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동향] 채한 박사의 American Report II-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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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동향] 채한 박사의 American Report II-①
  • 승인 2004.10.08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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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계, R&D 인력부족에 정책연구가 없다

칼럼을 쉬는 몇 개월간 원고 마감의 부담에서 벗어나 간만의 휴가를 즐겼습니다. 그간 학제간 토론을 통해 진행해왔던 프로젝트도 대한한의학회지에 발표하였고, 햇살 찬란한 여름 속에서 부족했었던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무엇보다 원고 마감이 주는 부담 없이 물 흐르듯 편안한 생각을 가졌습니다.

문득, 의문이 들더군요. 과연 현재 한국 한의학계는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고, 이를 대처하기 위해서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혹은 그 이전에 어떤 현실 인식과 대안을 준비하고 있는가. 과연 현실에 발을 붙인 思考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代案들은 현실적인가.

과거 군의관 시절, 한의 군의관에 대한 정책 연구를 수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산재해 있는 자료들을 한곳에 모으고, 진료 현실과 미래의 전망을 세워본다는 나름대로의 목표를 가지고 시작하였습니다만, 진행과정을 통해 몇 가지 현실 인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첫째는 관련 자료 혹은 기존 연구가 全無했다는 것입니다. 한약 분쟁을 통해서 한국군에 한의군의관을 설치·확대해 달라는 정책적 주장을 해왔고, 그 이전의 수많은 시간을 통해서 당위성과 필요성을 역설해 왔지만, 실질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연구 자료는 전무했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설치 이유와 운영 목표, 운영 계획에 있어서는 ‘숫자’로 표현할 수 있는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단순히 구호와 투쟁으로만 점철된 과거였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연구 인력이 부족 - 전무하다는 점이었습니다. 갓 학부를 졸업한 그 당시로서는 정책 연구는커녕 ‘연구’ 자체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도 되어있지 않은 그저 의욕만으로 불타고 있었기 때문에, 경험 있는 전문가의 도움이 매우 절실한 때였습니다.

결국 ‘한의 군의관’이라는 명칭부터 군진 한의학의 경제적, 전략적 필요성과 한의 진료실 설치에 따른 제반 시설, 군 한의 진료 전달 체계에 대한 모델링 등을 혼자서 만들어야 했습니다. 많은 수의 한의대 졸업생들이 군의관과 공중 보건의로 진출하는 2005년의 현실에서도, 군 정책 그룹에 제출되었던 이 보고서가 유일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한국 한의학계가 미래를 위해서 어떠한 현실 인식 위에서 무슨 준비를 하고 있는지 자문해 봅니다. 작금의 한의계는 많은 성과를 이룬 듯 하며, 발전의 미래가 펼쳐지는 듯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이 한의학계 내부의 힘으로 준비한 것이 아니라, 외부의 환경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점은 깊은 우려를 자아내게 합니다.

기업의 미래는 R&D에 달려 있다고 합니다. 첨단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활용하는 것은 곧 미래의 경쟁력입니다. 그러나 한의계에는 줄기세포(stem cell)나 신경과학(neuroscience)같은 새로운 분야의 탄생이나 신기술의 개발은 요원한 것 같습니다. 한의계의 R&D투자를 계산해 본다고 해도 졸업생 기준으로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세계적인 생명과학 회사인 Aventis, Lilly의 R&D는 20%라고 합니다). 회사라고 한다면, 기존의 상품을 팔아먹는 영업사원만 99%를 차지하는, 미래의 경쟁력은 생각하지 않는 곧 망할 기업이겠지요.

더군다나, 1%에 불과한 인력들의 미래 활로가 현재와 같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이는 곧 한의계를 향한 칼이 될 것입니다. 그나마도 부족한 연구 인력을 외면하는 현실도 안타깝습니다. 누구보다도 한의학 연구의 전문가이면서도, 한의학 이외의 자본에 의해서 움직인다면 이는 트로이를 멸망시킨 목마보다도 더한 아픔이 될 것입니다.

