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新對譯編註 醫學入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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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新對譯編註 醫學入門
  • 승인 2009.10.16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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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가 여유 부리지만 임상가 피눈물 흘려야”
꽤 독한 책 유려한 문장으로 번역

新對譯編註 醫學入門
진주표 역해. 법인문화사. 2254쪽. 250,000원

박물관에 들어선다. 신기한 것으로 가득한데 도대체 어디에 쓰는 물건들인가? 이 때 학예사가 나타나 유물의 유래와 용도를 능숙히 설명한다. 혼자서도 구경할 수 있는 곳이 박물관이지만, 박식한 학예사의 설명을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이라면 시간이 걸리고 다리가 아프더라도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느낄 것이다. 박물관은 비로소 살아난다.

<의학입문>은 조선 중기 이후로 <동의보감>과 함께 학파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몇 안 되는 의서 중 하나이다. 그러나 쉽지 않은 구성과 내용 때문에 우리가 혼자 공부하기에는 벅차다. 역자는 유려한 문장으로 번역하여 의학입문이라는 꽤 독한 책을 술술 읽게 해줄 뿐 아니라 임상에 유익한 정보까지 덤으로 안겨준다.
이 책의 아름다움은 우수한 개념 정리와 신선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이론 전개, 꼼꼼한 교감에 있다. 역자가 지닌 의사학과 원전에 대한 지식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如狂과 發狂의 차이, 痓와 風의 차이, 厥이나 宗筋의 개념 정리는 교만한 마음의 허를 찌른다. 六氣 중 火와 熱의 차이점에 대한 논의에 이르면 해묵은 매듭 하나가 풀린다. 특히 奇經八脈의 기원과 치료에서의 중요성, 命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은 학계의 주목을 끌 만하다.

역자는 원문을 인용 의서 및 관련 의서들과 대조하여 수많은 잘못을 고쳤다. 단순한 오류는 물론, 의사학적인 변천과정을 짚어가며 틀린 내용을 지적하였고, 실익이 없는 내용을 비판하여 옥석을 가렸다. 丹溪의 이론과 유교적 권위를 향해 기우는 이천과, 불필요한 수사를 제거하고 이론적 근거를 파헤치려는 역자 사이의 팽팽한 긴장이 시대를 넘어 흐른다. “이론가는 여유를 부리지만 임상가는 피눈물을 흘려야 한다”고 한 역자의 말에서 그가 지나온 고민을 읽을 수 있다.

역자가 입문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부분은 육기 분류법과 맥 수련법인데, 맥의 체득을 중요시한 것은 당연하지만, 입문 자체로 본다면 문증의 중요성을 간과한 것이 아쉽다. 문증을 토대로 한 횡적인 확장 전개는 이천이 숨겨둔 무기이기 때문이다. 역자도 지적하였듯, 진찰법을 익힘으로써 처방을 고르는 능력을 배양할 수 있음은 의학입문의 강점이다. 언젠가 의학입문을 전통적인 방식으로 활용하여 누험을 얻은 스승께서 후학들에게, “처방이 없어서 병을 못 고치는 것이 아니다. 처방은 어느 책에든 나와 있는데 골라서 쓸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는 말로 경책한 일이 생각난다.

이외에도 본초와 처방, 진맥과 침구, 임상각과에서 역자의 탁견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임상의들이 간과하기 쉬운 運氣나 소아의 痘症에 대한 해설은 손에 잡힐 듯 와 닿는다.

평소 의학입문을 애독하는 사람이 이 책을 읽는다면 의학의 본뜻에 성큼 다가설 것이고, 멀리하던 사람이 읽는다면 실용적인 연결고리를 발견할 것이다. 중요한 내용을 짚어주므로 핵심을 공부할 수 있고, 잘못된 내용을 바로 잡았으므로 오도될 염려가 없다. 역자가 작업한 신대역동의보감을 함께 공부한다면 좋은 배합이 될 것이다. 입문은 六氣, 보감은 精氣神으로 방법론이 다르기에 상호 보완된다는 것이 역자의 주장이다.

사람을 근본에 두고 의학을 사유하는 역자에게서,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큰 사상을 연상하는 이는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역자는 동의보감과 의학입문이라는 한국 임상의 큰 가지들에 자신의 공부 성과를 아낌없이 풀어 놓았다. 우리는 그 나뭇가지 아래 한가로이 앉아 책을 읽는다.

홍세영/ 전통의학史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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