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971 - 『藥錄』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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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971 - 『藥錄』①
  • 승인 2021.07.17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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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answer@kiom.re.kr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동의보감사업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의보감사업단에서는 동의보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고 이를 홍보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해왔다. 최근기고: 고의서산책


藥價時勢 기재한 약재관리 장부

  이번에는 아주 특별한 책 하나를 골라보았다. 일반 진료를 목표로 집필된 의서가 아닌 장부나 문서의 성격을 지닌 책자로 약재시장의 약가현황을 살펴볼 수 있도록 약재별 시세를 기록한 약재장부라 할 수 있다. 정형화된 체제를 갖추고 있지 않을 뿐더러 특별히 지정된 순서나 우선순위도 없이 그저 이 땅에서 산출되는 草材(향약재)와 수입산 약재를 의미하는 唐材만으로 대분하여 구별해 놓았을 뿐이다.

 ◇ 『약록』

 본문은 약재별로 간략하게 기준량과 약가만을 약식 기재해 놓았는데, 각각 굵은 글씨로 적은 약재명 아래 2행으로 나뉜 작은 글씨로 우측 하단에는 큰 단위의 기준량에 대한 가격을 적고 좌측 하단에는 작은 분량의 시가를 간단하게 표시해 한눈에 시세 현황을 찾아볼 수 있도록 나열해 놓았다. 일반적인 초재의 경우, 앞쪽은 매 근(斤)당 약재가격 기준이고 뒤쪽은 매 냥(兩)당 약재가격을 반영하여 기재했다.

  예를 들면, 황기의 경우 약명의 왼쪽 하단에는 알아보기 힘든 약호(ゝ) 아래 ‘一⼽五ト’이라 적혀있고 오른쪽에는 역시 같은 약호 (ゝ) 아래 ‘三ト’이라 적어놓았다. 이 암호 같은 표기를 정자로 풀어 옮겨보면, 약호(ゝ)는 같다는 의미의 ‘한가지 同’자에서 유래한 것으로 같은 의미의 이체자 ‘仝’자를 거쳐 ‘々’, 그리고 모양이 똑같지는 않지만 동일함을 의미하는 필서체 약호 ‘〃’나 ‘ゝ’로 변형해 사용한 것이다.

  그래서 이를 다시 우리가 알아볼 수 있는 문자로 옮겨 적어본다면, 황기는 매 근당 1전5푼이요, 1냥 중량에는 값이 서푼인 셈이다. 같은 방식으로 사삼, 강활, 시호, 세신, 천문동, 오미자, 도인, 감국 같은 초재는 대략 위의 가격대이고 석고, 활석, 우슬, 목통, 신곡, 맥아 같은 약재는 근당 5푼, 냥당 1푼에 불과해서 비교적 저렴한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건갈, 고삼 같은 약재는 조선 팔도 어느 지역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어서인지 1근에 4푼, 1냥에 1푼에 불과해 매우 헐값이다.

  이에 반해 백복령이나 황련, 맥문동, 아교주, 천마, 산조인 같은 약재는 채취가 어려워서인지 냥당 4~5전, 1돈에 5~8푼으로 다른 약재에 비해 비교적 가격대가 고액이다. 더 값이 비싼 고가 약재도 있다. 종창, 악창에 쓰이는 약재로 지치의 싹을 따서 말린 紫草茸의 경우, 1근 당 값이 2냥이요, 1냥쭝을 구입할라 친다면 2전5푼이나 되는 약값을 치러야 했으니 구해 쓰기가 무척 힘들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좀 더 특별한 것은 숙지황이다. 단순히 원료식물이나 채취과정보다는 수치법제를 위한 가공단계가 까다롭고 감모율이 커서인지, 품질에 따라 상중하 3단계로 구분하여 단위와 가격이 각각 다르게 기재되어 있다. 곧 상품은 1봉에 4냥5전, 1냥에 3전5푼이고 중품은 3냥2전과 2전5푼, 小品은 2냥7전과 2전으로 기재되어 있어 세밀하게 구분한다. 이보다 앞서 기재된 생지황 시세가 근에 5푼, 냥에 1푼밖에 되지 않는데 비해 엄청나게 부가가치가 부여된 것을 한눈에 지켜볼 수 있다.

  唐材의 경우, 감초가 첫머리에 등장하는데, 너무 자주 쓰이고 또 크기에 따라 품질차이가 커서 대중소로 구분해 놓았다. 다만 단위는 근과 냥으로 나누었는데 대감초의 경우, 1근에 3냥, 1냥에 2전5푼이어서 만만치 않은 가격인데, 소감초의 경우엔 1냥2전(斤), 1전5푼(兩)으로 크기와 품질에 따라 가격의 고저 폭이 심한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계피의 경우, 채취부위에 따라 肉桂와 官桂, 계피, 계지로 세분하여 가격을 정하고 있다. 관계는 1냥에 4전5푼의 약값을 치러야 했다. 황련은 천황련과 왜황련으로 구분해 놓았는데, 가격대는 중국산인 천황련이 일본산인 왜황련에 비해 2~3배 고가로 거래되었다.

  고가 약재로는 역시 수입재일 수밖에 없는데, 많이 쓰이는 용안육이 냥당 3전, 포부자와 백두구가 8전이나 나가며, 전충과 진서각은 냥당 1냥5돈이나 되니 서민들은 약을 쓸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안상우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동의보감사업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의보감사업단에서는 동의보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고 이를 홍보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해왔다. 최근기고: 고의서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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