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재의 임상8체질] 小小(so 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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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의 임상8체질] 小小(so so)
  • 승인 2021.10.16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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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

이강재

mjmedi@mjmedi.com


8체질의학을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_37

예술가와 학자(연구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 판별점에 광기의 유무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예술가의 작품 속에 광기가 표현되었다고 해서 해당 작품의 평가에서 큰 결점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예술가의 광기는 오히려 독창성 창의성으로 칭송되기도 한다. 하지만 학자의 연구물에서는 다르다. 광기는 연구를 향한 열정으로 다르게 표출될 수도 있지만 종종 엄정함을 방해하고 편협한 판단을 조장한다.

 

사리 분별

요즘 나의 화두는 ‘사리 분별’이다. 2년 후면 환갑이 되는데 과연 언제까지 사리 분별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예술이든 연구이든 나의 몸과 마음을 통해서 치르는 것이니 사리 분별은 결국은 나의 몫이다. 어떤 학자의 연구물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평소 그의 삶의 태도에서 상식적인 사리 분별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있다면, 그 이후에 생산된 그의 연구물은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90세가 넘은 나이인데도 쉬지 않고 영화를 만들고 있는 영화감독이자 배우인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90이 넘도록 일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기자가 물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람들이 나에게 토마토를 던지기 시작할까? 그들이 나에게 토마토를 던지면 이제 그만 둘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겠지만, 아직 그때는 오지 않았다고 본다. 실패작들을 몇 개 내놓으면 그때 관객들이 알아서 그만두라고 나에게 알려줄 것이다.” 나는 그가 여전히 싱싱한 사리 분별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싶다. 그의 정치적인 취향 쪽은 약간 유보하고 말이다.

2001년에 911사태가 발생했을 때, ‘이슬람세력을 지구상에서 말살시킬 수 있는 방안을 가지고 있다’면서 백악관에 서신을 보내자고 매우 진지하게 말씀하던 선생이 계셨다고 한다. 911사태도 광기의 결과겠지만 이 선생이 품은 생각도 결국은 광기이다. 나는 이 말을 전해 듣고 이 선생께서 2000년대에 하신 말씀은 모조리 믿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결정하고 나니 고민도 줄어들고 공부의 부담이 훨씬 가벼워졌다.

 

관계

우주에 존재하는 생명체 물체 물질은 모두 관계 안에 놓여 있다. 저마다 외따로 존재할 수는 없다. 체질론이란 바로 관계를 보는 학문이다. 관계란 서로(相 mutual)에게서 쌍방향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동의수세보원』도 처음부터 끝까지 관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당연하지만 태소음양 사이의 관계이다. 『동의수세보원』은 또 사상인론이기 때문에 첫 두 문장을 ‘천기유사(天機有四)’라고 시작할 때부터 사상인이 배경에 깔려 있다. 이청천시(耳聽天時) 폐달사무(肺達事務)라는 규정에 이미 태양인이 상정되어 있다는 말이다.

 

四象

지금까지 그 어떤 사상의학 연구자도 동무 공이 짜놓은 ‘넷’이란 생각의 구조 속으로 명확하게 들어가 보지 못했다. 차라리 복잡한 것이 더 쉽다. 구조가 넷으로 축약되고 추상화되어 단순해지니까 훨씬 어렵다. 그리고 동무 공이 자신만의 개념을 담아 기존의 용어를 새롭게 비틀었으니 이 또한 익숙하지가 않다.

넷이란 구조가 내포한 위험은 또 있다. 동무 공의 생각을 읽기가 어려워지니까, 방향과 방법을 바꾸어서 자신이 구축한 개념 안으로 동무 공의 용어를 가지고 온다. 그런 연구자마다 자의적인 해석의 여지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아전인수이다.

『동의수세보원』 「성명론」의 첫 두 문장인 천기(天機)와 인사(人事)를 보라. 동무 공이 남긴 자주(自註)가 있음에도 얼마나 해석이 분분한가. 천기는 이목비구(耳目鼻口)가 청시후미(聽視嗅味)하는 것이고, 인사는 폐비간신(肺脾肝腎)이 달합립정(達合立定)하는 것이다. 『동의수세보원』에서 보여주는 동무 공의 사상인론은 시종일관 넷이고 철저하게 사람 중심이다. 천기 속에 우주 창조라는 거창한 개념은 없다. 「성명론」은 창세기(genesis)가 아니란 말이다. 그냥 사람을 둘러싼 환경을 말한 것뿐이다.

 

믿음

믿음이란 무엇인가. 내가 40대 초반에 만났던 60대 중후반의 어르신이다. 경북 풍산에 있던 안동 권씨 집안에 시집을 갔는데 아이를 낳지 못했다. 결국엔 작은집 맏이를 아들로 들여서 키웠다. 젊은 시절부터 시골교회에 열심히 다녔는데 자신의 신앙에 확신이 없었다. 부흥사가 와서 교회가 통째로 들썩여도 자기에게는 은사가 내리지 않았다. 어느날 새벽기도를 마치고 목사에게 용기를 내어 물었다. “목사님 하나님을 믿는다는 게 과연 무엇입니까? 저는 그걸 모르겠습니다.” 목사는 차분하게 말했다. “아침에 해가 뜨고 저녁에 해가 지고, 강물이 흘러왔다가 흘러가고, 여름에 꽃이 피었다가 지고, 구름이 떠 있고 새가 날아다니고,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믿으면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젊은 집사님은 그 순간 믿음에 대한 깨달음이 생겼다고 진료실 의자에 앉아서 담담하게 내게 말했다. 그리고는 그 말씀을 들은 내 가슴을 서늘한 기운이 뚫고 지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래 전 그 분의 깨달음을 따라 나도 덩달아 통한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믿는 것에 대한 역사이다. 믿음이란 사람에게 있어서 아주 상위 레벨에 위치한다. 어떤 특정한 믿음이 삶 전체를 지배할 수도 있다.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신앙으로 표현되는 종교이다. 다시 표현하면 믿는 것이 충돌한 역사라는 말이다. 수많은 종교 분쟁과 전쟁이 지나갔고 진행형이며, 현대에는 이념(Ideologie)의 대립과 충돌이 있었다.

