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 우리과학] 자격루와 옥편(자동 물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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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 우리과학] 자격루와 옥편(자동 물시계)
  • 승인 2003.04.21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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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돼도 비가와도 시간은 흐른다.

정교한 제어공학기술로 만든 자동 물시계.

날씨가 흐리고 비가 오거나 밤이 되면 쓸데없는 물건이 되는 해시계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나온 것이 물시계이다. 간단히 말해 물시계는 떨어지는 물방울 양의 규칙성을 이용해서 시간을 측정한 것이다.

지금은 '시계'가 너무나 익숙하고 흔한 물건이 되었지만, 지금으로부터 6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고도 자동으로 작동하는 시계의 제작은 획기적인 것이었다.

보통 물시계에서 시간측정은 일정한 물의 양을 재는 것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세종시대 과학자 장영실이 발명한 '자격루'는 물의 양을 신호로 시침을 건드려 떨어뜨린 쇠구슬 하나가 수많은 기계장치를 거쳐 북을 치고 징을 치게 만든 정교한 제어공학기술이 결합돼 있다. 1434년 7월 1일부터 사용된 표준시간은 바로 이 자격루에 맞추어 운용되었다.

자격루는 수압을 조절하면서 물을 보내는 4개의 '파수호(播水壺)'와 물을 받아 시간을 측정하는 2개의 '수수호(受水壺)', 2개의 살대, 동력전달장치와 시보장치로 구성돼 있다.

물을 흘려 보내는 파수호가 네 개인 것은 최상의 수위 제어를 통하여 일정한 유량이 흘러내리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 중 제일 위의 큰 물통은 물을 저장, 공급하는 대파수호이며, 그 다음의 물통은 대파수호의 매우 큰 수위 변화를 미소 변화로 완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의 평수호에서 만류 방식으로 수위를 일정하게 유지하여 계량호인 수수호로 일정 유량을 흘려보낸다. 평수호에서 넘친 물은 제4의 만수호에 유입된다.

평수호로부터 일정 유량의 물을 하루 종일 받아들이는 동안 수수호 안에서는 부표가 떠오르며, 부표 위에 꽂힌 살대(孚箭)가 수수호 위로 올라오면서 잣대 면에 새겨진 눈금이 지침을 통과하며 시간을 읽게 한다.

한편 계량호인 수수호가 두 개인 것은 매일 번갈아 가며 시간을 재기 위함이다. 하루가 지나는 동안 수수호 하나에 물이 가득 차면 물이 흐르는 통로를 옆의 수수호로 옮겨 시간을 재고, 가득찬 물은 사이펀(渴烏-목마른 까마귀)으로 뽑아내어 다음 날을 대비하는 식으로 운용되었다.

사이펀은 위치에너지에 의한 압력차를 이용해 물을 높은 곳으로 올렸다가 다시 빼낼 수 있는 장치이다. 자격루의 실린더처럼 깊고 무거운 용기에서 용기를 기울이지 않고 물을 밖으로 빼내는데 사이펀은 제격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수압을 맞춰도 물이 쌓이는 양을 일정하게 맞추기가 어려워 오래 쓰면 조금씩 차이가 난다. 이러한 작을 오차를 극복하기 위해 별의 운행을 측정해서 물시계의 틀린 시간을 보정해 주기도 했다.

그럼 이제 자격루의 시보신호 발생 원리에 대해 알아보자. <그림 1>에서 보듯이 수수호 위에 높이 세운 사각나무기둥(方木) 속에는 구슬이 칸칸이 놓여 있다.

물이 차고 잣대가 떠오르면서 방목 속 아래 칸에 놓은 쇠구슬부터 차례로 떨어뜨리는데, 방목 좌측에서는 하루에 12개가 내려와 매 時를 알리는 작동신호를 하고, 우측에서는 하룻밤 동안에 쇠구슬 25개가 떨어져 5更과 5點을 알리는 신호가 되었다.

계절에 따라 밤 시간의 시작과 끝이 바뀌므로 更點을 알릴 쇠구슬이 놓이는 구리판은 잣대와 더불어 일정기간마다 교체되는데, 동지에서 하지까지 11개를 사용하였으니 대략 보름에 한번씩 교체한 셈이다.

時機는 하루를 12등분(조선시대에는 하루가 12시간이므로 1시간은 오늘날의 2시간에 해당한다)한 매 時 초에 이르면, 상층의 司時神으로 하여금 한번씩 종을 울리게 한 후, 곧바로 아래층의 남쪽 창에는 새로운 시간대를 상징하는 12지신상을 등장시켰다. 이러한 장치는 청각과 시각을 동시에 만족시킨 셈이다.<그림2 참조>

그리고 타종기구는 구슬이 낙하하는 원통→원통 아래에 가로놓여서 구슬로부터 충격력을 전달받는 숟가락기구→숟가락기구의 젖힘에 의해 위로 급격히 올라가는 막대→막대의 끝에 연결되어 사시신의 팔을 때려 종을 치는 링크→타종 막대를 둘러싼 지지용 원통→숟가락기구를 젖힌 후 구슬이 굴러 내려가는 원통의 순서로 배치된다.

更點機는 밤 시간을 알리는 장치이다. 일몰 이후 2.5각(36분)이 지날 때까지를 昏이라 한다. 昏이 지나면 初更 初點이 되어 밤 시각의 시보가 시작된다.

이와 함께 일출 이전의 2.5각을 曉라 하고, 曉의 시작이 곧 밤 시각의 시보가 끝이 나는 오경 오점이다. 更點機는 밤 시간을 25등분하여 매 更에는 북을, 매 點에는 징을 울려 알렸다.

그러나 현재 덕수궁에 보존·전시돼 있는 물시계(1만원권 지폐의 도안)는 숙종대에 복제된 것으로, 물을 공급하던 항아리 3개와 물의 양을 측정한 실린더형 물통 2개만 남아 있을 뿐이다.

자격루에서 자동으로 시간을 알려주던 정교한 기계장치는 완전히 유실되었다. 지금 남아 있는 유물만을 놓고 '물시계'나 '자격루'라고 하면 그 기본원리가 이해가 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편, 자격루가 순전히 자동물시계로서 천문과 무관한데 반해, 그 보다 4년 뒤인 1438년에 장영실이 왕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만든 옥루는 자동물시계인 자격루에다 천상을 표시하도록 장치를 더 정교하게 만든 궁정물시계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예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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