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316] 벽瘟新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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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316] 벽瘟新方
  • 승인 2006.12.01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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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를 거듭하고 경험을 참작하여

1653년(효종 4)에 安景昌(1604~?)이 왕명을 받아 지은 것을 언해하여 校書館에서 간행한 방역 전문서이다.
저자인 안경창은 자가 子興, 경기도 여주 출생의 의학자이다. 그는 1627년에 23세의 나이로 의과에 급제한 후 1646년 내의원에 어의로 들어가 활동하다가 훗날 首醫로서 정3품 당상관인 通政大夫 僉知中樞府事에 오를 정도로 뛰어난 의술을 인정받았다.

본문에 앞서 蔡裕後(1599~1660)의 서문이 실려 있는데, 채유후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호가 湖洲, 자는 伯昌이며, 시호는 文惠이다. 그는 17세에 생원시를 거쳐, 1623년(인조 1) 改試文科에 장원, 賜暇讀書를 받는 특전을 누렸다. 1636년 병자호란 때에는 執義로서 왕을 호종하였으며, 金류 등이 주장한 강화 천도에 맞서 主和論의 입장에 섰다. 효종이 즉위한 뒤 大提學으로서 『인조실록』, 『宣祖改修實錄』의 편찬에 참여했고, 世子侍講院의 右副賓客을 거쳐 1660년(현종 1) 이조판서를 지냈다. 작품으로는 시조 2수가 전해지고 있고, 문집으로 『호주집』이 있다.

그의 서문에 따르면 계사년(1653) 봄에 황해도(海西) 지역에 려疫이 크게 유행하여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자 효종이 어의인 안경창에게 명하여 이전에 있던『簡易벽瘟方』, 『新纂벽瘟方』 등 온역 관련 의서(벽瘟舊方)를 토대로 당시에 유행하는 전염병의 특성과 당시 조선의 실정 등을 면밀히 검토하여 조선의 풍토와 조선인의 체질에 알맞는 치료법을 만들어 내었다.

이 책의 특징은 疫病을 表證, 半表半裏證 등으로 변증하고 있으며, 그 처방의 선택에 있어서 『상한론』 등의 기본 方書에서 취한 처방도 있으나 대부분 우리나라의 경험방들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책의 내용은 허준이 1612년에 펴낸 『新纂벽瘟方』에 비해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으나 훨씬 간명하고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향약방으로 재구성한 것이 큰 차이점이다.

또한 이 책은 무엇보다도 일반 백성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한글로 된 언해를 붙여놓았으며, 조리법이나 전염예방법도 민간에서 간편하게 행할 수 있는 방법을 중심으로 기록한 점이 돋보인다.
본문의 첫머리에는 瘟疫을 ‘시병’(時病)이라 풀고 있어 유행성 질환을 통칭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약재도 복숭아잎(桃葉), 뿌리붙은 파밑둥(連根蔥白), 개구리밥(浮萍), 칡뿌리(乾葛), 쪽잎즙(藍葉汁), 뱀딸기(蛇매), 솔잎(松葉)과 같이 민가 주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향약류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본문은 瘟疫病源, 瘟疫表證宜汗, 瘟疫半表半裏宜和解, 瘟疫裏證宜下, 瘟疫發黃, 大頭瘟, 瘟疫禳法, 瘟疫벽法, 不傳染法, 禁忌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온역병원’<사진>은 온역의 원인과 증상에 대한 기록이며, ‘온역표증의한’, ‘온역반표반리의화해’, ‘온역이증의하’는 병사가 침입한 부위에 따라 치료법을 구분한 것이다. ‘온역발황’, ‘대두온’은 온역의 증상을 말한 것이고 ‘온역양법’, ‘온역벽법’, ‘불전염병’, ‘금기’ 등은 온역의 금기와 예방법을 써놓은 것이다.

이 책은 20장 밖에 되지 않은 적은 분량이지만 실용성이 높았기 때문에 1723년(경종 3)에 甲寅字로 重刊하였으며, 영조대에도 여러 차례 간행하였다.
이에 앞서 현종 원년인 1660년경에는 『救荒撮要』와 합본하여 간행한 것으로 보아 이 책은 역병과 기근 등 온 나라의 재난이 있을 때마다 방역전문서로 제 구실을 다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약재 중에 구하기 어려운 것을 덜어내고 俗方의 가운데 쉽게 써볼 만한 것들을 더하고자 애썼다”는 말이 이 책의 성격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한국한의학연구원 안상우
(042)868-9442
answer@kiom.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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