 

삶은 도(道)이다. 그 길을 따라가면서 배운다. 어차피 삶은 혼자서 가는 길이니 내가 경험하여 쌓은 판단과 개념과 믿음을 남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누구는 0을 믿고, 누구는 4를 5를 8을 16을 64를 믿는다. 누가 정답을 지녔는지 결정할 판정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툴 필요도 없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한다.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눈은 거짓이 없다. 아무리 능수능란한 사기꾼이라고 하여도 자신의 눈빛을 속일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모두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요즘 환자를 관찰하는 것이 훨씬 흥미로워졌다. 망진이란 우선 먼저 얼굴 전체를 살피는 것이니 전보다 어려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나, 환자들의 눈만 바라보게 되는 요즘 진찰에 아주 집중도가 높아졌음을 느낀다. 초진이 아니고 재진이라면 환자가 문을 열고 들어와서 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에 바로 알 수 있다. 그가 나의 지난 치료에 만족했는지 불편했는지. 그리고 그의 컨디션이 어떤지.

그리고 마스크의 좋은 점이 또 있다. 나는 감수성이 예민해서 감정의 변동이 얼굴 표정에 쉽게 드러나는 편인데 그것을 감출 수 있어서 좋다. 환자들은 나처럼 눈을 읽으려고 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위드 코로나

나는 지난 6월 24일에 나간 〈1289호〉에 “지구의 생태환경과 질서를 주도하는 세력은 인류가 아니라 바이러스인지도 모른다. ~ 변이는 핵심이 아니다. 변이는 의과학자들의 변명일 수도 있다.”고 썼다.

인류는 지난 2년간 코로나19에 당했다. 그리고 ‘위드 코로나’가 제창되고 있는 이 순간, 거대 제약사의 시장 지배력만 높여주었을 뿐 결과적으로 아무 것도 얻은 것이 없다. 백신 부작용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불을 붙일 지경이지만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그것은 코로나19 시대의 금칙어이다. 오로지 개인의 몫이다.

 

KBP+KZ×3

코로나19 백신접종이 본격화된 후 여러 가지로 불편한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들을 만나게 된다. 중증인 분이야 즉시 큰 병원으로 갈 테니 내가 만난 증상은 비교적 소소했다. 처음에는, 명치가 답답하고 소화가 안 되고 체한 것 같고 입맛도 없고 메슥거리거나 약간 어질어질하기도 한 소화기계 증상 같은 것에 일반적으로 부계질환에 쓰는 체질침 처방을 쓰거나.

마치 담이 결린 듯이 등과 가슴과 허리 또는 옆구리가 뭉친 것 같고 욱씬거리기도 하고 쿡쿡 쑤시는 것도 같은 근골격계 증상 같은 것에 통증 치료를 하거나.

힘이 없고 의욕도 없고 자꾸 잠만 오고 어지럽고 머리도 무거운 무력증에 활력방으로 조치해 보는데도 평소의 경험과 달리 그다지 뚜렷하게 개선되지를 않았다.

심란하고 가슴도 두근거리고 답답하기도 하고 머리도 멍하고 잠도 깊지 않은 자율신경실조 증상을 가진 환자분을 치료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이상의 증상들을 가진 환자들에게 공통점이 있었다는 것을. 코로나19 백신을 맞은 후에 저마다 이런 증상들이 생겼던 것이다.

그래서 적합한 처방을 찾아냈다. 체질침 처방을 알파벳으로 표기하는 것은 바른 방법은 아니지만, 처방의 단계가 낮을 때는 로마자로 표기하는 것보다 처방이 가진 의미를 전달하기가 더 쉽다. 처방은 [KBP + KZ×3]이다.

KBP를 551 수리로 체질측에 먼저 시술하고, 반대쪽에 KZ를 51로 3배방으로 시술한다. KBP는 흔히 바이러스방으로 불리고 있다. 그래서 흔히 KBP를 쓰면 바이러스를 죽인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감기 독감 대상포진 사마귀 같은 바이러스성 질환에 쓰이니 더 그렇다. 체질침 처방은 몸을 조절한다. 구체적으로 몸의 관계를 조절하는 것이다. 침을 통해서 몸의 관계가 좋아지면 질병이 빨리 지나간다.

KZ는 장계염증방이다. 이 처방을 3배방으로 하면 흔히 간치료라고 하거나 해독방이라고 부른다. 장계염증방을 3배로 주방으로 하고 부방으로 정신방을 상초방으로 하면 자율신경조절 처방[KZ×3 + KPa]이 된다.

코로나19 백신을 맞았고 위에 열거한 증상을 보인다면, 체질감별에 어려움이 없는 선생님이라면 이 처방으로 해보실 것을 권한다. 이 처방이 가진 의미는 ‘혼란스러워진 면역계를 바로잡는다’로 이해하면 되겠다.

 

이강재 / 임상8체질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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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기 2023-05-08 21:31:51
장계방51×3 +정신방a 일때 부방 수리도 51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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