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 History(8) | 고려시대의 다방(茶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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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History(8) | 고려시대의 다방(茶房)
  • 승인 2010.01.08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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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웅석

차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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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둘러싼 정치적 음모는 끊이지 않았다. 다방에서는 추억 이상의 엄청난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른다.

‘다방(茶房)’이라는 현대식 찻집의 유래는 우리의 경우 구 한말 고종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그러나 다방이라는 명칭의 유래는 그보다 훨씬 더 오래됐다. 고려시대에는 궁중의 차를 끓이고 왕실의 약을 달이는 곳을 다방이라고 불렀다. 이 다방이라는 중앙 정부의 직제는 중국과 한국에서 한동안만 등장하다가, 조선시대에 가면서 ‘약방(藥房)’으로 이름이 바뀐다. 중국에서는 이미 원나라부터 공공장소에서 차를 마시며 환담하는 장소로써 다방이라는 명칭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현대식 다방이 나오기 전까지는 그 명칭을 찾아볼 수가 없다.

고려시대의 다방은 설치 년도가 정확히 알려진 바 없지만 고려 문종(재위 1046~1083년) 때에는 이미 설치되어 있었다. 다방이라는 직제는 당시 송대의 都茶房의 직제를 받아들인 것이다. 고려시대의 다방에서는 왕실에서 쓰는 차와 어약을 조제하는 것 외에도 외국 사신들의 접대 향연도 주관하였다(손홍렬, 조선중세의 의료제도 연구, 수서원, 1988).

고려시대 다방에 관한 기록으로는 1226년 간행된 고려의서 <신집어의촬요방(新集御醫撮要方)>이 있다. 이 책은 이미 망실되어 없어지고 일부 내용만 <향약집성방>에 실려있는데, <동국이상국집>으로 잘 알려진 고려시대의 문인 이규보(1168~1241)가 이 책의 서문을 달아놓은 것이 남아있다. “……우리나라의 다방에서 모아 놓은 약방문이 한 부 있었는데… 거의 유실될 지경에 이르자 추밀원의 대신 최종준이 이를 안타깝게 여겨 이를 보완하여……”라고 되어있는데, 다방에서는 약을 단순히 조제하여 진상하는 것 뿐 아니라 왕을 치료하는 처방 등 치료기술을 보전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왕이 사용하는 차와 약을 조제하는 곳에 출입하는 관리들이나 의료인들이 왕의 신임을 받는 측근들로 이루어진 곳이라는 점은 조선시대 내의원의 최고 책임자인 도제조, 제조를 거친 인물들의 성향으로 볼 때도 분명하다. 모든 권력의 정점이 왕 한 사람이던 고대사회에서 왕을 둘러싼 정치적 음모는 끊이지 않았으며 현재 기록된 것만으로도 영화화되기도 한다. 그래서 왕의 건강 여부와, 왕에게 들이는 약의 종류는 최고급 기밀이었다. 비록 고려시대에는 다방에서, 조선시대에서는 약방에서 약을 조제하고 들이는 직접적인 일을 했어도, 그것을 관장하는 부서가 고려시대의 추밀원, 조선시대의 승정원 등 당대 일급 보좌기관이던 것도 그 때문이다.

최근에 회자되고 있는 왕의 독살설처럼, 고려시대에 독살이 이루어졌다면, 그것은 아마 다방에서 시작됐을 것이고, 병을 핑계로 하는 어떤 정치적인 술책이 있었다면 그것 역시 다방에서 모의되지 않았을까. 추억을 떠올리는 다방, 고려시대의 다방에서는 추억 이상의 엄청난 일이 벌어졌을 지도 모른다.

차웅석/ 경희대 한의과대학 의사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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