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2003년 캠페인 한의학교육 바로 세우자④-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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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2003년 캠페인 한의학교육 바로 세우자④-교과서
  • 승인 2003.04.0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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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피는 큰데 볼 게 없다” 학생들 외면
교수들 “연구방법론 개발에 대학․학회 소홀”

2000년 의약분업 당시 젊은 양방의사들은 형편없이 낮은 의료수가와 과잉진료 문제가 제기됐을 때 하나같이 ‘나도 교과서적으로 진료하고 싶다’는 주장을 펴 국민적 공감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사실 양의사들은 자신의 연구논문이 기존의 학설을 뒤집어 최종적으로 교과서에 실리는 것을 대단한 영광으로 삼는다. 이런 교과서들은 4년 주기로 개정되다가 최근에는 3년 주기로 개정판이 출간돼 서양의학 교육을 체계화시키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양방은 각 과목별로 권위있는 교재를 갖고 있다. 그중의 하나가 해리슨 내과학이다. 새로운 연구성과들을 계속 모아가고, 틀린 내용은 고치고, 좀더 보기 좋게 정리해 나가려는 지난 50년간의 노력이 해리슨 내과학을 전세계적인 교재로 만들었다.

시험 때나 보는 교과서

그런데 한의대 교재는 권위는커녕 학생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시험 때 말고는 교과서를 읽으면서 공부하는 학생이 거의 없고, 졸업후 소장 가치를 느끼는 한의사도 별로 없다.

교과서문제를 연구한 모 대학 학술위원회는 읽히지 않는 교과서의 공통적인 문제로 △내용은 많지 않은데 쪽수만 부풀린 점 △동의보감 중심의 교과서 체계에다 중국책과 서양의학이론의 첨가로 서로 앞뒤가 맞지 않은 점 △내용은 같은데 정리만 다른 식으로 한 점 △백화문을 그대로 옮겨 용어가 명확하지 않는 점 △과목마다 겹치는 영역이 많다는 점을 들고 있다. 한 마디로 한의대 교과서는 백과사전식 묶음이지 학습목표를 뚜렷이 설정한 상태에서 체계적으로 서술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교수들조차 학생들의 지적이 일부 타당하다고 인정한다. 학생들의 주장이 학문적 가치보다 임상적 가치를 지나치게 우선시하지 않았나 하는 의문도 있지만 학문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대학의 책임이 더 크다는 것이다. 중국중의학서적의 무비판적인 번역과 서양의학적 방법론의 무분별한 도입은 한의학교육과 교과서의 정체성을 떨어뜨린 주 요인으로 지적됐다.

중국중의학과 한국한의학 간에는 일정한 차이가 있는데도 우리 교과서가 중국책에 의존함으로써 임상과 교과서내용이 괴리되었고, 교수와 학회의 논문도 이론과 원전보다는 대부분 서양의학 방법론(실험논문)을 채택함으로써 한의학적 접근방법론과 도구 개발에 소홀히 했다는 것이다.

연구와 교육 불일치가 장애물

한의학 교재는 90년 들어 교실별로 공통교과서를 제작하여 최근에는 개정판을 냈거나 준비중에 있다.

그러나 개정판이 나왔더라도 일부 교과서는 앞뒤가 안맞는 내용, 군더더기 표현, 어려운 용어․표현 등이 시정되지 않고 있다. 공통교재 사용률도 11개 대학 중 절반 정도만 사용하고 나머지 대학은 자체적으로 개발한 강의록으로 대체하는 경우도 있는 등 공통교재를 적극적으로 개발․활용하지 않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 모 대학 생리학교실의 K 교수는 그 원인을 두 가지로 들었다. 우선 한의대가 전부 사립대로만 구성되어 연구비를 정부의 프로젝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정부과제가 서양의학적 방법론을 요구함으로써 교육과 연구방향이 일치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원인으로 한의대교수의 절대인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들었다. 의대와 치대에 비해 학생수는 그런대로 많지만 교수수는 부족한데다가 그마저도 교수평가기준인 교육․연구․봉사에서 불리하다는 것이다. 특히 연구업적 평가의 기준이 서양의학적 방법론이 주류를 이루는 외부과제 유치실적에 있는 만큼 한의대 교수들은 절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소속 대학에서 연구비가 나오더라도 소속 대학의 과제에 해당하는 연구에 한정될 뿐 11개 한의대에 공통적인 교재연구비가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교재연구에 투입할 재원이 없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누가 주체가 돼야 하나?

교수들은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변화는 있을 것”이라는 다소 희망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10년 전에 비해 교과서 개정작업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의대나 치대에 비해 속도는 더디겠지만 많이 바뀔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교실별로 구성된 교과서 집필위원회를 활성화시켜 교육목표, 적절성과 중복성, 임상과의 연계 등을 끊임없이 고민하다 보면 현재보다는 나아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교수들은 주체적인 노력이 수반될 때 변화의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주체형성 방안의 하나로 일차적으로 범한의계의 역할분담이 거론된다.

지금까지와 같은 양적인 인력수급 차원에서 탈피해 질 중심으로 인력관리방향을 전환하자는 주장이 그것이다. 임상가는 대학에 필요한 교육내용의 변화와 교과서 개정을 요구하는 대신 재정지원 방향으로 한의협-학회-대학-학생이 뜻을 모으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한의협은 미국 의사협회(AMA) 같이 한의계 각 단체의 조정자로서 역할을 해낼 것이 요구된다.

대학에서는 임상관련학회가 일정한 몫을 담당해야 한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특히 동의보감 등을 통한 전통적 방식의 교육을 선호하는 개원가는 새로운 학회를 만들면서 대학을 배제할 것이 아니라 필요하면 논문을 발표하여 대학에 교육을 요구하고, 그래도 부족하면 전문의과정을 만드는 방향으로 학문적 체계형성에 도움을 줘야 한다고 협조를 당부한다.

시장원리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관심을 끈다. 어느 대학이나 졸업하면 면허증을 받는 현 시스템으로는 대학 스스로 교과서의 개정작업에 열의를 불어넣을 수 없으므로 소비자(학생)의 욕구를 공급자(교수)가 해소시킬 수 있도록 분과학회에 책임을 지우자는 게 시장론의 요지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은 적고, 고민의 방향도 달라 쉽게 의견을 취합해내지 못해 권위있는 교과서제작을 가로막고 있다. 언론사의 토론회 주선, 기초학회의 강화, 양방 의학교육협회 운영방식의 참고 등의 대안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사실 무면허 침구사의 만연, 다수 중국유학생의 유입전망, 대체의학으로 포장된 양의사의 침구의료행위 등 산적한 현안으로 포위되어 있는 한의계가 질식할 것만 같은 답답한 상황에서 벗어나는 길은 한의학과 비한의학의 차이를 극명하게 증명해내는 일로부터 시작한다면 내실있는 교과서의 제작은 그 시작이 아닐까? <계속>

김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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