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 이후 한국만 의료봉사 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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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이후 한국만 의료봉사 파견”
  • 승인 2010.05.28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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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동훈

설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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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MSTA 7박8일 키르기즈스탄 의료봉사기
“혁명 이후 한국만 의료봉사 파견”
현지 언론 대서특필… 과도정부 수반 등 찬사 보내

KOMSTA 7박8일 키르기즈스탄 의료봉사기 

한방인술로 보듬은 내란의 상처= 4월6일 옛날 소련 지역이던 중앙아시아의 작은 나라 키르기즈스탄에서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2005년 ‘튤립혁명’으로 집권한 쿠르만베크 바기예프 대통령의 개혁 실패와 아들 막심을 비롯한 친인척들의 부정부패가 시민들로 하여금 정권에 등을 돌리게 한 계기가 됐다.

지방인 탈라스 주에서 시작된 반정부 시위는 전국을 휩쓸고 마침내 운명의 4월10일 반정부 시위대가 수도 비쉬켁 중심부 정부 청사 앞에서 대통령의 하야 요구와 함께 청사 내 진입을 시도하려는 순간 유혈사태가 시작됐다. 진압 경찰의 발포와 함께 수많은 사람이 거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는가 하면 총상을 입은 환자들이 실려간 병원의 병실에까지 청사 내에 은폐하고 있던 저격수들의 총격이 이어졌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이날 유혈사태의 희생자는 사망 80여명, 부상 1,000명 정도에 이른다. 하지만 현지 사람들 사이에서는 사망자만 1,000명을 넘는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유혈사태 여진에 봉사자들 얼굴엔 긴장감이 역력했지만 내란의 상처에 시달리는 이들을 보듬고 오리라는 다짐 역시 강렬했다”


유혈사태 20일만에 현지로 출발= 키르기즈스탄의 유혈사태가 벌어진 지 20여일이 지난 4월29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크기가 다른 19개의 박스 사이로 12명의 건장한 사내가 모여들었다. 이병직 단장과 이원욱 원장(경옥당한의원) 등 대한한방해외의료봉사단(KOMSTA)의 97차 키르기즈스탄 의료봉사팀과 이번 의료봉사를 현지에서 도와줄 렘시티코리아 직원들이다.

유혈사태가 발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출국하는 만큼 저마다 얼굴엔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하지만 모두들 마음 속에는 내란의 상처에 시달리는 이들을 보듬고 오리라는 다짐 또한 각인돼 있었다.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숙달된 동작으로 진료용품을 화물로 부치는데 시작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엑스레이 보안검사에서 침이 문제가 된 것이다. 보안검사실을 여러 번 들락거리며 해결하고 나니 이번엔 화물 중량이 크게 초과돼 오버차지 발생이란다. 관광이 아닌 의료봉사를 가는 것이라며 선처를 부탁해 비용을 깎았는데도 결국 65만원이라는 거금을 오버 차지로 지불했다. 살림살이가 빠듯한 NGO 단체의 총무 입장에서는 속 쓰린 일이지만 어쩔 수가 없는 일.

매번 의료봉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화물의 중량 초과와 현지에서의 약재 통관은 항상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는 걸림돌이다. 오죽하면 경험이 많은 단원들 입에서 “오버 차지와 약재 통관 문제로 시달리지만 않으면 의료봉사 참가하겠다”는 소리가 나올까….

공항 환대에 긴장감 눈녹듯 사라져= 우여곡절 끝에 의료봉사단 일행은 오후 5시30분 카자흐스탄 알마티로 향하는 아스타나 항공 KC910편에 몸을 실었다. 비쉬켁으로 가는 직항로가 없어 7시간 정도 날아가 알마티 공항에 내려 4시간을 기다리다 다시 비쉬켁으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타야만 한다.

