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준태 시평] 아직은 낯선 일차의료, 한의계의 이해가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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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준태 시평] 아직은 낯선 일차의료, 한의계의 이해가 필요
  • 승인 2021.09.10 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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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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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jmedi@mjmedi.com


제준태
산돌한의원 원장

2021년 8월 30일부터 일차의료 한의 방문진료 시범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의과는 2019년 12월부터 일차의료 방문진료 시범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시범사업에는 1,348개 한의원이 대상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시범사업이 시작되었음에도 한의계 내에서 일차의료라는 개념은 아직 낯선 편입니다. 막연하게 일차의료를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방문진료에 왜 일차의료라는 말을 붙이는 지도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도 그럴게 일차의료는 일반적인 기존 한국의 의료 현실과 비교해 낯설 수밖에 없는 개념의 보건의료 서비스의 제공 방식입니다.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많아서 익숙하지 않을 뿐더러 교과서의 추상적인 단어들의 나열로는 개념이 명확하게 와닿지 않기도 합니다. 유난히 일차라 들어가는 단어들이 많은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입니다. 2014년 한국에서는 '델파이법을 이용한 일차의료 개념정의: 이차출판'에서 한글로 '건강을 위하여 가장 먼저 대하는 보건의료를 말한다. 환자의 가족과 지역사회를 잘 알고 있는 주치의가 환자-의사 관계를 지속하면서 보건의료 자원을 모으고 알맞게 조정하여 주민에게 흔한 건강문제들을 해셜하는 분야이다. 일차의료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여러 분야 보건의료인들의 협력과 주민의 참여가 필요하다'로 정의하였습니다. 하지만 정의만 듣고 일차의료가 어떤 모습인지 떠올리는 것은 꽤 어려운 일입니다. 다른 설명이 없으면 일차의료기관과 일차의뢰병원, 일차의료 등을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일차의료기관 역시 최초로 접하는 의료기관이고 지역사회의 보건의료를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기 때문입니다.

일차의료기관과 일차의뢰병원은 의료전달체계에서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한국에선 로컬의 의원급이 일차의료기관으로 주민들이 최초로 접하는 의료기관이자 기본적인 의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일차의뢰수준병원은 의료전달체계에서 2차에 해당하는 병원을 말합니다. 반면에 일차의료(primary care)는 일차의료기관과 다른 개념으로 로컬이 아닌 커뮤니티의 개념으로 지역사회의 보건의료를 담당합니다. 지역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보건문제 외에도 방문진료, 순회진료, 검진사업, 영양사업 등 각종 사업들로 지역사회의 건강 수준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보건의료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 과정에서 간단한 의학적 처치나 진료, 필요하다면 병원으로의 이송 등을 담당하는 역할을 합니다. 현재까지 보건소에서 담당하던 업무로 공중보건의 업무를 맡았던 분들이라면 익숙하게 들리는 사업들이기도 합니다.

한국은 전문의의 의원 개원이 가능해 로컬의 진료 역량이 상당히 높은 편이라서 일차의료에 대한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낮았습니다. 일차의료를 위한 지역보건의료시설로 보건소와 보건지소, 보건진료소 등을 설치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의료에 대한 기능을 로컬의 개원가가 담당하고 있는 구조였던 것도 일차의료의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 한 원인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이미 일차의료를 위한 구상들은 있었지만 개인이 개원한 의원급 의료기관이 많고 접근성이 뛰어났기 때문에 일차의료를 위한 시도는 그렇게 성공적이지 않았습니다.

​최근 다시 일차의료가 부각되는 이유는 고령화와 지방소멸 등의 위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지방에도 병원과 의원이 개원할 유인이 컸지만 인구감소와 고령화, 서울로의 집중 현상으로 지방의 의료기관이 줄어들면서 의료인프라는 빠르게 감소하는 상황이고, 서울과 지방의 보건의료수준의 격차 역시 급격히 커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런 상황은 더 가속화될 전망입니다. 지방에 거주하는 것만으로 건강할 권리가 보장 받지 못 할 상황이 예견되고 있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이를 보완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날이 갈수록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의료비 지출입니다. 일차의료로 지역사회에서 정기적인 보건의료를 제공하면 질환의 조기 발견으로 의료비 지출을 좀 더 줄일 수 있고, 간단한 보건 문제들은 일차의료 차원에서 해결하는 등 의원, 병원으로 가서 진료를 받는 횟수를 줄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또 행위별수가제인 의원, 병원 등 의료기관에 비해 매 월 일정한 수준의 월급 형태로 사업비를 지출할 수 있기 때문에 건강보험의 지출을 보다 예측 가능하게 관리할 수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반대로 로컬의 의원급 의료기관들 입장에선 방문횟수를 줄이자는 목적의 사업들은 경쟁이 되는 상황을 피하기 어렵고 의원급 의료기관이 개인이 투자해서 설립한 곳들이란 한국의 특성상 경쟁관계로 보일 수 있습니다. 특히 방문진료나 단순반복 처방을 일차의료 팀에서 반복처방하는 경우 등은 개원가에선 반발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일차의료 방문진료 수가 시범사업은 의료기관에서 방문 진료를 나가는 형태로 수가를 책정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의 일차의료는 개인이 개설한 의원 보다는 지자체에서 설치한 진료 거점으로 찾아오는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그 곳에 고용된 의사들이 인구밀도가 낮고 멀리 떨어진 곳에는 간이진료소를 설치하고 요일을 나눠 진료소별로 순회진료를 하고, 그것보다 인구밀도가 낮은 동네에는 집집마다 방문하여 진료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아마 한국도 인구가 감소하고 병의원이 줄어들고 있는 지역들은 비슷한 형태의 일차의료가 필요해질 것입니다.

​일차의료에 있어 더 큰 문제는 일차의료를 구성하는 팀에는 의료인 외에도 간호사, 물리치료사, 행정 인력 등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이 함께 움직여야 하는데 그 정도 보건의료인력과 보조인력을 팀으로 꾸리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지역사회에 필요한 보건의료가 필요한 곳일수록 팀을 꾸릴 정도의 전문인력을 구하는 것부터 쉽지 않습니다. 현재까지는 군복무를 대체하는 공중보건의들로 보건소에서 방문진료 사업팀을 꾸려 운용하고 있지만 공중보건의 인력의 감소도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방에 비해 각종 문화시설과 편의시설, 높은 삶의 질을 영위할 수 있는 인프라가 보다 잘 갖춰져 있는 수도권으로 가고 싶은 건 당연한 욕구입니다.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만큼 기대할 수 있는 직장과 소득의 수준 역시 수도권으로 쏠릴 수밖에 없습니다. 더 늦기 전에 지방에서 일차의료를 제공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지방은 더 큰 보건의료의 위기를 맞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의 시범사업은 의료기관 중심으로 퇴원 후 재가요양 중인 환자의 관리, 거동이 불편한 사람 등을 대상으로 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지만, 지방에 필수적인 보건의료 서비스의 제공이라는 측면에서 한의계의 역할을 앞으로 계속 고민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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