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한의학을 빛낸 인물18] 又川 朴寅商(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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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한의학을 빛낸 인물18] 又川 朴寅商(上)
  • 승인 2004.02.20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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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동안 사상체질의학 연구


신문과 방송등 각 언론매체에 용하다는 명의가 난무하는 요즘. 50여년이라는 반세기동안 사상체질의학의 권위자로서 임상과 이론을 연구해 온 又川 朴寅商(81) 선생이지만 그는 병이란 의사나 약의 힘에 의지하기보다는 근본적으로 저항력이 있으면서 자연의 순리에 따르면 오히려 자기명 만큼은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우천은 특히 지난해 대한개원한의사협의회로부터 한의계 원로인 배원식 선생, 태암 김형기 선생 등과 함께 초빙 인정의로 선정되기도 했다.
傘壽를 넘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젊은 한의사들 못지않은 건강을 자랑하며 변함없는 임상활동과 사상체질의학연구에 노력을 쏟고 있는 우천 선생의 인생철학과 치료의학관을 조명한다.

◇ 초빙 인정의로 선정돼

1923년 충북 진천에서 태어난 우천은 조선총독부시절 조선의생제도 1기 출신이었던 부친 밑에서 자랐다. 우천의 부친은 집안에선 엄한 가장이었지만 한의사로서는 난치병에 관한한 명의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어느 날 병원에서도 포기했다며 소음인인 고름증 환자가 부친을 찾아왔다. 이 환자는 약한첩으로 병을 고치게되자 기쁜 마음에 부친의 생일 때까지 찾아와 축하해 주었다고 한다.
또 소양인으로 오랫동안 감기와 고열로 고생하던 60세 환자는 병이 낫게 되자 우천의 부친에게 감사의 뜻으로 붓글씨를 써서 선물하기도 했다.

이렇게 어깨너머로 부친의 난치병환자 치험례들을 여러차례 보고 경험하면서 우천은 “한의학은 정말 버릴 수 없는 학문이구나” 생각했다.
한의사였던 아버지의 권유도 있었지만 어려서부터 보고자란 집안 환경 탓에 우천에게 한의계로의 입문은 그저 자연스러울 일일뿐이었다.

1943년 안성공립노업학교를 졸업한 우천은 본격적으로 부친밑에서 한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의 인생에서 반세기가 넘도록 끊임없이 연구해 오고 있는 사상의학도 부친의 영향으로 공부하게 되었고, 주로 ‘의학입문’ ‘동의보감’을 많이 참조했다고 한다.

1956년 한의사국가시험자격검정시험을 거쳐 같은 해 3월 제6회 한의사국가시험에 합격하면서 우천은 충남 아산군 둔포면 둔포리에서 동일한의원을 개원한다. 이때부터 사상의학에 바탕을 둔 그의 한의계로의 기나긴 여정은 시작된다.

◇ 부친 영향으로 한의계 입문

우천은 주변 사람들의 권유에 못이겨 1972년 경희대 중풍센터 소장을 맡게되면서 사상의학을 강의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7년간 경희대에서 강의를 해오던 우천은 갑작스럽게 집안에 큰일을 맞게 되고, 이 일로 일에 대한 의욕도 잃어 서울에서의 생활을 접고 마음도 다스릴 겸 대전으로 향한다.

그러나 서울에서 사상의학의 대가로 이름을 날리던 우천을 주변 사람들이 가만히 놔둘리 없었다.
결국 상심해 있던 우천은 마음을 추스릴 여유조차 누리지 못하고 대전 한의계 지인들의 끈질긴 요청을 받아들여 10여년간 대전대 한의대에서 ‘사상의학’을 강의하게 되었다.

그는 요즘도 서울 서초동 양재동일한의원에서 임상경력 10년 이상된 개원의들의 요청으로 사상의학 강의를 하는 건재함을 보여주고 있다.

◇ 고희기념 임상발표집 간행

우천은 91년 발행한 東醫四象要訣에서 체질에 따라 음식물도 다르지만 약도 사람들의 체질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어떤 이는 ‘나는 인삼, 녹용을 아무리 먹어도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불평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나는 어떤 약을 먹었는데 힘이 난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즉 나에게 좋으니 반드시 남에게도 좋을 리 없고, 남이 좋다는 것이 내게 좋다고만 할 수 없는 것이 약이고 체질이라는 것이다.

한방에는 예로부터 전승된 古方이나 근세에 발달한 後世方이 있는데, 체질과 증세에 잘 맞춰 쓰면 치료가 잘 되듯이 난치·고질병도 체질을 가려 약을 쓰면 환자의 고생도 덜고 빠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지난 92년에는 그의 둘째 아들 박석준(45·동의과학연구소장) 원장을 비롯한 후학들이 고희기념 임상발표집 간행위원회를 조직, ‘우천 임상경험방’을 헌정했는데 그는 당시 기분이 좋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우천은 근래에 와서 무슨 음식에는 무슨 성분이 많으니 무슨 병에 좋고, 불로장생할 수 있다고 하지만 오히려 해를 보는 사람도 많은데 이는 자기의 체질을 무시하고 먹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 병은 마음에서 오는 것

그는 의학입문을 보면 만가지 병이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라는 문구가 있는데 이는 즉 마음이 고요해지면 만가지 병이 휴식하고, 마음이 어지러워지면 만가지병이 생긴다는 뜻으로 병의 근본은 사람의 마음이 문제라고 했다.

우천은 東武 李濟馬 선생도 “妬賢嫉能은 天下之多病也요 好賢樂善은 天下之大藥也라고 해서 자기 마음 자체가 병이 될 수도 있고 약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면서 마음이 편할 때 비로소 자기 육신의 병도 자연히 낫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그러나 그는 東武 李濟馬 선생이 독창적으로 연구해 주창한 학설이고, 임상면에서도 훌륭한 학문이라고 해서 사상의학으로 모든 병을 고칠 수 있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했다.
시대가 변하면서 사람들의 식생활 습관이나 생활환경도 많이 변했으니 사람들의 체질도 그만큼 다양화됐다는 것이다. <계속>

강은희 기자

□ 약 력
▲1923년 4월 충북 진천 태생
▲경희대 한의대 교수, 경희대한방병원 중풍센터 소장, 청구한의학연구회장, 의철학연구소 초대 소장, 대한사상의학회 부회장, 대전대 한의대 외래교수 역임
▲현 동의과학연구소 고문, 서울 서초동 양재동일한의원 원장

□ 주요저서
▲東醫四象要訣(소나무, 1991)
▲우천 임상경험방(고희기념 임상발표집 간행위원회,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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