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단상] 따로 또 같이 - 박종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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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단상] 따로 또 같이 - 박종운
  • 승인 2005.12.16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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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운
경기 부천 경희으뜸한의원


제가 살고 있는 집에는 열한 사람이 삽니다. 무척 많지요? 저의 어머니와 저의 부부, 그리고 아들 삼형제가 저의 식굽니다. 그럼 나머지 숫자는 뭐냐고요? 저희와 함께 사는 고교 동창의 식구들입니다. 동창 부부와 딸 둘, 아들 하나. 이렇게 모두 열한 사람이 한 지붕 아래서 살고 있습니다. 벌써 3년 되었습니다. 아파트 아래위 층에서 산 것 까지 치면 7년째입니다.

저는 부천에서, 친구는 서울 잠실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만나다가 아쉬우면 주말에 서로의 집을 오가곤 했지요. 그렇게 몇 년을 지내다 보니 아예 가까이 사는 것이 낫다 싶어 그 친구가 이사를 왔습니다. 그러다 땅을 매입해 집을 짓고 위아래 층에 살고 있지요. 현관문 하나만 들어서면 두 집은 모든 공간이 항상 개방되어 있습니다. 지하실도 파서 공동의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웬 자랑을 그렇게 늘어놓나 하실 겁니다.

저희 집이 식구가 많다 보니 여러 일로 조용한 날이 없습니다. 생일만 해도 일년에 열한 번, 거기에 각자의 시댁이나 친정 부모님까지 챙기면 더하지요. 여섯 아이들 학교생활에 따른 시험이나 소풍도 여러 번이라 일년 내내 준비물 얘기가 나옵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여럿이다 보니 처음엔 혼란스러움이 많이 있었습니다. 집안의 살림도 중복이 많았고, 공간의 활용도 비효율적이었고, 물품의 낭비도 심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자연스럽게 각자가 잘하고 잘하지 못하는 것들이 드러나서 훨씬 효과적인 일처리가 이루어졌습니다. 형이 없는 아이에게 형이 생기고, 누이가 없는 아이에게 누이가 생기고, 또 딸이 생기고, 어른들에게는 외아들이 아들 둘이 되고 며느리도 둘이 되고… 너무나 많은 것들이 새로 생겼습니다.

또 할 수 있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운동 좋아하는 어른은 아이들과 같이 등산과 달리기를 합니다. 마찬가지로 음악이나 미술과 같은 예술 활동 좋아하는 어른은 그쪽으로 전담하고, 여행이나 답사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것을 맡고, 요리나 다도와 같은 교양 활동은 그쪽에 조예가 깊은 어른이 책임지고…. 아이들만 죽어납니다. 오히려 공부 좀 하게 내버려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항상 잘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서로의 주장이 상충할 때도 있고, 또 서로 회피하기도 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여러 사람의 무관심 속에서 혼자서 어려움을 해결해야 했고, 어떤 때는 정작 노력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단지 조금 도운 노력만으로 과분한 칭찬을 듣기도 했습니다.
짧다면 짧은 시간, 길다면 긴 시간을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은 저희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따로 또 같이 라는 원칙입니다.

저희는 비록 두 가족이지만 한지붕 아래 살고 있는 한 식구들입니다. 그래서 그 속에서는 같이 공감하고 느끼는 시간과 공간이 있습니다. 식구가 적은 다른 집보다 많은 일들이 발생하지만 또 그만큼 많은 사람이 있기 때문에 저희의 능력도 큽니다.
또 저희는 한 집에 살고 있지만 엄연한 두 가족입니다. 서로의 생활 방식과 철학이 다르고 종교도 다른 두 집이 같이 있다보니 다른 곳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배울 수 있는 다양한 것들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최근까지 한의계는 전에 접하지 못한 여러 가지의 다양한 시련에 노출되고 있습니다. 갈수록 열악해지는 의료 시장, 양의사와의 업권 갈등, 해마다 되풀이 되는 약재 파동, 언제부터 나온 얘기지만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법률 제정 등등. 많은 뜻 깊은 한의사들이 고심하고 노력하고 있지만 단순히 어느 누구의 힘만으로 해결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저는 저희 사는 모습에서 따로 또 같이 방법이 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생각합니다.
많은 한의사들이 배출되어 시장이 좁아지는 것은 서로 간에 돈독한 우정을 쌓아 한 식구가 되면 해결될 수 있습니다. 주변의 동료를 경쟁상대로 보지 말고, 나의 선배고 후배라 생각하면 만날 때마다 언제나 반갑고 든든합니다. 저희 집에도 두 아이가 같은 학교 같은 학년입니다. 심지어 같은 반인 경우가 있었는데 그들은 경쟁상대가 아니었습니다. 한쪽에서 많으면 덜어주고, 모자라면 받아 같이 공유하는 좋은 동반자입니다. 친구들도 공유하여 두 배나 많은 친구가 있습니다.

또 여럿이 있다보면 나 혼자 할 수 없는 다양한 분야의 많은 일들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혼자서 독불장군식으로 모든 것을 처리할 수는 없습니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한의계의 특화된 체인을 바라보면 흐믓하지만 그것들이 주변의 다른 식구들과 알력을 만들고, 또 심지어는 다른 유사업종의 사람들과 분쟁이 있을 때 같은 마음으로 대항하지 못하고 어려움에 힘들어하는 것들을 볼 때 더욱 같이의 의미가 생각납니다.

이제는 예전과 달리 다양한 능력과 관심을 가진 한의사가 매년 많이 배출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한의학을 하는 과학자요, 엔지니어요, 경영자입니다. 눈에 보이는 자격으로는 한의사라는 통일감이 있지만 그들의 능력과 가능성은 다양합니다. 그들이 하는 것은 모두 한의학의 표현이고 변형일 뿐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같은 능력이 발휘되는 시장은 더 이상 좁은 것이 아닙니다. 출판업을 하는 한의사가 있고, 제약업을 하는 한의사가 있으며, 철학을 하고, 윤리를 생각하는 한의사도 있어야 합니다. 법에 대해 박식하고, 국제적인 감각이 뛰어난 한의사가 있어 우리의 한의학이 세계화되는데 그들이 힘을 써야 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따로가 인정되어야 합니다.

각각의 개성과 능력이 존중되고 그것이 잘 발휘되도록 도와 줄 때 우리는 적은 노력과 시간으로도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아울러 한의사가 아니더라도 한의학을 사랑하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이 한식구가 될 수 있도록 마음을 넓히고 신뢰를 쌓으면 그 효과는 더욱 커집니다.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남은 한 해 잘 정리하시고 다가오는 새해에도 재미있는 세상을 잘 만드셔서 향유하시길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만들어 나누십시요.

▲경희대 한의대 졸업(한의학 박사)
▲저서 ‘아유르베다’(일중사 刊)
▲현 경기 부천 경희으뜸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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