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절기념 특별좌담] 고구려사 문제를 계기로 본 ‘한의학’과 ‘중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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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절기념 특별좌담] 고구려사 문제를 계기로 본 ‘한의학’과 ‘중의학’
  • 승인 2004.10.0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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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과 중의학은 역사적 맥락이 다른 학문”
잡병·內因 중심의 체질의학 對 온병·外因 중심의 변증시치


참석자 : ▲김홍균(한국전통의학史연구소장·서울 광진구 내경한의원장)
▲김남일(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주임교수)
▲강연석(사회·본지 편집위원)
일시 : 2004년 9월 20일 오후 8시
장소 : 한국전통의학史연구소


올해 들어 우리 사회는 때아닌 역사 문제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정부는 東北工程의 일환을 고구려사를 자국 역사로 편입시키려 하고 있다. 국민적 분노가 높아가는 가운데 한의학계도 차제에 중의학과 한의학을 분명하게 구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에 본지는 4337주년 개천절을 맞이하여 의사학 전문가를 초청하여 ‘고구려사 문제를 계기로 본 한의학과 중의학’의 관계를 조명했다. <편집자 주>


■ 강연석=중국정부가 ‘東北工程’을 추진하면서 고구려사가 중국의 변방민족사로 전락할 위험에 처해 있다. 한편 중국은 많은 인력을 바탕으로 전세계에 TCM(Traditional Chinese Medicine)을 알리고 있다. 한의학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하나?

▨ 김홍균=정치, 경제적으로 화려한 고구려사가 있었다면 그에 상응하는 의학도 있는 것이 당연하다. 더구나 같은 기간동안 수많은 나라들이 점멸하는 중국과는 달리 오랜 역사를 갖는 우리나라는 문화적으로도 우수한 의학이 발전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한국사와 마찬가지로 한국의학사에서도 고대의학사 연구는 일천하다.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의학의 저변이 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할 것이다.

▨ 김남일=전통의학 분야에서 중의학의 동북공정은 이미 시작됐다. 중의학이 TCM이란 이름으로 전세계에 널리 알려진 것은 동아시아 지역 전통의학의 정통성이 자신들에게 있다는 문화적인 노력이었지 결코 과학적인 성과가 입증되어서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반세기 동안 한의학을 과학화해야 한다는 것에만 매달렸지 문화적인 노력은 기울이지 않았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순히 무기를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의식을 바꿔놓는 일이어야 한다. 역사와 전통을 버리고 근대화에 매몰되다 고구려사 문제와 같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진 것처럼 한국의 한의학이 민족의학으로서 정체성과 정통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과학적인 입증방법은 보완적으로 가야 한다.

■ 강=한국 한의학은 동의보감과 사상의학이라고 할 수 있다. 사상의학이 중의학과 다른 것은 분명한데 동의보감을 중의학과 다르다고 하는 것은 어떻게 봐야 하는가?

▨ 김남일=현대 중의학의 특징을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溫病學에 바탕을 둔 外因 중심의 辨證施治 체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실정에는 맞지 않아 그러한 체계로 임상을 하고 있는 한의사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한국한의학은 동의보감에 바탕을 둔 內因과 雜病 중심의 의학이고, 한국 사람들의 체질과 기후, 약재에 맞게 재정리된 의학이다. 동의보감의 이러한 특징은 六氣조차 外感으로 인식하지 않고 內因으로 발생한 질병의 표현으로 기술한 것에서 잘 나타난다. 동의보감에 들어 있는 이러한 인간 중심의 의학관이 동의수세보원의 체질론으로 발전해 나갔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 김홍균=한의학에 대한 역사관의 문제면서 의서를 어떻게 읽고 해석해야 하는가에 관한 방법론의 문제이다. 같은 글자로 표현됐다고 해서 행간에 들어있는 내용까지 같다고 하면 곤란하다. 성리학도 발상지인 중국을 떠나 조선에서 완성되었다. 어디서 들어왔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내재화되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중국에서 들어온 의학이라 하더라도 약재를 우리 것으로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처방도 우리 식으로 발전시켜왔다. 그것이 바로 향약집성방이고 의방유취다. 이런 의학이 내재화되어 정립된 것이 동의보감이다. 약물의 쓰임도 한국에서는 單方을 많이 사용한 독자적인 흐름이 있었고, 처방 하나도 다양하게 응용하고, 수치법제를 보다 세밀하게 기술하고 있다. 최소한 일제시대까지 우리 의학은 이러한 특징이 있었다.