최근 미 국립보건원(NIH)은 ‘마황 (Ephedrine) 함유 건강 기능 식품의 판매 금지’를 발표했습니다. 사실 이러한 결정의 이면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수많은 선행 연구와 논란, 토론이 있어왔습니다. 특별한 부작용이 없다는 실험 논문들이 있는 반면, 매우 심각한 부작용을 지니고 있다는 논문 또한 계속적으로 보고 되었고, 전문가들을 초빙한 국회 공청회 또한 열렸었습니다. 과거 미국 NIH에서의 PPA 부작용에 대한 행정 처분이 식약청을 통해 한국 의료 현실에 직격탄이 되는 것을 볼 때, 이러한 미국의 움직임은 한의학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입니다. 미국 NIH에서 제시한 바와 같이 마황의 부작용이 전문인(한의사!)의 지도와 감독이 필요할 정도로 크다면, 미국처럼 마황이 포함된 처방 전부를 ‘약사 100방’에서 삭제할 것인가 혹은 일부 처방만을 제한 할 것인가, 마황이 포함된 엑스제도 이러한 규정에 포함시켜야 할지 혹은 제외하여야 하는지 생각해보셨습니까?

PPA에 의한 양방계의 논란에 한의계가 당할 것이 아니라, 마황에 대한 새로운 논란을 불러 일으켜야 합니다. ‘한약은 독성이 있으며’, ‘전문가의 감독이 필요’하다는 것은 도리어 강조되어야 합니다. 부작용과 독성이 없다면 건강원이나 요리사에게 시킬 것이지, 무엇 때문에 전문가가 필요하겠습니까.

한의계가 해결해야 할 현안들은, 외국의 선례를 따라 해결방법을 찾아가는 양방과는 달리, 대부분의 것들을 한의학계의 손으로 제시해야 합니다. 의료 일원화를 막연하게 거부할 것이 아니라, 한-양방 이원화보다 얼마나 국민 건강과 보건제도상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지 제시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의학을 차세대 BT(Biotechnology) 산업으로 발전시킨다고 한다면, 한의계의 현실 - 99%의 한의사들을 위해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야기되어야 합니다. 한약의 유효성분만 추출해서 플라스틱 포장에 넣으면 더 이상 한의계와 무관해지는 것이 현실이라고 할 때, 과연 한의학 BT가 한의계에 도움이 되는지 자신이 없습니다. 언제까지나 똥지게 지고 장에 가야합니까?

한의학 시장 개방에 있어서, 제반 문제점과 해결 방안에 대한 정책제시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대안상보의학과 한의학 간의 적절한 관계 설정 없이는 침, 한약 모두 남에게 넘어가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한약-한약제제-생약제제와 같은 이질적인 명칭을 어떻게 교통 정리할 것인가에 대한 학술적, 정치적 타결책과 함께, ‘한의약 분업’이라는 초유의 제도가 시행될 것이라면, 전제되는 선행 여건들과 전문 한약품-일반 한약품의 구분 기준, 그리고 무면허 의료행위의 방지책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차분하게 연구되어야 합니다. 한의 군의관과 한의학 연구원이 가두 투쟁 위에서 얻어진 것이라면, 한의약법, 한의약청은 이와 달리 준비된 자료와 논리 위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 모든 현안에 있어서 관련 데이터를 모으고 일관된 논리적 방안을 제시한다는 것은 협회라는 정책 수행기관이 감당하기에는 불가능한, 전문가의 연구 보고서가 필수적입니다.

이처럼 예상되는 정책이 있다면, 항상(?) 뒤늦게 정치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연구 자료를 통해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공신력을 지닌 국립 연구 기관’인 한의학연구원의 존재 가치는 바로 여기에 - 오랜 숙고를 통해 객관적이고도 준비된 한의계 관련 정책 보고서와 자료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문제가 터진 다음에야 정치적 해결을 위해 삭발하고 단식하고 떼거리로 몰려갈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연구를 시작해야 합니다. 호미로 막을 것 가래로 막는 꼴은 이제 당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50억원이 넘는 한의사협회 예산 중에서 전문 연구 프로젝트로 얼마가 나가고 있는지 당신은 알고 계십니까? 학업을 때려치우고 머리 깎고 밥을 굶으면서 구호를 외치기 이전에, 협회가 지원한 연구비가 얼마나 되는지 한 번 물어보았으면 합니다. <다음 칼럼 ‘한의학 연구 방법론’>

필자 : 경희대 한의대 졸(한의학박사), 현 미국 클리브랜드클리닉 재단 통합의학센터 리서치펠로우
E-mail : chaeh@ccf.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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