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 History(12) | 향약의학 언제 시작되었나?
상태바
Story & History(12) | 향약의학 언제 시작되었나?
  • 승인 2010.04.08 09: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연석

강연석

contributor@http://


필자는 역사적 시기에 따라 우리 나라 땅에서 자생하거나 재배가능한 약재를 ‘향약’, 이러한 향약을 위주로 처방을 구성하여 치료하는 의학을 ‘향약의학’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향약의학 뿐 아니라 우리나라 의학서적 중 현재 남아있는 최초의 저술은 향약구급방이며, 13세기 초의 것으로 추정된다. 그 이후 1399년 제생원에서 간행한 향약제생집성방 30권 중 3권이, 1433년 집현전에서 간행한 향약집성방 85권이 남아 있다. 향약집성방은 조선의서들의 전통에 따라 인용근거를 처방마다 남겨 두었다. 그 안에 향약고방, 삼화자향약방, 향약간이방, 향약혜민경험방 등의 향약의서들이 인용되어 고려 말, 조선 초 향약의학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이외에 고려의서인 비예백요방, 어의촬요방, 제중입효방 등도 인용되어 있는데, 다른 향약의서들의 내용과 취지에 부합하는 면모를 갖고 있어 향약의서의 범주에 포함된다. 최근 비예백요방을 복원하는 연구에 학계에서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신영일 교수는 현재 남아있는 향약구급방의 70% 정도가 비예백요방을 기준으로 만들었다고 하였으며, 안상우 박사는 송나라 의서로 알려졌던 비예백요방이 고려의서였다고 보고하였기 때문이다. 비예백요방이 복원된다면 향약구급방보다 앞선 시기의 고려의학의 모습을 더욱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향약의학은 고려시대부터 시작되었던 것일까?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향약의학은 우리 나라 약재를 써서, 우리 나라 사람의 질병을 치료한 향토의학(鄕土醫學)이다. 문명을 일으켜 문화생활을 영위한 모든 민족이 나름의 향토의학을 갖고 있다. 조금 더 나아가면 각 지역에는 지역의 체질적 특이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살아 왔고, 기후와 음식 및 생활습관에 따라 독특한 질병을 갖고 있으며, 지역마다 다른 약재가 생산되기 때문에 서로 다른 의료기술이 발전할 수 밖에 없다. 향약(鄕藥)의 ‘향(鄕)’의 의미에 지역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것을 보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사료에는 고조선과 삼국시대의 의료 기술과 관련된 기록들이 많이 남아 있으므로 향약의학은 우리나라의 역사와 함께 시작한 것으로 생각한다.

다만 향약이라는 명칭은 당나라로 대표되는 중국의 약재가 수입되기 시작한 이후 이름지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향약(鄕藥)은 당약(唐藥)이라는 것과 대비되는 이름이다. 비슷한 용례로 향악(鄕樂)과 당악(唐樂), 그리고 신라향가(新羅鄕歌)라는 것이 있다. 모두 향약과 마찬가지로 고려시대에 사용된 명칭들이다.

한의사에 대한 명칭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서양의학이 들어오기 전까지 의원(醫員)이라고 하면 모두 한의사를 지칭하였는데, 서양의학이 들어오자 한의사(韓醫師)와 양의사(洋醫師)를 구분할 필요가 생기게 되었다. 수 백년이 흐른 뒤 남아있는 기록만 중시하는 역사학자들이라면 한의학(韓醫學)과 한의사(韓醫師)는 1980년대 이후에 생겨났다고 주장할 것이다. 몇몇 자주적인 학자들은 한의사(韓醫師)가 50년대부터 기록에 보이는 한의사(漢醫師)와 같은 것이므로 무려 30년이나 일찍 시작했다고 주장할 것이고, 어떤 학자들은 1910년대 의생(醫生)과 비슷한 교육을 받았으니 20세기 초에 시작했다고 주장하기도 할 것이다.

강연석/ 원광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