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주역] 지풍승 – 상승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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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주역] 지풍승 – 상승의 조건
  • 승인 2023.03.17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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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원

박혜원

mjmedi@mjmedi.com


박혜원
장기한의원장

누구나 신분 상승을 꿈꾼다. 더 올라갈 꼭대기가 없는 것 같아 보이는 사람도 그 자리에 막상 가 보면 더 위의 누군가가 있다. 작은 왕국의 왕이 되면 천하 통일이 하고 싶고 천하 통일의 대업을 이루고 나면 영생불사를 꿈꾸는 것이 사람이다. 하지만 그건 아무나 이룰 수 없는 꿈이다. 아무리 능력이 출중하다 한들 시류의 바람을 타지 않으면 상승곡선에 올라탈 수 없다.

주역에도 이렇게 위로 올라가는 모양새의 괘가 있다. 지풍승괘의 괘사는 다음과 같다.

升 元亨 用見大人勿恤 南征吉

彖曰 柔以時升 巽而順 剛中而應 是以大亨 用見大人勿恤 有慶也 南征吉 志行也

바람은 목기(木氣)이므로 위로 뻗어 올라간다. 그 위에 흙이 덮여 있지만 단단한 바위가 아닌 보드라운 흙이고 그것을 뚫고 나오면 그 흙은 나의 자양분이 되고 지지대가 되어줄 것이다. 그러나 알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과 같이 씨앗에서 싹이 터 어두운 곳에서부터 밝은 곳을 찾아 가는 것은 본능이지만 또한 두려움이 없는 일은 아니다. 내가 눈을 떠 처음 본 세상 말고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리로 향해 가는 진취적인 생각은 자기 확신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다.

初六 允升大吉

초육은 구이가 싹을 틔워 처음으로 뿌리를 내리는 흙이다. 사람으로 따지자면 유년기에 영향을 주는 주양육자와 같다. 어린 아이를 키워보면 안다. 그 시기에는 사랑받고 보호받고 보살핌을 받는다는 믿음이 가장 중요할 때다. 그게 제대로 되지 않으면 성인이 되어서도 쉽게 흔들리고 괴로워하게 된다. 초육은 구이의 그런 든든한 뿌리를 받쳐줄 존재다. 구이의 가능성을 믿고 키워주는, 천재의 재능을 처음 알아보는 첫 선생님과 같은 것이다. 그 안목을 갖추고 구이의 밑바탕이 되어줄 부분을 담당하는 초육이니 크게 길하다.

九二 孚乃利用禴 无咎

구이는 승괘의 주인공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롭다, 길하다, 형통하다, 그런 말이 없다. 그저 ‘허물이 없다’가 전부다. 상전에는 구이가 믿음이 있는 것은 有喜也라 하였다. 구이는 육오와 음양응을 이루긴 하지만 음의 자리에 있는 양이다. 양의 자리에 있는 음인 육오보다 능력이 훨씬 출중하지만 아직 신분이 낮거나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다. 그러나 구이는 자기의 능력을 믿고 있다. 하늘의 도움에 크게 기대야 한다면 제사가 간략할 리 없다. 때가 아닐 때 강행해야 하는 위험이나 능력 이상의 일들을 해내야 할 때 보통 우리는 신이나 하늘에게 무언가를 기원한다. 하지만 구이의 제사는 통보나 다름없다. ‘제가 이러한 일을 하고자 합니다’ 하는 출사표인 것이고 그게 올바른 일이며 자기의 능력 역시 충분하다는 것을 믿고 있는 것이다. 자기 확신이 지나치면 일을 그르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주위의 말을 듣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 정도를 걷고 중용을 지켜야만 하고 그래서 겨우 허물이 없다.

九三 升虛邑

세 번째 효의 자리는 내괘에서 외괘로 넘어가는 자리이고 양의 자리에 있는 양인 구삼 앞에는 탁 트인 땅밖에 펼쳐져 있지 않다. 바람이 아무것도 없는 평지 위에 불면 그 기세와 속도는 얼마나 빠를까. 막힌 것이 없으니 의심할 것도 없다.

六四 王用亨于岐山 吉无咎

상전에는 왕이 기산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은 順事也라고 했다. 순하게 섬기니 길하고 허물이 없다는 것이다. 기산은 주나라의 첫 번째 수도가 있던 곳이며, 주 무왕의 아버지인 문왕이 다스리던 영토였다. 육사는 문왕이 주왕의 폭정 아래에서도 성심을 다하며 자기의 백성들에게 지극했음을 나타내는 효사이다. 비록 문왕은 직접적으로 주왕을 처단하지 않았더라도 그의 아들인 무왕이 민심을 얻는데 큰 역할을 했다. 구이와 같은 무왕이 대사를 이루는 데 바탕이 되어주고 문을 열어준 것이다. 육사의 역할도 꼭 그것과 같다. 외괘의 첫 번째 관문으로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를 판단하고 역사의 흐름을 읽은 것이다.

六五 貞吉 升階

육오는 구이와 서로 응하지만 양의 자리에 있는 음이다. 능력이 부족하기에 구이와 같은 능력있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만약 자기가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부정하고 제멋대로 하려고 든다면 암군이나 폭군이 될 수 있다. 섬돌은 왕만이 밟을 수 있는 것이고 그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자리이다. 그 위에서 바르게 해야 진정한 왕이 될 수 있다. 육오의 자리는 결코 단단하지 않다. 육사처럼 덕망 있는 제후가 바로 옆에 있기에 비교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구이와 같은 능력 있는 사람을 등용하고 바르게 행동해야만 자기 자리를 지킬 수 있고 길해진다.

上六 冥升 利于不息之貞

상육은 가장 꼭대기에 있지만 누구도 그가 왜 그 위치에 있는지를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능력이 있어서도 아닌 것 같고, 인심을 얻어서도 아닌 것 같은데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 최소한 상육은 바르기라도 해야 한다. 그 자리에 있는 걸 수긍할 수 있을 만한 뭐라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구이가 결국은 크게 자라나 그 자리에까지 왔을 때 굴욕적인 퇴장을 겪지 않을 수 있다. 정상의 자리는 누구나 언젠가는 내려와야 할 곳이지만 그 이후를 ‘추락’으로 볼지 ‘착지’로 볼지는 그 사람의 지난 행적과 앞으로 보일 행동에 달렸다. 그러니 바르게 하려는 노력을 쉬지 않아야 한다.

세상에는 운이 존재한다. 노력과 재능의 결합이 항상 성공으로 도출되지 않는다. 시대를 너무 일찍 타고난 천재들의 불운한 삶은 이미 수없이 많이 보아 왔다.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태어났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그 재능을 알아봐 주는 사람, 그 재능을 펼치는데 필요한 학습과 환경을 제공해주는 사람, 그리고 그 재능을 널리 알릴 무대를 제공하는 사람이 있어야 당대의 천재가 완성된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아직 빛을 보지 못한 채 괴로워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천재들에게도, 삶의 거대한 무게와 파도 앞에서 재능과 소명 따위는 배부른 투정이라 여기며 생업에 내몰리는 수많은 범재들에게도 위로와 응원을 전한다. 부디 사람과 하늘과 때가 그대들을 알아봐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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