■ 강=고구려사 문제를 계기로 한국의 역사교육과 연구인력, 예산 부족 등이 이야기되고 있다. 의학에는 임상연구, 실험연구, 그리고 의학사 연구라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고 본다. 한의학에서도 한의학의 연구방법과 교육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것 같다.

▨ 김남일=우리에게는 서양의학과 중의학이라는 거대한 경쟁자들이 있다. 분명한 것은 실험연구는 서양의학의 주된 방법이므로 이것만으로는 서양의학과 싸워 이길 수 없다. 대학에서 의사학을 교육하는 목표는 “醫書를 정확히 읽을 수 있는 자질을 길러 뛰어난 임상가를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의서를 읽고, 행간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한의학 전래의 치료방법을 정확히 숙지하는 것은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토대가 튼튼해야 임상연구가 활발히 진행될 수 있고, 실험연구도 설 자리가 마련될 수 있다.

▨ 김홍균=한국한의학의 전통과 우수성을 예비한의사들에게 가르치기 위해서는 의학사, 각가학설 및 여러 의서를 연구하고 교육할 시간과 인력이 당연히 더 배치되어야 한다.

■ 강=WTO 협상을 통해 중의사가 유입될 것으로 전망되는데 국민들의 마음 속에 중의학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기대심리가 높다고 보인다. 한국한의학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또 이와 아울러 국가고시와 학제의 문제가 제기된다. 의사학은 어떠한 입장인가?

▨ 김남일=고구려사가 우리 국민과 조선족의 마음을 떠나면 그것은 바로 중국의 역사가 된다. 중의학 또는 양의학을 보편적인 의학, 또는 우월한 의학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국민들의 의식의 문제이다. 그러한 의식을 돌리기 위해서는 한의학과 중의학의 역사적 맥락을 잘 알아야 한다. 현재의 중의학은 강소성과 절강성의 학문인 溫病學이 발전된 것이다. 동남아와 중국에서는 유행했던 사스가 우리나라에는 발병하지 않았던 것처럼 굳이 온병학을 발전시킬 이유가 없었던 것이 우리나라의 의학환경이다. 때문에 온병학을 기초로 한 중의학은 우리나라에서 한번도 검증된 적이 없었고, 일제시대 이후 들어온 傷寒論 중심의 皇漢醫學 역시 우리나라 국민들에게는 검증되지 않았다.
우리나라 풍토에서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많이 나타나는 질병을, 우리 약물로 치료하여 검증받은 의학은 오직 동의보감과 사상의학이라 단언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한국의 한의학은 동의보감과 사상의학 중심으로 발전해야 한다. 특히 중의사들에게 문호가 개방될 때에는 한국의학사와 동의보감, 사상의학이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다.

■ 강=의료기사 지휘권과 건강보험의 통계자료 준비를 위해 한의질병사인분류를 서양의학의 표준질병분류체계에 맞춰 재편하고 이에 맞춰 국가고시까지 개편하자는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 김남일=한의사의 이익이나 환자 유치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문제이고 근시안적인 해답일 뿐이다. 한의학의 질병사인 분류를 새로이 하고 국가고시를 개편한다는 것은 한의학의 교육을 양방식으로 개편한다는 측면도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의학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양방의 체계를 모방한 교과목과 교실체계에서 비롯되었다. 이것은 93년 한약분쟁 이후 학생들이 한의대 교육과정심의 때 제기한 문제들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오히려 젊은 한의사들이 개원가에서 전통적인 방법으로 돌아가 공부하려는 태도를 높이 평가할만하다.

▨ 김홍균=우선 학문적으로도 서양의학의 질병체계에 맞게 한의학의 질병체계를 분류할 수 없다는 점, 그리고 그러한 분류체계를 임상적으로 부합하게 연구하고 검증할 인력과 기관, 예산이 없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류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중의 변증시치 체계의 내용을 검증없이 수입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주장이라는 점, 마지막으로 이러한 중의 변증시치 체계를 수입하여 표준질병사인분류와 국가고시를 개편하게 된다면 지금 보다도 더욱 한국한의학의 임상현실과 괴리된 기형적인 분류체계가 탄생하게 될 것이고 또 한국한의학 시장을 중의학에게 무장해제 시켜서 내놓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자꾸 나가면 한의학이 왜곡되다 급기야는 한의사 스스로가 의료일원화를 주장하고, 중의학의 아류로 여기게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 강=오랜 시간 토론에 임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한국의사학회의 무궁한 발전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정리 = 김승진 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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