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 History(2) | 삼국시대의 의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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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History(2) | 삼국시대의 의사들
  • 승인 2009.10.2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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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웅석

차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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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 관련 정부 조직으로 약부가 있었다. 약부는 백제의 관직이며 지금의 보건복지가족부에 해당한다”

한반도에서 본격적인 국가적 형태가 기록 상으로 등장하는 것이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이다. 이 세 나라는 나름의 정치체제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의정제도도 갖추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론 민간에서도 나름의 치료행위를 전담하는 의료인이 종사했을 거라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시기의 기록이 미비하고 게다가 있는 기록 자체도 주변국의 단편적인 기록에 의지해야 하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재현해 내기는 쉽지 않다. 현존하는 단편기록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신라에 관한 기록은 568년 진흥왕 순수비에 기록된 내용이다. 왕의 수행원 중의 한 사람으로 藥師인 篤支次라는 사람이 등장한다. 직급 小舍였는데, 당시 占人이 소사보다 높은 大舍였던 것으로 보아, 의료와 주술의 영역은 지금과 많이 달랐던 것으로 추정한다.

고구려의 의사에 대한 기록은 일본의 <일본서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645년 2월15일에 일본의 白雉가 즉위식을 갖는 자리에 삼국의 요인들이 의전 상 참석한 기록이다. 여기에 백제에서는 豊璋과 塞城, 忠勝이 고구려에서는 侍醫 毛治가 신라에서는 侍博士가 참석하였다. 풍장은 백제의 무왕의 조카로 일본에 체류 중이던 인물로 의자왕이 당나라에 잡혀간 뒤 백제 부흥운동을 주도하기 위해 백제로 건너온 백제 왕족이고, 충승도 그때 동행한 백제 왕족이다. 이러한 당대 명사들과 나란히 참석한 인물이 고구려에서는 시의이며 신라에서는 시박사이다. 시의와 시박사 모두 ‘侍’라는 명칭으로 왕의 측근이 대리로 참석했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시기적으로 시의였던 모치는 고구려의 보장왕 즉 연개소문의 주치의였고, 질병 치료 이상의 정치적인 역할이 많았던 듯싶다.

백제에 관한 기록은 상대적으로 많다. 의약 관련 정부 조직으로는 약부가 있었고, 관직 명으로는 醫博士, 採藥師, 呪噤師 등이 있었다. 약부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백제의 공식 관직 중의 하나이며 지금의 보건복지가족부에 해당한다. 나머지에 대해서는 모두 <일본서기>의 기록에 근거한 것인데, 그것은 백제가 일본과의 관계가 친밀했고 그에 관한 기록이 그대로 <일본서기>에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553년 6월에 일본이 백제에서 온 醫博士, 易博士, 曆博士 등이 임무기간이 다했으므로 교대해 줄 것과 약재 등을 보내줄 것을 요청하였고 554년 2월에 醫博士인 奈卒 玉有隆陀와 採藥師인 施德 潘量豐, 高德 丁有陀 등이 약재를 가지고 일본에 도착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나솔은 6품이며 시덕이 8품 관직이기 때문에 채약사는 의박사의 지휘를 받아 약재를 공급하는 직책이 아니었을까 추정한다.

한편 주금사라는 직책이 등장하는데 주금사는 말 그대로 주술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의료행위를 사람들이다. ‘醫’라는 고대어가 ‘毉’였던 것처럼, 이 당시의 치료의 개념에는 반드시 약재를 사용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부분 주술적인 치료법도 당연하게, 경우에 따라서는 상위 치료법으로 여겨지던 시대였다. 나중에 주금사는 의사를 보조하는 직급 정도로 지위가 낮아지지만, 그 명칭은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까지 중국에서는 명대까지 존속하게 된다.

차웅석/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의사학교실 교수

091028-기고-삼국시대-의박사-채약사-차웅석.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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