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에는 윤리가 없는가 - 박석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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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에는 윤리가 없는가 - 박석준
  • 승인 2005.12.16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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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준
대구한의대학교 한의대 교수


봉건적 윤리와 질서 적용은 시대착오
한의학에도 철학(윤리학) 연구 필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황우석 교수 연구팀을 둘러싼 문제가 전국을 흔들고 있다. 이 문제는 국내만이 아니라 여러 의미에서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세계 사람들은 한국에서 윤리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어 황우석 교수가 큰 곤경에 처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놀랍게도 한국국민들은 황우석 교수를 영웅으로 만들었다.
난자를 기증하겠다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진달래 꽃 길을 보면서 어떤 사람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어떤 사람은 새로운 사이비 종교의 탄생이라고 저주했다.
그러나 정작 세상이 이렇게 시끄러운데 비해 한의계에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어 보인다. 특히 윤리라는 측면에서, 한의학의 윤리라는 관점에서 문제를 제기한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황 교수 문제가 처음 불거져 나왔을 때, 황 교수를 두둔하는 측에서는 연구원의 난자 기증 문제에 대해 이런 답을 했다고 한다. 곧 우리나라의 전통에서는 임금이 약을 먹기 전에 신하가 먼저 맛을 보고 아버지가 먹기 전에 자식이 먼저 맛을 보는 미덕이 있었고 그것은 『동의보감』을 비롯한 한의학의 고전에 다 언급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연구원들은 이런 전통에 입각하여 자기 자신이 먼저 약을 맛보듯 스스로 자발적으로 난자를 기증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현재의 윤리라는 문제에 있어서 ‘역사적 근거’를 내세운 것이었다.

원래 임금이나 아버지에 먼저 약 맛을 본다는 말은 『예기』에서 나온 말이다(필자의 짧은 지식에 의하면 의서에는 이런 말이 없다). 이 말에 뒤이어 “그 의사가 삼대 째 이어온 의사가 아니면 그 집 약을 먹지마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는 동서양을 통틀어 임상시험의 윤리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보인다.
그러나 잘 알다시피 『예기』라는 책은 주나라 때에 봉건을 받은 제후가 황제에 대해 지켜야 할 도리(예)에 대해 적은 정부 문서이며 위의 문장은 봉건적 질서를 지키면서(곧 황제에 충성하면서) 모든 일의 첫째는 신중해야 한다는 제후에 대한 명령이었다.

더군다나 봉건적 질서로 편성되어 기본적인 의료가 가(家)라는 체계 속에서 이루어지던 사회 구조 속에서의 윤리였던 것이다. 그러나 너무도 당연한 것이지만 오늘날은 봉건사회가 아니며 우리 사회는 더 이상 ‘家’의 체계가 아니라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자유로운 개인으로 구성된 사회다.
오늘날 일부를 제외하고 모든 의료는 병원이라는 근대적 조직 속에서 이루어지며 그 의료는 하나의 상품으로 거래된다. 이런 사회에서 봉건적 윤리와 질서를 적용하려는 것은 분명 시대착오적인 일이다.

이런 비역사적인 사태가 벌어진 근저에는 결국 우리 의료계, 생명과학계에 윤리가 부재하다는 말과 통한다. 필자의 과문한 탓이겠지만 우리나라에 철학(윤리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에게서 이번 문제에 대한 마땅한 대안을 들어본 적이 없다. 더군다나 동양철학을 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이번 문제에 대해 제대로 발언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면 한의계 쪽은 사정이 어떤가.
현재 한의대에서 한의학의 윤리를 가르치는 곳은 한 곳도 없다. 그나마 일부에서 강의하는 의학(료)윤리라는 과목은 기본적으로 서양의 근대과학과 의학을 분석하고 정당화하기 위한 것으로, 서양의 근대철학체계에 맞추어 구성되어 있다.

한의학의 관점에서 한의학의 윤리를 언급한 책이나 사람은 없다. 물론 서양의 근대 과학, 혹은 의학의 윤리에 대해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윤리의 잣대를 들이대게 되면 곧바로 한의학은 가장 비윤리적인 학문이 되며 한의사는 가장 비윤리적인 집단이 되어 버린다는 데에 있다.
왜냐하면 기존의 윤리학의 기준은 서양의 근대 철학에서 말하는 플라톤 이래의 선(善)을 기준으로 한 것이며 오늘날에 그 판단의 근거는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과학일 뿐이다. 임상시험의 윤리적 기준 역시 과학일 뿐이다. 그리고 이 과학은 당연히 서양의 근대 과학이며 한의학은 배제되어 있다.

이러한 윤리를 도입할수록 한의학은 점점 더 비윤리적인 학문이 될 뿐이다. 이런 경우, 한의학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유일하게 서양의 근대 과학적 잣대에 따라 스스로를 해체하는 것이다.
오늘날 과학사의 성과를 보면 더 이상 서양의 근대 과학만을 과학이라고 보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한의학은 과학인가, 과학이라면 어떤 과학인가, 그 과학은 어떻게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인 가치 혹은 진리로 인정받을 수 있는가와 같은 논의가 없다는 것이다.

윤리학은 기존의 서양 근대 철학의 한 분야가 아니다. 또한 그것은 과학의 발전에 공연한 발목을 잡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과학의 발전을 선도하는 길잡이이며 나아가 그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과학을 만드는 조련사다.
오늘날 미국의 의사와 한국 의사에 대한 각 국민들의 존경도가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것도, 미국에는 잘 훈련된 철학(윤리학) 집단이 존재하며 국민들은 이들의 판단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미국의 의사는 내부에 자기 통제를 하는 장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가부장도, 성직자도 더 이상 과거와 같은 권위를 갖지 못하는 오늘, 철학은 이들을 대신하는 새로운 학문이 되었다. 그럼에도 유독 한의학에는 철학(윤리학)이 없다. 한의학에 철학이 필요한 것은 학적 체계의 완성이라는 관념의 문제가 아니라 한의학은 과연 살아남을 것인가, 살아남는다면 어떤 모습으로 어디로 가야하는가라는 문제의 관건이다.
봉건시대의 철학이 오늘날 그대로 우리의 철학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서양의 근대철학 역시 우리의 철학이 될 수 없다. 과거를 돌아보면 한의학에는 그 시대에 걸맞은 그 시대의 윤리 전통이 있었다.
그러나 과거의 윤리를 오늘날 그대로 적용한다는 것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의학의 철학, 한의학의 윤리학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그것만이 한의학을 해체하지 않고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일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약력
▲서강대 경제학과 졸 ▲대전대 한의대 졸 ▲경희대 대학원(한의학박사) ▲현 대구한의대 교수 ▲현 동의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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