알마티를 거쳐 비쉬켁 나마스 국제공항에 도착한 것은 현지 시각으로 새벽 2시40분경(시차가 한국보다 3시간 늦으니 한국은 새벽 5시40분). 졸린 눈을 비비며 비행기 트랩에서 내리는데 우리 일행 앞에 KOMSTA라고 쓴 피켓을 든 사람과 승합차 한 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입국 수속을 밟아야 하는 일반 승객들과 달리 우리 봉사단 일행은 그 차로 공항 귀빈실로 이동, 현지 관계자들의 환대 속에 차를 마시며 휴식을 취했고 그 사이 현지 관계자들은 분주히 움직이며 우리의 입국 비자수속과 약재 통관을 대행해주었다.

“행방불명된 가족의 사진을 들고 행인들에게 혹시 본 적 없느냐고 묻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선 서명 모금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정부 청사 담장에 걸린 시위 사망자 및 실종자 사진과 이들을 추모하는 비쉬켁 시민들.
그동안 십 수차례 의료봉사를 다녀봤지만 사실 이번 같은 환대는 드문 경우다. 한국대사관 직원이 협조공문을 들고 나와도 약재 통관에서 문제가 되는 경우가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이 같은 환대는 의료봉사를 현지에서 준비한 렘시티 직원들의 사전 노력과 시민혁명 이후 최초로 입국하는 한국 의료봉사팀에 대한 키르기즈스탄 정부의 고마움의 표시라는 설명을 듣고 힘든 여정이지만 오기를 잘했다는 뿌듯함을 느꼈다.

공항을 빠져나와 숙소인 파르코 호텔로 이동하면서 바라본 비쉬켁의 밤거리는 유혈사태를 겪은 곳 답지 않게 평온해 보였다. 밤공기는 신선했고 하늘엔 알퐁스 도데의 <별>을 떠올리게 하듯 무수히 많은 별이 쏟아질듯 반짝이고 있었다. 적어도 그 순간에는 진료현장에서 한바탕 전쟁을 치를 것이라고는 일행 중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저 평온하고 아름다운 비쉬켁의 밤이다.

거리, 살아남은 자의 슬픔만 남아= 대게의 의료봉사는 도착 첫날 휴식 후 다음 날부터 시작하는 것이 관례이지만 이번에는 환자가 폭주하는 현지 사정상 도착한 날 오후부터 시작을 했다. 단원들 모두 장시간의 비행과 겨우 서너 시간 남짓 눈을 붙인 탓에 몸이 지칠 대로 지쳤지만 이미 수차례의 경험을 쌓은 베테랑들답게 한치의 빈틈도 없이 진료준비는 진행이 됐다.

진료장소는 정부 청사 부근 베이쉬 국립병원과 메트로소바 거리에 위치한 렘시티 본사 건물. 국립병원에서는 혁명과정에서 부상을 입은 환자들, 렘시티 건물에서는 고려인과 현지인들이 진료대상이다. 또한 이병직 단장은 국립 제1, 2, 3, 5병원을 왕진하면서 총상 입은 환자들을 치료하기로 했다(많은 사람이 총상 환자에게 한방진료가 도움이 되느냐고 의구심을 갖지만 총상으로 인한 마비증상 환자의 침구치료나 총상 부위에 재생고 등의 한방 외용연고를 도포하면 상처를 치료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것이 진료현장에서 분명하게 확인됐다).

“밤거리는 유혈사태를 잊은 듯 평온하고 밤공기도 신선하고 세상사와 무관하게 하늘엔 무수히 많은 왕별이 쏟아질듯 반짝였다”


국립병원 진료팀을 먼저 내려주기 위해 정부 청사 부근을 지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본 듯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시위 과정에서 사망한 희생자의 영정사진이 정부 청사 담장 곳곳에 걸려 있는가 하면 시위대가 사망한 자리에는 표식과 함께 꽃다발이 놓여있다. 또한 희생자를 추모하는 인파로 가득한 도로 한쪽에서는 아직 시신을 찾지 못한 가족들이 행방불명된 가족의 사진을 들고 행인들에게 혹시 본 적이 있느냐고 묻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몽골의 게르와 비슷한 유르뜨에서 확성기로 서명을 독려하며 모금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이미 30년 전 5.18 민주화운동을 겪은 우리로서는 그런 모습을 보며 숙연하지 않을 수 없다.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고 남은 가족들의 안녕을 마음속으로 기원하며 무거운 발걸음을 진료장소로 옮겼다.

