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代名醫醫案 (438) - 尹用彬의 醫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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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名醫醫案 (438) - 尹用彬의 醫案(1)
  • 승인 2023.07.2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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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김남일

southkim@khu.ac.kr

경희한의대 교수로 의사학을 전공하였다. 현재 한국의사학회 회장으로 역임하고 있다. 최근 기고: 근현대 한의학 인물사, 명의의안


産後風案
윤용빈의 산후풍안을 소개한 1976년 행림지 10월호의 논문
윤용빈의 산후풍안을 소개한 1976년 행림지 10월호의 논문

1972년 1월 중순경. 이른 새벽에 문이 흔들려 나가보니 허술한 촌노인이 수심 깊은 표정으로 급히 왕진을 청한다. 파주군 적성면 설마리라는 깊은 산중에 火田을 일구는 토담집으로 안내한다. 방바닥에 맨땅에 헤어진 잘자리를 깔았고 그 위에 누운 며느리 젊은 여인은 몹시 허탈된 상태에서 생을 체념한 듯 눈만 감고 있는 것이다. 産後에 虛가 極하여 類中風에 의한 右半身不遂가 되어 있는 것이다. 진찰을 끝내고 노인을 앞세우고 歸院했을 때는 이미 오후 3시가 다 된 후였으므로 오후 진료는 이것으로 끝난 것이나 다름 없었다. 十全大補湯에 鹿角과 黃精을 가하여 10첩을 지어주었다. 그 추운 날씨 아침과 점심을 굶어가며 20여리를 도보로 갔다 왔는데. 왕진비와 약값은 없다고 해서 받지 못했다. 1972년 10월 하순경 한의원에 이날의 노인과 며느리가 찾아와서 큰절을 하면서 자초지종을 말하여 기억이 났다. 그들은 사례품으로 떡, 엿, 밤, 닭 1마리, 술 한병 등을 한보따리 들고 찾아온 것이었다. 본인은 仁術의 보람을 이날 처음 느꼈다. (尹用彬, 「한방임상경험록(三例)」, 『杏林』제1권 제5호, 1976년 10월호)

按語) 尹用彬先生(1940〜2006)은 경희대 한의대를 11회로 1962년 졸업하고 원광대 대학원을 수료한 후 원광대 한의대 강사를 역임하였다. 그는 경기도 동두천시에서 구인당한의원 원장으로 활동하면서 대한한의학회 이사, 민족사바로찾기국민회의 이사 등의 활동을 하였다. 위의 醫案은 1972년 교통이 좋지 못한 시기 화전민촌까지 20리를 걸어서 왕진을 하여 산후풍이 들은 젊은 여성의 병을 치료한 경험을 적은 것으로 十全大補湯에 鹿角, 黃精을 가한 처방을 사용하여 치료하고 있다. 왕진비도 약값도 받지 못했지만 환자가 10개월후 선물을 들고 찾아와서 큰절을 하면서 감사를 표하여 한의사로서 가장 보람있는 순간이었다고 추억하였다. 그는 이 순간을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적고 있다.

 

김남일 /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김남일
경희한의대 교수로 의사학을 전공하였다. 현재 한국의사학회 회장으로 역임하고 있다. 최근 기고: 근현대 한의학 인물사, 명의의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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