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 우리과학] 천상열차분야지도(최초 석각천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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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 우리과학] 천상열차분야지도(최초 석각천문도)
  • 승인 2003.04.21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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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은 민족 정체성 찾을 수 있는 열쇠
고구려 천문역학 세계 최고수준, 일본도 모방

어느 민족이든 별에 얽힌 신화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리의 민족문화 속에는 '칠성줄을 타고 태어난다' '돌아갈 때는 칠성판을 타고 간다'는 등의 '북두칠성'과 관련된 민간신앙(칠성신앙)과 언어 의식 등이 많이 전해져 온다.

이처럼 하늘에 빛나는 무수한 별들은 아름다운 세계에 대한 꿈을 일깨워주는 동시에 천상과 지상을 이어주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석각 천문도로 알려진 고구려의 '천상열차분야지도'에는 282개의 별자리와 1,463개의 별들이 들어있다. 직경 76.5㎝, 73.5㎝의 동심원 안에 적도 황도 은하와 별들을 그렸으며, 적위 50도 부근까지의 별을 작은 원에 표시해 놓았다. 또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가로지른 구름 형태의 그림은 은하수를 나타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고구려의 천문역학은 당시 수리천문학에서 세계 최고수준에 도달해 있었던 중국에 못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고구려 고분(무용총·각저총)의 별자리 그림과 석각본으로 남은 천상열차분야지도가 그 사실을 확인해 주고 있다.

고구려 고분 천장에 그려진 별자리는 주요 별자리 위치를 정확하게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별 모양도 육안으로 보았을 때의 반짝이는 5각형이 아니라 천체 망원경으로 관찰한 듯한 둥근 모양이다.

현대 천문자료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별의 위치가 정교하다고 하니 고구려인들의 천문학이 상당한 수준에 달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는 같은 석각 천문도인 중국 蘇州의 순우천문도(1241년)보다 600년 이상 앞선 것이며, 서양 천문학사를 기준으로 보면 1,000년 이상 앞선 우수한 유물이다.

이 때의 천상열차분야지도는 단순히 하늘의 별자리를 옮겨 그린 것만이 아니라 춘분점과 추분점의 위치, 28수의 기준별 좌표 등 천문 정보도 자세히 담고 있다. 적도에 대한 황도의 경사가 24도인 사실과 달이 궤도를 도는 원리를 설명하고 계절의 변화도 기록했다. 특히 종이에 그리지 않고 돌에 새겨 탁본을 뜨게 만든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천문도를 이용케 하려는 지혜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천문도는 예로부터 사람들은 별들에 인간세상의 흥망성쇠를 주관하는 하늘의 뜻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제왕의 권위를 상징하기도 했다.

조선 태조는 자신이 하늘이 세운 나라의 임금임을 국내외에 과시하기 위해 1395년(태조 4년)에 天象列次分野之圖刻石(국보 제228호)을 만들었다.

덕수궁 석조전 내 궁중유물전시관에 있는 이 천문도는 가로 122㎝ 세로 221㎝의 검은 대리석 앞뒤에 각각 290座 1,467개의 별들을 새겨놓은 것으로, 현재 중국 수저우(蘇州)에 보존돼 있는 南宋의 '蘇州天文圖(1241년)' 각석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석각 천문도이다.

태조는 대동강에 수장된 것으로 전해지던 고구려의 석각천문도의 탁본을 우연히 입수한 뒤, 권근을 비롯해 유방택 권중화 등 11명의 학자들에게 탁본을 토대로 새로운 천문도를 만들라는 명을 내렸다.

당시 천문관측기관이었던 서운관의 학자들은 700년이라는 시차에서 생길 수 있는 오차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이 천문도를 기준 삼아 별을 새로 관측했다. 그 결과 고구려나 중국 것보다 정확성에서 진일보한 천문도가 탄생했다.

하늘의 모양을 일정한 순서와 분야에 따라 차례로 늘어놓은 그림이란 뜻을 가진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우리나라 천문도만의 독특한 양식을 의미한다. 천상을 커다란 원으로 표현해 이를 12개 구역(列次)으로 나누고, 구역마다 그에 대응하는 지상의 12개 지역(分野) 명칭을 기록한 데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

그 특징은 별의 밝기를 별의 크기로 표시했다는 점이다. 밝은 별은 크게, 희미한 별은 작게 그렸다. 중국 천문도에서 볼 수 없는 별자리를 새로 추가한 점도 독자적인 시도로 평가된다. 2,900여 한자의 글자체도 매우 정교해 예술적 측면에서도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76㎝나 되는 원의 중심에는 북극성이 있고, 바깥쪽에 작은 원이 있으며 큰 원과 작은 원 사이에는 적도와 황도(태양의 궤도)가 그려져 있다. 원 둘레에는 옛사람들이 하늘을 나누는 기본 틀로 설정했던 28개의 별자리가 그려져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천문도에 북반구에서 눈으로 관찰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별자리가 새겨져 있다는 사실이다. 천문도 위쪽에는 해와 달, 그리고 24절기의 별자리들에 대한 기록이 들어있다.

하지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심하게 훼손된 각석은 숙종때 또 다른 대리석에 복각돼 관상감(서운관의 후신)에 보관됐다. 이렇게 만들어진 천문도는 서울 홍릉의 세종대왕기념관에 보관돼 있는 또 다른 천상열차분야지도다. 내용은 같지만 태조 때 것이 제목을 아래쪽에, 숙종 때 것이 제목을 위쪽에 새긴 점이 다르다.

영조때는 관상감 내에 흠경각을 지어 두 각석을 함께 보관했다. 그러나 조선왕조가 몰락하고 일제식민통치가 시작되자 아무도 각석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 1960년대에 이르러 각석이 발견된 곳은 흠경각이 아니라 창경궁의 명정전 추녀 밑이었다. 평범한 돌덩어리가 돼버린 각석은 풀밭에 내팽개쳐진 채 사람들의 발길에 이리저리 차이고 있었다.

한편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일본에도 전해져 일본 천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일본 나라현 아스카의 기토라 고분에서 확인된 천문도가 고구려시대 평양 하늘을 담은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일본 도카이대학과 NHK방송이 이 천문도를 컴퓨터로 처리해 분석한 결과, 별자리의 관측 위치가 평양주변인 북위 38∼39도이고 관측연도는 기원전 3세기∼기원후 3세기로 나타났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고구려인들의 해박한 천문지식과 '천상열차분야지도'와 같은 빛나는 천문학의 전통이 있지만, 서양의 관측기술이 들어오면서 우리만의 별 이야기가 거의 사라져가고 있다.

이예정 기자

다행히 최근 들어 '우리 고유의 별 이름 되찾기 운동'이 펼쳐지면서 내행성으로 하루에 두번 떠오르는 별인 금성은 해질 때는 '개밥바라기'로, 새벽에는 '샛별'로 불리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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