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 우리과학] 만파식적(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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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 우리과학] 만파식적(피리)
  • 승인 2003.04.21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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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향공학·심리학적 가치 돋보이는 위대한 유산
'대나무'와 '갈청'이 합성해 만들어낸 신비로운 소리

만파식적, '오만가지 파도를 잠잠하게 만드는 피리'란 뜻이다. '오만가지 파도'에는 바닷물결은 물론, 전쟁·질병·기근·폭우 등 인간의 모든 근심사가 함축되어 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만파식적 설화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신문왕(682)시절, 동해에 작은 산이 떠서 감은사를 향해 왔다 갔다 한다는 보고를 받은 왕이 점을 치게 되는데, 그 점괘가 부왕인 문무왕과 김유신 장군의 영혼이 나라의 영원한 평화를 위해 보물을 내어 주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에 신문왕은 친히 바다에 나가, 사람을 보내 더 가까운 곳에서 살피게 하였다. 신하가 보고하기를 "거북머리를 닮은 산 위에 대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낮에는 둘이 되고 밤에는 하나로 합쳐진다"는 것이다.

이에 왕은 감은사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이튿날 정오가 되어 왕이 행차를 하려고 하는 순간 대나무가 하나로 합쳐지며 천지가 진동하고 비바람이 일어났다. 그런 날씨가 이레나 계속되었다. 이윽고 바람이 자고 물결이 평온해져 왕이 배를 타고 그 작은 산에 들어가자 어디선가 홀연히 용이 나타나 검은 옥대를 왕에게 바쳤다. 바다의 용이 된 문무왕과 천신이 된 김유신 장군이 왕에게 내리는 큰 보물이라는 것이었다.

이에 왕이 대나무가 갈라지고 합해지는 연유를 물으니 용은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대나무도 합쳐졌을 때 소리가 나는 법, 이것은 왕이 소리의 이치로써 천하를 다스리게 될 좋은 징조"라고 답했다.

왕이 용에게 후사하고 대나무를 베어와 피리를 만들어 불었더니 적병이 물러가고 질병이 낫고, 가물 때는 비가 오고 비가 올 땐 개고, 바람이 가라앉고 물결은 평온해졌다.

이것이 바로 통일신라 국보인 만파식적의 유래담이다.

만파식적 설화에 대해서는 역사학적·정치학적·국문학적·불교설화적·음악학적 접근 등 다양한 형태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데, 경희대 전자공학과 진용옥교수의 음향공학적 관점에서의 연구결과도 꽤 흥미롭다.

대체로 소리와 관련된 정보통신적 요소는 음향 음파 음성과 소음 진동 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러한 음성정보들은 인간이 가지게 되는 정보총량의 15%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시각정보가 차지하는 80%(나머지 5%는 감각정보이다)에 비해 양적으로는 못 미치지만 그 효능 면에서는 훨씬 뛰어나다. 그러므로 음성이나 음향정보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즉 신비로운 음향효과는 왕권의 권위나 종교적 위력을 과시하는 수단이 돼 왔다.

만파식적의 정보통신적 가치도 그 소리가 가지는 의미일 것이다. 피리란 소리가 나는 물건인즉 이를 분다는 것은 소리와 관련된 정보통신적 의미를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진 교수는 통일신라의 만파식적도 국가통치와 국난극복의지를 한데 모으기 위해서 심혈을 기울여 제작했던 중요한 정보통신매체였음에 틀림없다고 주장한다. 특히 하늘의 사자인 용으로부터 받았다는 사실은 그 권위를 상징하는 것이며, 한국인의 천부사상을 설화적으로 적절히 표현한 경우라 할 수 있을 것이라 한다.

삼국유사에는 만파식적의 음향심리학적 효과에 대해서 비를 내리게 하거나 멈추게 하며, 적군을 물러나게 하고 바람을 멎게 하며 물결을 가라앉힌다고 기록되어 있다. 어찌 보면 지나치게 설화적인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가질 수 있지만, 그 효능을 추론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만약 외적의 침입이 있을 때에 우리만이 아는 선율로 피리를 분다면, 적군에게는 심리적 두려움을 주고 아군에게는 전략적 위치로 이동할 것을 알리는 메시지가 담겨져 있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음향심리학적 접근이다. 실제 6·25당시 중공군의 피리와 꽹과리 소리에 아군과 유엔군이 전의를 상실하고 후퇴한 경험에서 우리는 소리의 심리적 위력을 경험한 바 있다.

왜구의 침탈이 빈번했을 당시 만파식적의 독특한 음향이 들려왔다고 가정했을 때 그 소리는 그들에게는 전혀 경험해보지 않은 음향이었을 것이고, 따라서 이를 들은 침입자들의 심리적 갈등이 어떠했을까? 아마도 스스로 물러나거나 사기가 크게 저하되어 전의를 상실했을 것이다. 신라사람들은 이를 두고 만파식적 때문이라고 확신하게 되었을 것이며, 이러한 사실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거의 신앙적 차원으로까지 승화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만파식적의 구조는 어떠했을까? 아쉽게도 그 원형이 보존돼 있지 않아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신라 때 만들었던 만파식적의 원형은 사라졌다해도 현존하는 죽관악기, 그 중에서도 '대금'이었을 가능성이 높게 제기되고 있다. 왜냐하면 대금의 음향학적 구조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독특하기 때문이다.

대금에는 '갈청'이라는 독특한 떨림판을 중간에 부착시키고 있는데, 대금 소리를 더욱 신비하고도 생명력 있는 소리로 만들어 내는 구실을 한다.

'갈청(또는 '청'이라고도 함)' 이라 함은 갈대 속에 붙어있는 얇은 막을 뽑아내어 이것을 대금의 吹口(김을 불어 넣는 곳)와 指孔(손가락을 막고 뗌으로써 음정을 조절) 사이에 있는 淸孔에다 붙여, 소리를 더욱 맑고 청아하게 하는 떨림판 역할을 하는 것을 말한다.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은 두 가지(대나무와 갈청)의 상이한 재료들에 의해서 합성되어야만 제소리를 낼 수 있다는 공학적인 설명일 수 있다는 것이다.

갈청은 우리나라의 악기에서만 목격되는 독특한 위치를 고수하고 있으며 그 음향이 아직은 건재하고 있다. 갈청은 기류에 의해 목청이 떨리는 것과 같이 대금의 소리에 미묘한 변화를 주고 있다.

진용옥 교수가 실제 대금의 음역을 분석해 본 결과, 갈청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파형은 2배나 차이가 났다. 갈청이 없을 때는 제1도미넌트 주파수가 493헤르쯔에 생기지만, 갈청이 있을 때는 이것의 2배수 진동인 986헤르쯔 부분으로 올라가며, 그 진폭도 2배 가량 높아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변조효과'인데, 더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청아한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예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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