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형 시평] 의료일원화 논의의 허구성과 한의학의 존재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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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형 시평] 의료일원화 논의의 허구성과 한의학의 존재가치
  • 승인 2019.06.1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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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형

이태형

mjmedi@mjmedi.com


▶이태형 시평
이 태 형
경희이태형한의원

최혁용 협회장은 그 동안 꾸준하게 ‘중국식 이원적 일원화’를 추진한다고 밝혀왔다. 협회장 선거 당시 배포되었던 그의 공약집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수록되어 있다. “최혁용은 이미 오래전부터 의료일원화에 대한 적극적인 대비를 강조해왔습니다. 흡수통폐합 방식의 의료일원화, 최혁용이 막고 중국 중의사, 미국 정골의사(D.O.)처럼 한의사 중심의 의료일원화를 이끌겠습니다.” 하지만 이 문장을 잘 들여다보면 여러 가지 오류가 발견된다. 가장 먼저 제기할 수 있는 오류는 중국이 과연 일원화되어 있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다음으로는 중국 중의사의 경우와 미국 정골의사의 경우가 비슷한 개념으로 사용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의 말대로 정책이 진행될 경우 “한의사 중심의 의료일원화”가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다음에서 각각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중국의 의료제도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중국은 한국의 경우와 같이 중의와 서의가 독자적으로 존재하기는 하지만 ‘중서의 결합’이라는 정책기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상호 간에 영역을 넘어 진료를 행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서의라고 하더라도 중의를 행할 수 있으며, 중의라고 하더라도 서의를 행할 수 있다. 또한 중의, 서의와 별도로 중서결합의가 존재하여 중의학과 서양의학의 결합진료를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현재 중국에서 중서결합의학 되기 위한 교육과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중의약대학 내에 설치된 ‘중서의결합전공’에 입학하여 졸업한 후 면허시험에 응시하여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중의사 또는 서의사가 기존의 면허 이외에 2~3년의 별도 교육기간 수료 후 면허시험에 응시하여 자격증을 취득하는 경우이다. 2012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의해 간행된 ‘중국의 전통의학-양의학 협진서비스 현황 및 전달체계’라는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중서의결합 교육과정은 “두 가지 기초, 하나의 임상”이라는 개념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한다. 두 가지 기초는 중의학과 서의학의 장점을 상호보완하기 위하여 두 의학체계를 체계적으로 학습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며, 하나의 임상은 두 의학을 임상에서 동시에 적용함으로써 치료 및 예방효과를 극대화해야 함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과연 중국의 의료제도가 과연 ‘일원화’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중의와 서의 간에는 진료에 있어 상호 교류가 권장되고 있지만 “두 가지 기초”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각각의 의학체계는 분명히 독자적으로 존재하고 존중 받고 있다. 때문에 중국의 의료체계는 협회장의 주장처럼 일원화되어 있다고 볼 수 없다.

 

다음으로 미국 정골의사(D.O.)에 대해서도 살펴보도록 하자. 최혁용 협회장은 2019년 이후 그의 의료일원화 정책을 주장함에 있어 중국식 중의학 모델보다는 미국식 정골의학 모델을 내세우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 2019년 1월 11일 싱가포르에서 개최되었던 세계의학교육협회(WFME) 회의에서는 세계의과대학명부에 한의과대학을 등재하는 것이 불가함을 재확인하였다. 이후 이루어진 2019년 1월 18일의 기자간담회에서 최혁용 협회장은 협회에서 추진하는 “의료일원화의 롤 모델이 미국의 D.O. 대학”이라고 말하였으며, 이를 위해 의대의 모든 교육을 한의대에서 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미국의 의사학자 노만 게비츠의 논문에 따르면, 1874년 정골의학을 제창했던 앤드류 스틸은 당시 주류의학이 보였던 한계에 너무 큰 회의감을 느낀 후,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약물 투여 없이 수기요법을 활용하여 환자를 치료하는 방법을 고안하였다고 한다. 이후 정골의학은 나름의 발전을 이루어갔지만, 1910년 미국 전체 의과대학 수준을 평가했던 플렉스너 리포트에 의해 정골의학 대학들 대부분이 수준에 미달하는 것으로 평가된 이후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정골의학 대학들은 대학의 존속을 위하여 커리큘럼을 의대 교육 기준에 맞춰 변경해나갔고, 결국 정골의학대학 교과과정은 미국 의과대학과 거의 흡사한 모습을 갖추게 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지난 2018년 8월, 한의신문에 의해 이루어진 미시건주립대 정골의대 리사 디스테파뇨 학과장과의 인터뷰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그녀는 한국 한의학의 완전한 진료권 획득을 위해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하고 있다. “제한 없이 진료를 하고 싶다면 한의학을 토대로 두고 M.D. 과목을 덧씌우는 것은 옳지 않다. M.D. 과목을 토대로 두고 한의학을 덧씌워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미국의 정골의학 모델은 중국의 중의학 모델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현재 미국의 정골의학은 중국의 중의학과 같은 독자적 학문 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없다. 정골의학대학은 미국 내에서 생존을 위하여 양방의학을 토대로 교과과정을 변경하였으며, 정골의학 내용은 양방의학에 부수적으로 덧붙여지는 형태로 교육되고 있다. 이에 대해 게비츠는 다음과 같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만약 정골의학이 독자적인 의료체계로 남고자 한다면, 교육체계에 있어 정골의학의 의료적 가치를 담아내야 한다”, 또한 “D.O.들은 단순히 M.D.와 동등한 자격이 있음만을 말해서는 안 되며, M.D.와 다른 독자적인 의료적 가치가 있음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또한 그는 논문에서 정골의학대학 학생들은 M.D. 대학 학생들과는 다르게 입학 후 첫 2년간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정골수기요법을 훈련받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개인 진료에 있어 정골의학에 기초한 수기진단이나 수기치료는 대부분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밝혔다. 정골의학이 독자적인 학문 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양방의학에 부수적인 것으로 교육됨에 따라 정골의학의 의료적 가치가 D.O들에 의해서도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리하자면 중의학은 최혁용 협회장의 주장처럼 일원화된 의료체계로 볼 수 없으며, 또한 미국의 정골의학은 중국의 중의학과 같은 유형의 의료체계라고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혁용 협회장이 중국 중의학 모델과 미국 정골의학 모델을 구별 없이 한국에서의 의료일원화 모델로 제시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그의 의료일원화 정책이 한의학의 ‘의학적 존재 방식’에는 큰 고민과 관심 없이 한의학의 ‘제도적 영역 확장’에만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영역 확장’이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경우에는 중국의 중의사나 미국의 정골의사 모두 양방적 술기를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의학의 ‘존재 방식’에 대한 고려 없이 ‘영역 확장’에만 몰두할 경우 한의학의 의료적 가치는 퇴색될 수밖에 없다. 한의학의 ‘존재 방식’에 대한 고찰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음에 대한 지적은 앞선 시평에서 소개했던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조병희 교수의 발표에서도 제기된 바가 있었다. 그는 지난 5월 7일 국회에서 개최된 의료일원화 관련 토론회에서 현재 한의학계에서 일원화 이후 한의학이 어떻게 존재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담론이 부재함을 강하게 지적하였다.

