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 우리과학]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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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 우리과학] 동인
  • 승인 2003.04.21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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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궁중의 의녀나 침구전문의들이 학습용 또는 시험용으로 사용하던 '銅人'은 한의사학적으로나 과학적으로 깊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지면에 正人形, 伏人形으로 흑선이나 彩色으로 그린 경혈도만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을 뿐 인체 실물과 같이 동으로 주조하여 신체 각 부분에 경혈을 나타내고 각 경혈의 명칭을 음기한 인체 모형상은 덕수궁 궁중유물전시관에 있는 동인 외에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 동인은 그 명칭이 '鍼金銅像'이며, 그동안 창덕궁 비원 인정전 차행각에서 보존되어 오다가 1992년 12월 23일부터 덕수궁에서 공개 전시되고 있다.

송대 王惟一의 '銅人穴鍼灸圖經'을 기본으로 하여 조선 세종 15년(1433년) 이후인 15세기경에 한국인에 의해 한국인의 체형에 맞게 동으로 주조된 독창적인 작품이다.

그 제작 동기는 궁중 내의원에서 침구의나 의녀에게 침구학습을 시키기 위한 학습용과 또한 전문 침구의의 자격을 심사할 때 시험용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생김새는 높이 86cm, 머리둘레 37.8cm, 어깨 폭 22.5cm, 팔 길이 40cm, 무게 18.5Kg의 남자상이다.

그리고 '鍼金銅像'의 사지는 몸체 중에서 어깨부위와 분리될 수 있게 하였고, 하지와 머리부위도 분리되는데 머리부위는 전후로 분리할 수 있게 제작되어있다.

또한 몸 표면 전신에 흐르는 경혈을 음각하는 방법으로 전·후면과 사지, 머리부위 등에 새겨 넣었다. 이 파여진 홈 사이에는 각 혈 자리의 명칭을 음각하고 胸腹腔에는 贓器를 두고 가운데는 비워 놓았으며, 정수리 부위에는 직경 1cm의 穿孔과 그 양측에는 4mm의 보조구멍을 뚫어 놓았다.

정수리 부위의 천공은 물을 부을 때 사용하는 구멍으로, 밀납을 100℃로 끓여 동인을 그 속에 담가 혈 자리 구멍이 막히도록 동인의 동체를 塗蠟하여 동인체표의 경혈점을 알아 볼 수 없게 한 다음, 정수리의 구멍으로 물이나 수은을 붓고 침구의 자격시험에서 수험자가 침혈에 침을 찌르면 물이나 수은이 나오는 것으로 그 정확도를 판정하였다고 한다.

동인을 통해 우리는 조선시대 의녀제도와 전문침구의제도가 있었음을 알 수 있고,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을 통해 옛 조상들의 과학성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전시된 유물마다 설명된 내용이 있기는 하지만 너무나 일반적이고 형식적으로 기록이 돼 있어서 관람자들로부터 흥미를 끌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이러한 점은 관련 학계가 깊이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반면 '동인'만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중국의 의사학자 士英 교수는 우리나라에 있는 동인을 중국에서 제작해 한국으로 유입된 것이라 주장해 왔다. 그리고 실제 중국 교과서에도 우리나라에 있는 동인이 중국의 것이라 잘못 서술돼 왔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최근 원광대 한의대 정우열교수의 연구결과 잘못된 주장임이 확인되었다.

중국의 동인은 송나라 때 2개를 제작해 명나라 때까지 전해져 오다 소실돼 아직까지도 발견되지 않고 있으며, 현재 중국에는 명대 이후에 제작된 모형품이 전해지고 있다.

士英 교수는 이 2개의 동인이 한국으로 유입돼 그 중 1개는 현재 덕수궁 궁중유물전시관에 보존된 것으로 주장하고, 나머지 1개는 임진왜란 때 일본이 우리나라에서 가져간 것으로 주장했다.

이처럼 "士英 교수가 우리의 동인을 중국의 것이라 주장하는 이유는 崔周若의 저서 '鍼灸臨床實際'에서 "태종 15년 千秋使(세자의 생일 축하사절) 윤오진이 명나라 사신으로 갔다 오는 길에 가져왔다"는 명래설을 근거로 하고 있지만, 태종실록에 실제 기록된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부윤 오진이 2폭의 동인도를 가져왔다"고 기록돼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여기서 '동인도'를 '동인'으로 잘못 해석한 것에서 빚어진 결과로, 士英 교수도 이 부분에 대해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우리나라의 동인은 이와 같이 특별히 문헌적인 고찰을 하지 않더라도 중국 일본 등지에 각각 현존하고 있는 동인의 형상과 많이 다른 것을 발견할 수 있다.(사진 참조)

관련 학계인 한의학계가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은 사이 우리의 동인이 중국의 것으로 잘못 인식될 뻔했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한독약품이 세운 한독의약박물관에 한의학관련 유물들이 전시돼 있을 뿐 한의계 자체적으로 유물들을 전시하고 홍보하는 박물관은 하나도 없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관련학회는 물론 한의계 전체적인 관심과 각성이 요구되고 있다.

이예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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