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경 시평] 현대사회에서 한의약의 소통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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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 시평] 현대사회에서 한의약의 소통 언어
  • 승인 2015.01.29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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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

김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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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김 윤 경
원광대 한약학과 교수, 한의사
최근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이슈로 보건의료계가 뜨겁다.

지난해 12월 28일 국무조정실은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 차관이 참여하는 규제 기요틴 민·관합동 회의를 개최하여 보건·의료계 규제개혁 방안 중 하나로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 허용 및 보험적용 확대’를 논의하였다. 이에 담당부서인 보건복지부는 전문가단체 의견 수렴을 거쳐 올 상반기에 한의사가 사용할 수 있는 의료기기 범위를 확정할 방침이라고 한다.

지난 2011년 그동안 법률적으로 한의약의 과학화ㆍ객관화ㆍ정보화ㆍ산업화ㆍ세계화 등의 한의약 발전에 한의사들의 발목을 잡아왔던 한의약육성법에서의 한의약 정의가 ‘우리의 선조들로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한의학을 기초로 한 한방의료행위와 이를 기초로 하여 과학적으로 응용·개발한 한방의료행위 및 한약사(韓藥事)를 말한다’고 개정공포되었다.

이후 2013년 복지부는 자동적으로 수치화하는 혈액검사기기는 한의사가 사용해도 된다고 유권해석을 내린 바 있다. 또한 2013년 12월 26일에는 헌법재판소가 판결을 통해 안압측정기, 청력검사기 등을 언급하며 의료법의 목적에 비추어 보건위생상 위해의 우려 없이 진단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사용권한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며 ‘의료인인 한의사가 기본적인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만장일치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지금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은 이런 분위기 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이며 국민의 88.2%가 찬성하고 있다.

한의사들은 현대사회와 소통하기 위하여 의료기기가 절실히 필요하다.
한의사들은 동의보감 한의학을 하는 조선시대의 의사가 아니라 현대사회에 살면서 현대한의학을 하는 현대한의사이다.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국민들에게는 한의약의 치료효과를 수치화하여 보여줄 수 있는 길이며 의사들과도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얻는 길이다. 한의학의 언어도 현대사회에서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표현되어야 한다.

1915년 전선의생회(지금의 한의사협회) 회장을 역임한 한의사인 지석영 선생이 종두법을 배우고 받아들인 것처럼, 우리나라에 초음파 기기가 들어와 보급될 무렵 한의사인 송한덕 선생이 초음파를 연구하고 ‘초음파 진단의 이해’라는 책을 쓰기도 했으며, 적외선 체열 진단기의 경우에도 한의사들이 우리 몸의 한열을 판단하는 지표를 얻기 위해 사용하는 등, 한의사와 의료기기의 거리가 절대 멀지 않았으며 서로 상충되는 것도 아니다.

의사들이 한의학을 모르고 한의사들이 말하는 정신기혈, 한열허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소통을 하고 협진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같은 환자의 몸을 본다면 각종 의료기기 검사수치로 소통할 수 있지 않을까? 한의학이 의료기기를 사용하면 한의학 이론의 허무맹랑한 실체가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대신에 반대로 한의학 이론의 과학적 근거가 입증될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腎과 骨의 관련성을 말하는 한의학 이론과 이에 맞춰 한의학적으로 腎을 補하는 약물을 骨을 튼튼하게 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 골밀도 측정기를 사용하여 입증될 수 있다.

한의사들은 의학을 모르기 때문에 골밀도 측정기를 사용할 수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미 腎, 骨, 骨髓 이런 단어들이 한의학 문헌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의학에서는 1628년 윌리엄 하비의 ‘혁명적인’ 혈액순환설 이전 이미 천여년 전의 황제내경에서 “혈액은 혈관 내에서 멈추지 않고 흘러 전신을 순환한다(流行不止, 環周不休)”라고 한 것처럼 기본적인 인체에 대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

대표적인 골밀도 측정기인 DXA의 원리는 방사선이 인체를 투과할 때 투과물질의 방사선 투과율(흡수량)의 차이를 측정함으로써 투과 물질의 밀도를 산출하는 방식을 이용한 것이다. 인체내부를 더 정확히 관찰하기 위해 현대과학을 이용한 관찰도구, 측정도구이다.

의사들은 한의사가 골밀도 측정결과를 보고 “환자분은 腎虛하니 (비싼) 한약을 드셔야 합니다”라고 말할 것을 걱정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이 척추 CT를 보고 의사가 “환자분은 디스크가 튀어나와 있으니 (비싼) 수술을 하셔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돌출된 디스크와 요통의 관계를 의사들이 말하는 것처럼, 한의사들은 한의학적인 腎과 약해진 骨의 관계와 한약의 효과를 말하는 것뿐이며 이를 골밀도 측정을 통해 입증해 보겠다는 것이다. 물론 腎虛는 골밀도만 보고 진단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의사들은 한의학을 너무 모른다. 음양오행이 한의학의 전부가 아니다. 한의학이 유효성이 있으니 지금까지 살아남았고 사용되고 있는 것이고, 현대의 한의사는 현대사회의 요구에 맞춰 그동안 주장해온 한의학이론(예:腎虛)과 현대적질환의 상관성, 안전한 치료와 그 치료효과를 입증하기 위해 의료기기가 필요할 뿐이다.

현대사회에서 더 이상 신허 만을 말하여 현대인들을, 의사들을, 의학에 익숙한 환자들을 이해시킬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 의사들이 그동안 줄기차게 한의학에 요구했던 과학화이며 근거에 입각한 치료이다.

의사들이 간독성으로 죽는다고 하는 한약을 안전하게 사용하기 위해 한약 사용 전후의 간독성 수치를 측정해야 할 필요가 있으며 골절 환자를 염좌로 보고 침치료를 해서 치료시기를 놓치도록 하지 않기 위해서 X-ray가 필요한 것이다.

의사의 입장도 이해할 수는 있다. 현대의학은 태반이 진단이다. 그것도 의료기기를 사용한 진단이다. 같은 의료인으로서 경쟁관계에 있는 한의사들이 의료기기를 사용하게 되었을 때 당장 의사의 진단행위 독점이 흔들릴 것을 염려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사진 한 장으로 바로 진단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보다 의사들이 잘 알 것이다. 또한 국민들은 한의사에게 서양의학적 진단을 기대하지 않으며 확진은 여전히 의사가 내릴 것이다. 한의사들은 국민들의 편의를 위해서, 한의치료에 필요한 만큼, 진단기기가 아니라 측정기기로서 의료기기를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현대 의료기기는 의사의 독점하에 있는 것이 아니다. 같은 의료인인 한의사가 현대 측정기기를 사용했다고 해서 마치 무면허 의료행위를 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 것이 아니라 인체를 관찰하고 치료하는 서로 다른 두 의학이 기본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언어가 생기는 것으로 받아들여 주었으면 좋겠다.

한의약이 현대사회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언어이며 의학과도 소통할 수 있는 언어이다. 이 언어로 의학과 한의학 사이의 교류가 생기게 되면, 의사들이 바라는 것처럼 한의학의 정체성이 드러나 소멸이 더 앞당겨질 수도 있으며 아니라면 오히려 한국 의학의 장점이 돋보여 위상이 더 높아질 것이니, 굳이 반대할 이유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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