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중국 傷寒學의 대가.”
包識生은 名이 一虛, 字 가 德逮로서 福建省 上杭출신 중의학자이다. 그는 집안이 대대로 業醫로 아버지 桃初는 傷寒學에 뛰어났는데, 包識生은 어린 시절부터 의학을 연구하여 『傷寒論』을 “聽誦六寒暑, 硏究八春秋”라고 표현될 만큼 열심히 연구하였다. 20대부터 중의사로 활동해서 명성이 자자하였다고 한다.
1912년 上海에 가게 되는데, 당시에 西學東漸으로 國學이 날로 쇄퇴하여 中醫學은 배척받는 상황이었다. 이 때에 중의학을 진흥시킬 뜻을 가지고 활동을 시작하였다. 1912년 북양정부가 신교육 학제에서 중의학을 폐지한 것에 대해 상해의 余伯陶 등과 같은 뜻을 가진 中醫들을 모아서 神州醫藥總會를 조직하고 다음해에 『神州醫藥學報』를 창간하게 되었고, 余伯陶와 함께 包識生이 主編을 맡게 된다. 1918년에는 神州醫藥專科學校를 설립하여 敎務長을 맡게 된다. 1928년 上海中國醫學院의 교수가 되어 傷寒論 등을 강의하였다. 전국적으로 中醫學校의 공통교재의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포식생의 저술을 모아서 『包氏醫宗』이라는 총서를 모아서 간행하였다. 그는 傷寒學을 최고의 종주로 삼아야 한다는 입장에서 “謹遵成法”, 方藥에 있어서는 “從不敢少加減於其間”을 주장하였다.
김남일 /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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