 

한의학 존재 방식에 대한 고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한의사 중심의 의료일원화”라는 표어는 공허해진다. 만약 미국 정골의사들이 선택했던 생존 방식처럼 교육과정을 양방의학의 형태로 모두 바꾸고, 여기에 한의학을 덧붙이는 식으로 교과과정을 변화시킨다면, 이를 “한의사 중심의 의료일원화”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난 6월 3일 경희대 한의대 학생회 주체로 개최된 ‘첩약 보험과 의료일원화에 대한 한의 정책 토론회’에서 최혁용 협회장은 “한의학은 생의학적 지식 체계를 바탕으로 한다”는 장인수 학장협의회 부회장의 발언에 적극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기서 생의학이라고 함은 소위 ‘양방의학’을 말한다. 어떻게 한의학의 학문적 체계가 생의학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 정말 놀라우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한의학의 학문체계가 생의학에 있다고 말하고, 양방의학 교과과정을 토대로 한의학 교육을 부수적으로 덧붙이고자 하는 현 협회장의 정책 방향이 한의사를 과거 일제강점기 당시의 의생과 같은 존재로 격하시키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되기도 하였다.

 

최근 통합의학 개념에 관한 논의를 살펴보면, 협회장의 일원화 정책의 문제점이 잘 드러난다. 의료일원화와 통합의학은 그 개념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 통합의학이라는 용어는 2000년대 이후 기존에 주로 사용되어 온 보완대체의학이라는 용어를 거의 대체하였다. 기존의 보완대체의학 개념에서는 주로 RCT 위주의 연구방법을 토대로 양방의학체계 중심의 근거 축적이 요구되었다고 한다면, 통합의학 개념에서는 보다 다양한 의학의 학문적 체계를 존중하면서 근거를 쌓아가려는 노력이 시도되어 왔다. 이 같은 통합의학의 의의는 무엇보다 환자중심의학을 구현하고자 한다는 데에 있다.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양방의학, 동아시아 의학, 아유로베다 의학 등 다양한 의학 체계의 전문가들이 환자를 중심에 두고 상호 협력을 통해 치료에 임하려는 노력을 시도한다. 수직적인 관계가 아닌, 수평적인 관계에서 각각의 의학 체계가 존중될 때 비로소 상호 인정과 교류를 통한 통합의학이 가능해진다고 본다.

 

우리는 의료일원화 혹은 통합의학 관련 논의를 진행함에 있어 한의학의 ‘제도적 영역 확장’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한의학의 ‘의학적 존재 방식’에 대해서 고민해보아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한의학과 양방의학 간에 존재하는 ‘차이’를 부정적인 시각에서 보아온 경향이 있다. 소위 국제적인 표준에 맞춰야 한다거나, 의대 교육과정에 한의대 교육과정을 맞춰야 한다는 등의 주장이 이런 맥락에서 제기된다. 하지만 이 ‘차이’는 한의학의 존재이유를 뒷받침한다. 이원화된 의료체계는 국가 입장에서는 효율성에 장애 요소가 될 수 있겠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더 나은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단 두 의료체계가 상호 간의 존중을 토대로 교류와 협력이 가능할 때 보다 나은 의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의료일원화라는 목표에만 매몰되어 한의학이 가진 의료적 가치를 버려서는 안 될 것이며, 환자를 위해 한의학과 양방의학이 어떠한 관계를 가져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 통합의학적 견지에서 바람직한 교류와 협력 모델을 만들어 가야할 것이다. 한국의 의료 상황 속에서 중국식 중의학 모델이 아니라, 미국식 D.O. 모델이 아니라, 한국식 통합의학 모델을 한의계의 적극적인 노력을 통해 구축해 나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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