헌신적 봉사에 환자들 장사진 이뤄= 진료장소에 도착하니 전쟁터가 따로 없다. 발 디딜 틈조차 없이 대기실을 가득 채우고도 부족해 인도에까지 길게 늘어선 환자의 행렬과 곳곳에서 새치기를 하며 언성을 높이고 싸우는 사람들의 모습에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병원과 의사는 있으나 약품 부족으로 시위대 부상자들조차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이 나라의 현실이고 보면 한국의 의사들이 의료봉사를 왔다는 소식에 환자들이 몰리는 것은 당연하다. 뙤약볕 아래 진료순서를 기다리던 고려인 최율라(76세)씨는 “예전에도 병원에 약이 부족해 치료가 힘들었지만 혁명 이후 부상자들이 몰리면서 지금은 상황이 더욱 좋지 않은 것 같다”며 “한국에서 의사 선생들이 찾아와 진료해 주니 너무 고맙고 자신의 뿌리가 한국인이라는 게 너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총상 환자를 제외한 일반 환자들의 경우 고혈압과 신장질환, 당뇨병, 비만, 안과질환이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했다. 이는 석회수를 식수로 음용하고 유난히 달고 짠 음식을 즐겨 먹는 이 나라 사람들의 식습관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영유아 환자 중에 정신지체아들이 유난히 많았는데 이는 임산부의 음주와 흡연이 필요 이상으로 관대한 이 나라의 문화적 특성 때문인 것으로 추측됐다.

4월30일부터 5월4일까지 5일간 진료팀은 5명의 소규모 진료인원으로 국립병원과 렘시티 건물, 한국어교육원 등 진료장소를 수시로 이동하며 그야말로 매일 밀려드는 환자들을 치료하며 전쟁을 치뤘다. 입에 맞지 않는 달고 짠 음식, 아침에 양말을 빨아 숙소에 널어두고 오후에 들어오면 과자처럼 바삭하게 말라져 있을 정도로 건조한 날씨 등 악조건 속에서도 3천여명에 이르는 키르키즈스탄의 환자와 고려인, 현지 교민들에게 인술을 베풀었다. 가난과 질병, 그리고 내란으로 인한 상처를 조금이라도 보듬어 주고 싶은 간절한 소망을 담아….

“국립병원에 한방진료실을 설치하고 국제 협력 의사를 파견하기 위한 사업이 진행 중인 만큼 의료봉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같은 의료봉사단의 헌신적인 진료는 현지 언론에 대서특필된 것은 물론 키르기즈스탄 정부 관계자들에게도 찬사를 받았다. 과도정부 임시 수반이던 로자 아툰바예바는 물론 차기 정부의 대통령 선출이 유력한 테케바예프조차 “이번 혁명 이후 미국과 러시아, EU 등 많은 국가에서 경제적인 원조를 해주었다. 하지만 의료진을 파견해 진료를 해준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그래서 한국과 의료봉사단원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그야말로 우리 의료봉사단의 헌신적인 진료가 국적과 인종을 초월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상처를 보듬어준 셈이다.

잠시의 휴식조차 사치스럽게 느껴졌던 피곤하고 험난한 7박8일의 의료봉사 일정은 어느덧 막을 내렸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남루한 옷차림으로 아픈 몸을 이끌고 진료장소 곳곳을 찾아오던, 그러나 밝고 맑은 키르기즈스탄 사람들의 눈망울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오른다.

이번 97차 의료봉사는 끝났지만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이다. 키르기즈스탄 국립병원에 한방진료실을 설치하고 국제 협력 의사를 파견하기 위한 사업을 준비 중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계획이 차질 없이 진행되어 그들이 한방 인술의 혜택을 다시금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시민혁명의 과정에서 사망한 희생자의 명복을 빌고 그 가족들과 부상자, 나아가 키르기즈스탄 국민의 가슴 아픈 상처가 하루 빨리 치유되기를 소망하며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진료현장에서 헌신적인 진료를 시행한 봉사단원 모두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설동훈/ KOMSTA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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