 지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위하여 問答이라는 형식을 취했습니다. 問答은 本草를 설명하는 다양하고, 통일된 체계가 없으며, 경험의학에서 이루어진 개개의 성과를 설명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인 것 같습니다. 철학적으로 순환논증에 빠질 수밖에 없는 문제들을 스승과 제자라는 위계질서를 통하여 벗어나려는 노력일 수도 있습니다. 本草問答은 氣味論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보여줍니다.

금궤요략

세 번째 책은 고방과 후세방으로 분류하는 처방에 대한 선입견을 해소해보고 싶어서 金궤要略을 선택했습니다. 금궤요략은 傷寒論에서 공식처럼 여겨졌던 처방의 경계를 허물어 놓고 있습니다. 그것은 각각의 본초가 독립적으로 움직인다는 뜻입니다. 결국 처방은 증상의 패턴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상한론이 上中下를 다루는 방법을 보여 주었다면 금궤요략은 上中下를 벗어난 영역을 다루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고대의학은 傷寒論과 金궤要略을 한 묶음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의 틀을 가지지 못했던 것입니다. 또한 금궤요략은 고대의학이 행했던 진단학의 대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21세기의 한의학은 금궤요략의 진단학에서 얼마나 발전했는지 되돌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방약합편

네 번째 책은 후세방의 정수라 할 수 있는 方藥合編을 선택했습니다. 방약합편에 수록된 처방수가 워낙 많기 때문에 上統만 들여다보았습니다. 上統에는 補益하는 처방들이 方藥合編 나름의 규칙에 따라 나열되어 있습니다. 上中下와 內外中 개념으로 바라보면 補益은 內에 작용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上統은 일종의 영양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처방일 것입니다. 편집을 통해서 방약합편은 上統에 補益하는 처방, 中統에 和解하는 처방, 下統에 攻伐하는 처방을 배열하여 처방의 작용부위를 입체화시켜 놓았습니다.

한의학 순환구조론의 시각으로 볼 때 上統, 中統, 下統은 內外中개념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방약합편은 처방을 현대의학의 병명과 대응시킴으로써 異病同治개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현대의학의 병명을 다양하게 열거한 것은 이들 질병의 진행과정 중에서 해당 처방의 적응증(증상군)을 찾을 수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또한 醫學入門의 雜病提綱을 내세워 傷寒이 아닌 질병을 다루고자 노력하였고, 本草는 藥性綱領을 두어 한의학적인 패러다임을 잘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편집은 과거에 한의학이 축적했던 다양하고 방대한 지식의 정수만을 가려놓았다고 생각됩니다.

침구학이론

다섯 번째의 책은 舍巖鍼法, 董氏鍼法, 東醫寶鑑에 수록된 經穴 등을 참고로 한 침구학이론을 다루었습니다. 한의학 순환구조론에서 다루지 못했던 신경과 근육을 통해서 침구학이 들여다보고 싶었던 인체를 그리려고 노력했습니다.

침구학이 펼쳐놓은 경험의 세계 역시 한약이 펼쳐놓은 경험의 세계에 견줄 수 있을 만큼 다양합니다. 그 넓게 펼쳐진 침구학의 세계를 가로지르는 이론체계인 經絡을 해부학과 생리학 그리고 침구학의 고전을 통해서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침구학에도 분명히 해부학적인 사실과 생리학적인 사실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또한 이성적인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경험들도 많았습니다.

새로운 이론을 만들고 새로운 테크닉을 개발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그에 못지않게 과거의 한의학을 현대의 의학과 견주어 새롭게 해석하는 일도 중요한 일입니다. 한의학 순환구조론의 각론은 과거에 행해진 한의학의 기술을 복원하는 작업입니다. 이와 같은 작업을 통해서 한의학의 새로운 목표를 설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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