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 우리과학]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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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 우리과학]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
  • 승인 2003.04.21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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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레종 소리의 비밀은 '맥놀이 현상'
은은한 '여음' 위해 의도적으로 비대칭구조 설정

높이 3.33m, 입지름 2.27m, 두께 2.4m, 무게 18.9t으로 에밀레종은 절에서 쓰이는 범종이다. 에밀레종의 미적인 면이나, 종교적인 의미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접근이 있어왔지만, 신종이 가지고 있는 과학적 기술의 측면인 맥놀이 현상, 음관, 명동의 기능은 최근에야 밝혀지기 시작했다.

에밀레종은 신라시대인 771년 성덕대왕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34년간 주조한 것으로, 오므라진 종 입구와 두툼한 종벽 때문에 종을 치면 공기가 밖으로 새나가지 않고, 안에서 휘돌며 소리의 여운이 오래가는 게 특징이다. 이 종은 애끓는 소리가 끊어질 듯 이어지면서 3초 간격으로 되풀이되는 '맥놀이 현상'으로도 유명하다.

종의 소리는 종 몸체에 외부타격으로 만들어진 진동이 주변공기를 진동시키고, 이 진동이 귀의 고막을 진동시켜 뇌에서 감지되는 것이다. 종을 치면 종 몸체는 지름방향, 원주방향, 길이방향으로 3가지 진동을 하는데, 이 중에서 가장 큰 진동은 지름방향에서 만들어진다.

타종 후 종소리는 대체로 3구간으로 나뉘어 진다. 제1구간음은 타종직후 1초 이내에 소멸되는 소리로 타격순간의 음을 말한다. 여기에는 종 전체에서 발생하는 각종의 진동수 성분이 섞여 있다. 제2구간음은 타격 후 10초 이전까지 계속되는 고음 성분으로, 먼 곳에서 종소리가 들리는 것은 이 구간음 때문이다. 제3구간음은 타격 후 1분 이상 계속되면서 점차 감쇄되는 소리로 여운이라고 한다. 이 여음이 은은한 울림(맥놀이)으로 뚜렷하고 긴 것일수록 좋은 소리로 친다.

타종 직후에는 많은 부분진동음이 발생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은 감소하고 기본진동과 울림만이 남게 돼 종의 고유소리를 나타낸다.

신종의 소리 또한 기본 진동음이 오래도록 계속되는 은은한 여음이 생명인데, 신라인들은 이 소리를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첨단음향학적인 설계를 신종에 적용했다.

신종은 '맥놀이 현상'으로 대표되는 독특한 소리를 지니고 있다. 진동수가 다른 두 파동이 진행하면서 합쳐진 파동의 세기는 반복적으로 커졌다 작아졌다하는 변화가 생긴다.

신종의 맥놀이는 신라인들의 정교한 음향기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신라인들은 은은한 여음을 만들기 위해 고도의 계산을 통해 맥놀이를 일으키도록 종을 설계했던 것이다.

맥놀이는 종의 형태나 재료가 미묘한 비대칭을 이루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신라인들은 맥놀이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 종을 균일하지 않게 제작한 셈이다. 종 내부를 보면 부분적으로 매끄럽지 않은 철덩어리가 덧대어진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종의 비대칭성을 만들기 위해 신라인들이 일부러 설계한 것이다.

에밀레종 상부에 만들어진 36개의 연꽃모양 돌기와 그동안 에밀레종 주조시 결함으로 지적됐던 내면 상부에 덧붙인 커다란 사발모양 돌기(덤쇠)도 맥놀이현상을 내기 위해 일부러 종을 비대칭형으로 만든 것이란 게 그 근거이다.

지금까지 이 철덩어리들은 신라인들의 주물제작기술이 뒤떨어져서 생긴 것으로 치부됐으나 이것이 정교한 설계의 산물임이 1300년 후에 밝혀진 것이다.

이와 함께 에밀레종의 맥놀이 주기가 거의 3초 정도로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숭실대 배명진 교수는 "에밀레종을 11분의 1로 축소한 모형종(높이 32cm, 직경 20cm)으로 실험한 결과, 맥놀이 현상은 1500년경 갈릴레이가 발견한 '진자의 등시성'과 1842년 밝혀진 '도플러효과'에서 이 현상의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진자의 등시성 현상'이란 실에 매달린 추가 한 번 왕복하는데 걸리는 주기는 추의 무게나 움직이는 진폭에 관계없이 그 길이에만 관계하는 것으로 흔히 시계추가 이 원리를 이용한다. 또 '도플러효과'란 불자동차처럼 소리를 내는 물체가 듣는 이에게 가까워질수록 서서히 크게 들리다가 지나치면 소리가 급격히 작아지는 현상이다.

또한 신종에는 중국이나 일본의 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음관'이라는 독특한 장치가 있다. 음관은 종의 윗 부분에 파이프와 같은 관을 설치한 것인데, 이 또한 신종의 소리를 보호하고 유지하는 첨단장치다.

신종의 음관 지름은 종 안쪽 입구가 82mm, 바깥쪽 출구가148mm인 일종의 나팔형 구조로 돼 있다. KAIST 김양한 교수에 따르면, 이러한 음관의 모양은 파이프처럼 단면적이 일정한 관에 비해 종을 칠 때 내부에서 형성되는 음향파워를 효율적으로 밖으로 내보낼 수 있는 구조라고 한다.

이 음관은 신종의 기본적인 저주파 맥놀이는 유지하여 주고, 고주파에 위치한 고차적 맥놀이 현상은 빨리 감쇠시키는 일종의 완충작용을 해준다. 그로 인해 쓸데없는 잡소리를 줄이고 에밀레종의 아름다운 소리를 내게 하는 것이다.

이밖에도 한국 종에는 모두 종 아래에 구덩이를 파고 종을 설치했는데, 이를 '명동'이라 하며, 이 또한 좋은 소리를 만들기 위한 첨단과학의 산물이다.

명동은 먼저 종소리와 명동이 공명을 일으켜 긴 종소리, 즉 여음을 낼 수 있게 해준다. 여기서의 공명이란 밀폐된 공간에서 소리가 여러번 되돌림이 일어난다면 서로 맞지 않는 성분들은 충돌해서 사라지게 되고, 위상이 맞는 한가지 성분만 보강하면서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울리는 작용을 하게 된다.

첨단 장비도 없이 사람의 귀에만 의지해서 이러한 첨단의 신종을 만들어 낸 우리민족의 과학정신의 뿌리를 오늘날의 우리는 잊고 살아왔다. 에밀레종의 비밀이 밝혀진 것을 계기로 우리 문화유산 속에 깃든 조상들의 과학정신이 더 많이 발굴돼야 할 것이다.

이예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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