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 History(14) | 식민주의 역사관과 향약의학의 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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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History(14) | 식민주의 역사관과 향약의학의 왜곡
  • 승인 2010.04.19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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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석

강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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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에 ‘조선 의학은 중국 의학의 아류일 뿐이다’ 등 그릇된 전제를 바탕으로 의학사가 서술되면서 향약의학은 크게 왜곡되었다.

16세기에는 15세기처럼 향약만을 강조하지는 않았다. 허준은 우리나라 의학이 면면이 이어져왔다고 하면서, 단방(單方)과 향약을 중요시하였다. 향약집성방처럼 향약만 사용하는 극단적인 의학체계는 아니었지만, 향약의학의 장점을 그대로 수용하였다.

17세기 향약의학은 청과의 갈등 시기에 새롭게 주목받았다. 청나라의 세력이 커지면서 요동을 경유하는 육상과 해상 교통로 모두가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명과 청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펼치던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이 된 인조(仁祖)는 반청 외교노선을 걷게 되었다. 인조11년(1633)에 이미 100여 년 동안 잘 사용하지 않던 향약집성방을 다시 간행했다는 것은 그만큼 절박함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동의보감 이후 17~19세기 향약의학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하였다. 조선 초에 완성된 향약 수급체계에 따라 다양한 구급방(救急方), 단방(單方), 차(茶) 처방 등으로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김종오의 연구에 의하면 왕실에서도 차와 같은 형태의 단방 처방을 많이 사용했다고 한다. 쉽게 구하여 약의 기운이 충실한 약을 쓰고, 한두 가지 약재를 사용해야 더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향약의학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시기의 여러 의서는 모두 향약의 활용을 중요하게 여겼다. 특히 제중신편과 방약합편의 약성가(藥性歌)에서는 동의보감 탕액편의 전통을 따라 향재(鄕材)와 당재(唐材)를 구분하고 있다.

20세기 향약의학은 일제의 등장으로 민족의 아픔을 함께 나누었다. 우수한 향약들은 일제의 수탈 대상이 되었다. 태평양전쟁이 벌어져서 물자를 총동원할 때에는 약재의 수급을 통제하기 위해 배급하는 일까지도 있었다. 1942년 행림서원에서 최남선의 서문을 달고 향약집성방이 다시 발행된 것은 그만한 사회의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제시대에는 근대화된 한국의학사가 기술되면서 향약의학은 한국 고유의 의학이라며 지나친 관심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조선 의학은 중국 의학의 아류일 뿐이다’, ‘조선 의학은 스스로의 동기(動機)에 의해 발전하지 않았다’, ‘조선 의학은 단절(斷絶)된 역사를 갖고 있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의학사가 서술되면서 향약의학은 크게 왜곡되었다.

첫 번째는 향약의학의 시기(時機) 문제이다. 우리 민족의 역사를 축소시키기 위해 도입된 실증주의 역사관은 사료가 남아있는 경우에만 역사 기술의 대상으로 포함시켰다. 때문에 우리 역사의 시작과 함께 개발되어 사용된 향약의학을 부정하고, 향약구급방이 간행된 시점인 13세기 중엽에야 비로소 향약의학이 시작되었다고 기술하였다.

두 번째는 향약의학의 동기(動機) 문제이다. 우리 의학 스스로의 발전 가능성을 애초에 배제하였기 때문에 스스로의 필요성에 의해 향약을 개발한 것이 아니라 중국 의학을 수입하는 과정 속에서 값 비싼 중국 약재를 대체하기 위해 개발하였다고 기술하였다. 때문에 세종 때 향약집성방이 간행되면서 ‘약재의 독립’을 이루었다는 어처구니 없는 기술을 하고 있다.

세 번째는 향약의학의 연속(連續)과 단절(斷絶)의 문제이다. 13세기에 시작되어 15세기에 절정을 이룬 향약의학은 16세기 이후 쇠퇴하였다고 기술하였다. 오로지 향약만으로 처방을 구성하였던 ‘향약○○방’과 같은 이름을 달고 있는 의서가 더 이상 출판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향약과 함께 당약도 활용한 것이지 향약을 포기하여 쇠퇴한 것은 아니었다. 조선 후기까지 향약의학은 구급방, 단방, 차 처방 등의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해 나갔다.

강연석/ 원광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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