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한의학’이 아니라 ‘한방’이라 번역한 이유?…지견의 명확한 기원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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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한의학’이 아니라 ‘한방’이라 번역한 이유?…지견의 명확한 기원 위해”
  • 승인 2021.09.16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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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현 기자

박숙현 기자

sh8789@mjmedi.com


▶의학서적 번역하는 한의사① 권승원 경희한의대 교수

조기호 교수 영향으로 일본한방의학서적 번역 시작…책 선정기준은 ‘신규성‧시사성’
◇권승원 교수와 그가 그동안 번역한 서적들.
◇권승원 교수와 그가 그동안 번역한 서적들.

[민족의학신문=박숙현 기자] 한의사들은 한의학의 전문가이지만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양의학, 일본한방의학, 중의학 등 다양한 의학지식이 필요하다. 이러한 다양한 의학지식을 쉽게 국내에 전파하기 위해 외국의학서적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일에 뛰어든 한의사가 있다. 이에 본지에서는 ‘의학서적 번역하는 한의사’를 주제로 인터뷰 시리즈를 기획하며, 그 첫 주자로 일본한방의학 서적 22권을 번역한 권승원 경희한의대 교수에게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처음 의학서적 번역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전문수련기간 동안 다양한 일본 한방의학서적을 번역 출간해온 조기호 경희한의대 교수에게 배우면서 자연스레 일본 한방의학서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고등학교에서 일본어를 전공했기 때문에 일본어 자체에 큰 부담이 없었던 것도 번역을 시작한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원래는 교수님이 소개해주신 책을 읽어보는 수준이었는데, 2011년 일본에서 한방약을 활용하는 신경외과 의사들이 출간한 ‘뇌신경질환의 한방치료’라는 책을 조기호 교수가 번역했고, 그 때 번역에 참여한 것이 내 번역 역사의 시작이다. 이후 21권을 더 번역하여 현재 총 22권을 번역했다.

 

▶이 책을 번역해봐야겠다고 생각하는 본인만의 기준이 있나.

크게 두 가지 기준에서 책을 선택한다.

첫째는 신규성이다. 한국에는 없는 형태의 처방사용법을 제시하고 있는 책이면 일단 선택한다. 니미 마사노리 선생의 책을 번역한 ‘플로차트 한약치료 1, 2’가 바로 이에 해당했다. 당시 한국에서는 쉽게 보기 어려운 플로차트 방식의 한약 선택법이었기 때문에 이 책을 만나자마자 번역을 시도했다.

둘째는 시사성이다. 한국 한의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하면 번역한다. 오노 슈지 선생의 책을 번역한 ‘한방내과 임상 콘퍼런스’가 그런 책이었다. 한약처방법을 공부하다보면 어떤 한의사는 A라는 방식을, 다른 한의사는 B라는 방식을 사용한다고들 한다. 내가 항상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것이 한의사들의 토론은 A라는 방식을 사용하는 한의사들끼리만, B라는 방식을 사용하는 한의사들끼리만 이뤄진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중의학, 일본전통한방, 경방의학 등 모두 다른 방식으로 공부한 의사들이 한 케이스를 두고 함께 질의응답하며, 의견을 좁혀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경우에 따라선 같은 대상을 다른 용어로 부르는 것을 서로 알아가는 과정도 볼 수 있었다. 이런 토론이 우리 한의계에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소개했다.

 

▶번역작업에 있어서 본인만의 가치관이 있다면.

특별한 가치관은 아니지만, 내가 번역한 책의 ‘국적’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일본책을 번역할 때, 꼭 ‘한방’, ‘한방치료’라는 말을 쓴다. 중국에서 나온 자료라면 ‘중의’라는 말을 꼭 적는다. 그래서일까? 몇몇 선생님들은 내 글을 보고 ‘원문에 한방이라고 했다고 그대로 한방이라고 번역했네’라는 지적을 하는 모습도 자주 봤다. 사실 나는 의도적으로 그렇게 번역한다. 원저자가 한국 한의학을 다뤄본 적도 배워본 적도 없는데 ‘한약’, ‘한의학’이라는 말로 번역할 수는 없어서다.

전통동양의학은 중의학, 한의학, 일본한방의학으로 발전을 했다. 중의학도 전통동양의학으로는 보기 어렵다. 한의학, 일본한방의학 역시 모두 각 나라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발전했다. 앞으로 세 의학은 서로 교류하며 상호보완적 발전을 해갈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한 지견을 우리 것으로 받아들일 때, 이 지견이 어디서 왔는지 그 기원을 명확히 해야한다는 것이다. 원래 내 것과 받아들인 남의 것을 명확히 구분해가며 받아들여야 새로운 우리 것의 발전적 모습을 보다 명확히 강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번역해온 책 중에서 가장 번역작업이 어렵거나 기억에 남는 책이 있다면.

가장 번역이 어려웠던 책은 플로차트를 쓴 니미 마사노리 선생의 ‘병원, 가기 전에 읽어야 할 책(원문제목: 患者必讀)’이었다. 이 책은 니미 선생이 환자들에게 당부하는 수필 같은 책인데, 그 분만의 독특한 말투를 한국어로 최대한 녹여내는데 많은 공을 들였다.

 

▶일본한방의학서적의 번역작업에 다수 참여해왔는데, 이 중 한의사들의 일독을 추천하는 책이 있다면.

독자들에게 최근 출간한 후쿠토미 토시아키 선생의 ‘한방 123처방 임상해설’을 가장 추천드리고 싶다. 앞서 언급한 번역서 선정의 기준에 해당하는 신규성과 시사성 모두를 갖춘 책이어서 그렇다. 이 책은 근대 일본한방의가였던 야마모토 이와오 선생의 한방처방 선택방법을 그대로 다룬 처방해설서다. 후쿠토미 토시아키 선생은 그 직전 제자다. 야마모토 이와오식 한방은 최근 일본 의사들이 가장 많이 채용하는 처방 선택법이다. 처음 등장했을 당시에는 일본동양의학회에서도 이단 취급을 받았지만, 최근에는 일본동양의학회 증례보고에도 야마모토 이와오식 처방이 수도 없이 등장하고 있을 만큼 전세가 역전되었다. 가장 큰 특징은 전통 동양의학식이 아닌 서양의학적 진단과 병태생리, 그리고 여기에 전통 동양의학의 개념을 결합한 방식의 처방해설을 한다는 것이다. 요즘 일본에서 가장 재현성이 높은 처방선택법으로 각광을 받고 있으니 한 번쯤 읽어보면 좋겠다.

 

▶앞으로 번역하고 싶거나 번역 출간을 준비 중인 책이 있다면.

최근에는 몇 가지 과제를 수행하느라 번역에 집중하지 못해서 작업이 늦어지고 있다. 현재 번역 중인 책으로는 도쿄 기타사토 동양의학연구소에서 출간된 ‘한방처방 가이드’, 예전 조기호 교수님께서 출간하셨던 테라사와 카츠토시 선생의 ‘증례로 배우는 동서의학(원저: 和漢診療學, 당시 2판)’의 3판, 마지막으로 일본 서적은 아닌데 새로운 치매 치료법을 제안하고 있는 미국 데일 브레드슨 박사의 ‘알츠하이머의 종말 프로그램’도 번역 중이다. 이 외 번역을 마치고 출판사에서 작업 중인 책으로 일본의 한 산부인과 의사가 출간한 임신 시 한방약 활용법을 다룬 책도 있다. 앞으로도 많은 분들이 잘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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