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제품화보다 급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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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제품화보다 급한 일
  • 승인 2003.04.11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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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보건복지부장관이 청와대에 보고한 한의학 육성정책 내용을 보면 한의계에 가장 필요한 정책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물론 보고내용 중에는 한의계가 요구하는 사항이 거의 모두 포함돼 있어 이론의 여지가 없는 듯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냥 간과할 수 없는 대목도 있는 듯하다.

가령 한의학을 ‘한국의학’으로 육성하기 위해 한의학육성법을 제정한다거나 국립의료원 한방진료부를 국립한방병원으로 승격시킨다거나 국립 한의대 설치가 필요하다는 등의 내용은 한의계의 숙원사업 중에서도 핵심적인 과제라 할 수 있다. 이런 과제를 정부가 추진하겠다고 판단하고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 자체는 대단히 의미심장한 일로서 한의계가 환영하지 않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러나 한의계의 남모를 고민의 하나는 앞서 지적한 것 말고도 많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학문적 체계의 정립 문제다.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의 조화, 중의학과 한의학의 공통성과 차별성의 확보, 한의학과 대체의학의 경계를 구분짓는 일 등을 둘러싸고 한의계는 근세 1세기를 논쟁해왔다.

1세기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닌데도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정체성의 혼란이니 한의학의 왜곡이니 하는 문제가 시정되지 않는 가운데 한의학 교재는 일정한 방향을 갖지 못했으며, 한의학 연구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적었다.

이런 혼란은 방대한 한의학체계를 집중적으로 고민하고 다루는 정선된 집단이 없었기 때문에 기대한 만큼의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대통령 보고에서도 이 문제를 염두에 둔 듯 ‘연구개발 지원 및 인프라가 취약하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러나 이 보고는 언급된 의료기기, 천연물 신약, 기능성 화장품, 난치성질환 치료술의 집중 육성 건의가 뒤따라 연구개발의 의도가 상품화에 있음을 직감케 했다.

이런 추정이 맞다면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상품화도 좋고 한국의학의 육성도 좋지만 시작과 끝을 모르고 그저 돈이 되므로 한다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한의학을 상품화하는 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기초학의 발전이다. 정통 한의학의 이론체계를 오늘날 제대로 정립하지 못해서 혼란이 초래되고 있는데 또다시 결과만을 염두에 두고 지원한다면 근시안적이라는 지적을 면할 수 없다. 사립재단에 의해 설립된 한의대는 투자가 여의치 못해 교육과 연구에 비상이 걸려 있다는 점을 충분히 헤아려 국립 한의대 설립을 추진함과 동시에 연구방법론의 정립, 그리고 인력의 양성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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