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일이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고 추정되지만 가장 큰 원인은 객관적 근거의 부족에 있는 듯이 보인다. ‘양방이 치료하지 못하는 등 속수무책인데 한방이라도 대책을 내놔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은 한의계의 생각일지언정 하나의 정책이나 公器인 언론에서 적극 수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객관적 현실과 예민한 문제를 대하는 한의계의 태도 사이에는 상당한 괴리가 있음을 드러낸 사건으로 향후 한의계가 일하는 방식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교훈을 던져주었다.
우선 사스대책위원회는 인적구성에서부터 대표성을 가지지 못했다. 개개인이 사스치료에 관심과 일가견을 가지는 인사들이란 점을 부인할 수 없지만 학문을 대표하는 사람들인지 여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또한 자료의 출처도 5개 단체일뿐 아니라 자료구성의 과정은 간담회 수준에서 이루어짐으로써 공신력을 갖기가 어려워 보였다. 그런 결과 제시된 처방이 뚜렷한 근거를 갖기보다 문헌적, 경험적 근거만으로 모호하게 구성돼 객관성과 신뢰성을 중시하는 언론당국을 설득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최소한 해당처방에 대해 동물실험이라도 거친 뒤 자료를 공개했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이 전혀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면 한번쯤 고려해봄직도 했다는 것이다. 동물실험에 조예가 있는 관계자들은 그것이 그리 시간이 걸리는 일도 아니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그 정도 실험을 못할 일도 없어 보인다.
조직 구성과 발표에 이르기까지의 과정도 서둘렀다는 인상을 준다. 문헌적 검토와 임상적 치료근거를 확립한 이후 책임있는 학회가 나서 조직을 구성하고 처방을 제시하는 원론적인 순서와는 거리가 먼 느낌을 준다. 이 과정에서 행정적 지원에 머물러야 할 한의협이 너무 앞서나가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든다.
언젠가는 한의학도 국가 방역체계에 포함돼야 한다는 여망을 확인한 것은 하나의 성과라 할 수 있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객관적 의료현실도 고려해야 한다는 교훈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아울러 한의학계의 현실이 개원가의 임상현실과는 다소 차이가 있더라도 학술적인 문제는 학계를 앞세우는 관행을 정립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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