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 History(15) | 조선조 개국과 유의(儒醫) 정도전
상태바
Story & History(15) | 조선조 개국과 유의(儒醫) 정도전
  • 승인 2010.05.05 10: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차웅석

차웅석

contributor@http://


“삼봉을 통해 조선조 의학이 국가적 틀 속에서 제세안민을 구현하기 시작했다”

향약(鄕藥)이라는 트렌드가 한국의학을 지배하고 있을 무렵, 성리학이라는 신학문이 서서히 한국에 소개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고려 왕조를 부정하는 새 질서를 구상하는 세력들에 의해 성리학적 세계관은 보다 급진적인 형태로 한국사회에 사회체제 이념으로 자리 잡는다. 이렇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늘어나는 것은 유의들이다.

유학자가 의학을 겸하는 현상은 비단 개인의 취향에 국한되지 않는다. 소위 신(新) 유학자들이라고 규정되는 이들에게 있어서 의학은 의료인들에게 전적으로 맡겨야 할 대상이 아니라 건강한 사회와 가정을 이루기 위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교양의 하나로서 여겨지게 되기 때문이다.

유의는 넓은 의미에서는 학식 있는 의학자들을 포괄하는 개념이지만, 정확하게는 송대 이후 성리학적 소양을 갖춘 학자들 중에서 의학에 종사하거나 혹은 의학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층이 두터워지면서 새롭게 규정된 개념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뿌리가 유학자라는 것에 상당한 자부심이 있고, 기존의 방식 -방술사 혹은 도사들에 의해 시행되는, 신비함을 가장한 이해하기 어려웠던 모호한 형태의 의료행위-과는 분명히 구별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의학계에 새로 등장한 계층이다.

이들은 의학을 합리적으로 재해석하기 시작하였고, 글로 정연하게 표현하였으며, 기록을 통해 공유하고 논쟁하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송금원대 동아시아 의학의 질적인 변화는 바로 이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조선조에 <의방유취> <동의보감> 등을 거치면서 한국 한의학의 정체성이 확고해진 것도 바로 조선조의 유의들에 기인한다.

여말선초에 성리학이 점점 한국사회에 이식되기 시작하면서, 우리에게 알려진 가장 대표적인 유의로는 정도전을 꼽을 수 있다. 그는 대표적인 조선의 개국공신이면서 유학자이다. 정치가로서 고려와 조선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은 물론이고, 유학자로서 조선 건국의 사상적 기초를 닦은 인물이다. <조선경국전> <경제문감> <심기리편> <불씨잡변> 등의 저술은 그가 단순한 정치꾼이 아니었음을 보여주고도 남는다.

그러나 그는 불행히 제1차 왕자의 난 때 태종 이방원의 반대 편에 서면서 비극적으로 인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정도전에 대해서는 조선의 건국과 관련된 정치행보만으로도 그려지는 내용이 많기 때문에 의학자로서 업적은 거의 알려지지 않지만, 한국의학사에는 그를 1389년 <진맥도결>을 저술하여 후대 조선조 맥학 연구의 중요한 기초를 이루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불행히도 이 책은 전해지지 않고, 이숭인의 <맥진도지>에 여러 학자의 맥법을 그림과 노래글의 형식을 빌어 간략히 설명한 것이라고만 전하고 있다.

1389년은 고려 말 정도전이 추밀원 부사로 재직할 당시이며 우왕의 아들 창왕을 폐위시키고 이성계의 허수아비 정부인 공양왕 정권이 들어서는 해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이성계를 도와 누구보다도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그가 어느 겨를이 있어서 맥학에 관한 저술을 별도로 했는지는 알기는 어렵다. 다만 정도전이라는 그 인물을 통해서, 조선조 우리나라의 의학이 단순한 민간요법 차원을 넘어서 제세안민의 국가적인 틀 속에서 본격적으로 구현되기 시작하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차웅석/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