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위키칼럼 & 메타블로그 - 돌팔이 사태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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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위키칼럼 & 메타블로그 - 돌팔이 사태에 대한 단상
  • 승인 2012.05.31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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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운

정창운

lunarmix@naver.com


사기란 99%의 진실에 1%의 거짓을 섞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에 창궐하고 있는 돌팔이들은 이 ‘사기’라는 용어에 100% 적합한 행각들을 벌이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번에 ‘핵약’이라는 이름으로 의료사기를 벌인 경우에도 99%의 진실에 1%의 거짓을 섞는 짓을 했다.  

사실은 중의대를 나오고 중의사면허(제한)를 받았다는 것. 그리고 그가 빌린 사무실은 실제 한·양방 통합진료를 하는 병원이라는 점. 거짓은 그가 내세우는 치험례, 약물 등이며, 그는 그 병원의 정식 의사가 아니라 단지 사무실만을 빌렸다는 것, 그리고 중국국가의료전서와 같은 존재하지 않는 자료를 내세운 것 등이다.

사실과 거짓을 섞고 버무려 자신이 암의 명의인 양 내세운 것이다. 그렇다고 광고에서처럼 감마나이프와 같은 시술을 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그가 세 들어 살던 병원의 정상적인 진료였지, 그가 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가 내세운 치료제라는 것은 소금과 납덩어리였다.

유명병원, 국가의 권위, 치험례 등은 충분히 날조될 수 있으며, 핵약사건도 이미 수많은 사기극의 새로운 재현일 뿐이다.
일본의사들은 왜 기침에 맥문동탕을 쓸까? 무작위 대조시험을 통해 통계적으로 기침증상을 경감시키는, 의미 있는 효과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미국의사들은 왜 두경부암 환자들에게 침 시술을 할까? 무작위 대조시험을 통해 통계적으로 침 시술이 환자의 구강건조증상을 경감시켰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몇몇 처방이 실제 종양을 퇴축시키는 효과와 함께 환자의 여명을 연장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무작위 대조시험을 통하여 입증하기도 하였고, 이것은 실제 한방암치료라 할만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항암제로서 예상할 수 있을법한 치료효과를 나타내는 것이지 암 완치, 기적의 신약, 99% 치료율 이런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주장을 내세우면 사기꾼일 가능성이 99%라는 것을 말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먼저 고려해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합리적 사고방식이 한의과대학에서 충분히 체득이 될 수 있는지는 조금 의문스럽다. 고서의 “쫛쫛에는 쫛쫛을 쓴다”라는 문장에는 현대의료에 필요한 필수적인 지식들이 결핍되어 있다. 최근에 불거진 한의계의 부끄러운 사태들 이면에는 이러한 문제점들이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일이다.

물론 과거의 경험에 완전히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치험례에서 본받을 것들도 있고,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것들도 있다. 난치질환이나 특이한 케이스의 경우 과거사례를 참고할 필요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선에서 멈춰야 한다. 고전을 숭상하고 그것만이 진리요 하고 내세우는 순간 돌팔이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어혈, 기체, 기울, 수체와 같은 한의학적인 용어들도 나름의 임상표현과 범주로 그 진단적·치료적인 가치야 있지만 그것이 정말 해부병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으며, 그에 대한 검사가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그 검사의 특이도와 민감도는 어떠한지와 같이 진료에 필수적인 근거에 대한 입증이 부족한 상황이다. 여기에 확인되지 않았거나, 어떤 방식으로도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한 방식의 검사법을 들고 와서 “이것이 쫛쫛이다”하고 자랑스레 내세우는 것에 문제가 없다고 할 한의사는 없을 것이다.

한의대생도 한때는 일반인이었다. 일반인은 한의학에 대한 개념이 없다. 동네 돌팔이가 한방을 내세운 시술을 하나 한의사가 하나 똑같거나, 오히려 그런 재야의 고수(?)들이 더욱 대단하다고 생각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오직 한의사만이 한의학이 무엇인지 규정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한의사가 정의하는 한의학이 무엇인지 사회에서는 알지 못한다. 그러니 여기저기에서 문제가 생긴다. 이런 상황이 되고는 외부환경을 탓하기에 앞서 한의사 스스로 나서서 한의학이 무엇이고, 어떤 것이 한의학인지 국민을 납득시켜야만 한다.

돌팔이문제, 한의학폄훼문제 등 한의사가 처해있는 어려움 중 한 원인은 내가 한의학을 아니 다른이들도 한의학이 뭔지 알 것이라 착각하며 여태껏 한의학에 대해 알리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 오해만 바로 잡아도 한의학에 대한 인식을 크게 개선시킬 수 있을 것이다. 모르면 알게 하라.

대개의 의료사기행각을 가만히 살펴보면 한방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의학이라는 학문이 아니라 의학적 의미를 잃어버린 정체불명의 용어 ‘한방’을 아직도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한의학과 한의사에 대한 이미지는 이런 사기행각이 벌어질 때마다 추락하고 있다.

하지만 왜 이런 의료사기꾼들이 ‘한방’의 탈을 쓰고 있는지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옆에서 지켜보던 동기들이 어느 날 갑자기 극적인 사태에 끌려들어간 것에는, 한의사 사회와 교육에도 분명한 책임이 있을 것이다.

사후약방문이라지만, 돌팔이를 추종하는 한의사를 면허 박탈시켰다는 것을 공표하거나, 특정 시술이나 검사법 등은 근거 없는 진료행위이므로 그런 시술을 하는 한의사의 진료를 받지 말 것을 전국 한의원에 게시하도록 하는 것이 피해자의 생산을 막는 방법 중의 한 가지가 될 수 있다. 치과의사협회의 물방울 레이저와 덤핑치과에 대한 대처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전문가의 영역은 전문가 스스로가 만들어 내는 것이다.

정창운 / 생각의 무덤

근거중심의 한방진료확립에 관심이 많은 초보 한의사 (http://blog.naver.com/lunarmix)

이 지면은 온라인상에서 한의학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한의학 위키’와의 제휴로 만들어집니다. 더 많은 한의학 칼럼들이 www.kmwiki.net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의학 위키 필진으로 생각이 젊은 한의사, 한의대생 블로거들의 많은 참여를 기다립니다. 참여를 원하시면 임정태 씨 메일(julcho@naver.com)로 보내주세요.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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