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고령 뇌졸중 환자의 다약제사용에 대한 한의진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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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고령 뇌졸중 환자의 다약제사용에 대한 한의진료 (3)
  • 승인 2023.08.23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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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승원

권승원

mjmedi@mjmedi.com


-한의치료를 활용한 다약제사용 조정의 패러다임 전환-
권승원 / 경희대학교한방병원 순환신경내과 부교수
권승원
경희대한방병원
순환신경내과
부교수

1. 고령 뇌졸중 환자의 다약제사용 상태

고령 뇌졸중 환자는 뇌졸중이라는 질환 그 자체만으로도 다약제사용 상태에 놓이기 쉽다. 뇌졸중 환자들은 뇌졸중 자체에 대한 재발예방, 위험인자에 대한 관리, 뇌졸중 이후 겪게 된 각종 증상에 하나하나 대처해가야만 한다. 허혈뇌졸중의 경우, 뇌졸중 예방을 위해 항혈소판제 또는 항응고제를 한 개 이상 꼭 복용하게 된다. 이와 함께 뇌졸중 발생의 위험인자에 해당하는 고혈압, 당뇨병, 이상지질혈증, 심방세동 등의 질환에 대한 대처를 위해 또 다시 약제를 복용한다. 이 뿐 아니다. 뇌졸중 이후 발생한 우울, 수면장애, 배뇨장애, 감각장애(신경통 포함), 연하장애 등에 대처하기 위해 다시 또 약제를 사용한다. 그렇다 보니 뇌졸중 환자들은 자연스레 다약제사용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령 뇌졸중 환자의 다약제사용 상태는 어떻게 조정해가야 할까? 뇌졸중 자체에 대한 재발예방이나 위험인자 관리는 영국의 Martin Duerden 박사가 언급했던 소위 “다약제사용은 필요악(Polypharmacy is a necessary evil)”에 해당하는 상황이므로 쉽게 조정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각종 증상 대처를 위해 사용하게 되는 약제는 상황이 다르다. 이러한 약제들은 대안을 고려해 볼 여지가 있다. 바로 조절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뇌졸중 환자에서 약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대부분 증후 해결에 활용된 약제들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뇌졸중 환자의 우울, 수면장애, 감각장애에 주로 사용되는 삼환계 항우울제, 항정신병약, 항전간제, 벤조디아제핀계 수면제는 ‘과진정’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 배뇨장애에 관해서도 사용되는 항콜린제는 고령자에서 인지기능저하, 섬망, 변비 같은 부작용을 주로 일으킨다. 연하장애 시 영양공급을 위해 활용하는 비위관(levin tube) 유발 위식도역류질환에 쓰는 프로톤펌프억제제는 장기 사용 시, 골다공증 위험성이 증가하여 고령자에서 낙상 시 골절 우려를 키우고 만다. 그런데 만약 그 효과를 대체할 수 있는 치료법이 있다면? 그래서 지금 사용되고 있는 약제로 인한 위험요소가 사라질 수 있다면? 그러면서도 사용할 약제의 개수를 줄일 수 있다면? 이 약제들은 필요악(necessary evil)이 될 수 없을 것이며, 그 대안 치료법이야말로 고령 뇌졸중 환자의 다약제사용 상태에 대한 최적의 대처법이 될 것이다.

 

2. 그 치료법은 바로 “한의치료”

한의학은 “증후학” 위주의 구조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많은 의료인들이, 심지어는 한의사들도, “증후학”이라고 하면 매우 열등한 구조를 갖춘 의학체계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하지만, 필자는 그러한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질환” 위주의 의학은 진단명이 명확하면서, 그 진단명에 따른 명확하고 유효성 높은 치료법이 존재할 때 큰 의의를 갖는다. 곧 근거기반의학(evidence based medicine, EBM)을 하기에 최적이다. 하지만, “질환” 위주의 의학은 첫째, 진단법이 명확하고, 둘째, 그에 기반하여 적용할 수 있는 수준 높은 근거를 갖춘 치료법이 있다는 조건을 모두 만족하지 못할 경우 사실상 제대로 된 치료계획을 수립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하지만, “증후학”은 다르다. “환자의 호소”에 초점을 맞추어 치료계획을 수립하므로 진단명이 명확하지 않더라도 환자의 호소에 맞춘 치료법 구상이 가능하다. 또한, 다양한 인자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하게 된 문제에도 “증후”에 집중하여 나름의 원인을 찾아 치료법을 선택하므로 충분히 적용이 가능하다. 필자는 그런 측면에서 “증후학” 위주의 구조는 최근 EBM 이상으로 주목받고 있는 서사기반의학(narrative based medicine, NBM)에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고령자의 호소는 대부분 단일 질환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기에 결국 증후학적 측면에서 접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많다는 것이다.

한의치료는 바로 이러한 특성을 갖춘 한의학의 치료도구이므로 고령 뇌졸중 환자의 각종 증후에 대처하는 적합한 대안이 될 수 있다. 특히 고령 뇌졸중 환자가 경험하게 되는 각종 증후는 단순히 뇌졸중만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 아니다. 고령자만의 신체특성, 심리상태 등이 복합적으로 아우러져 발생한 것이다. 그만큼 복잡하다. 따라서 증후학적 접근이 될 수밖에 없다.

한의치료에는 한약, 침, 뜸, 부항, 추나 등의 다양한 도구가 활용되는데, 그 중 필자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도구는 바로 한약이다. 한약은 각 처방이 멀티컴파운드(multi-compound)로 구성되며 멀티타깃(multi-target)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한 가지 처방이 다양한 증후를 조절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팔미지황탕은 고령 뇌졸중 환자의 각종 통증, 비뇨기문제는 물론 인지기능, 기력저하로 인한 우울감 등에 적용이 가능하다. 반하후박탕 역시 연하장애 환자의 흡인폐렴 예방, 소화관 이상으로 발생한 위식도역류질환, 여기에 우울증에까지도 응용이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한 가지 처방으로 다양한 증후에 대한 약제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림 1을 보자. 다양한 문제로 각종 진료과에서 약을 받아야 할 환자에게 팔미지황탕을 활용하면 한 가지 처방으로도 대처가 가능하다. 바로 이전 항목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증후에 대한 약제의 효과를 대체 가능하며, 사용할 약제의 개수도 줄일 수 있는 대안이 되는 것이다.

그림 1. 멀티타깃 한약처방이 다약제사용 상황에 유리한 이유

 

3. 그런데 혹시 한약이야말로 다약제사용인 것은 아닌지? 아니다!

필자가 위와 같은 내용을 언급하면 누군가는 “한약이야말로 전형적인 다약제사용이다. 팔미지황탕은 벌써 약제만 해도 8개 아닌가! 각 약재의 성분 수는 말할 필요도 없고!”라고 반문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한약처방의 특성을 간과한 의견이다. 한약은 멀티컴파운드로 구성되지만, 그 멀티컴파운드로 구성된 하나의 처방이 한 가지 셋트로서 작용하며, 그 셋트가 다양한 적용범위를 갖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한약처방셋트의 특성은 실험연구를 통해서도 확인되었다. 국내에 “플로차트 한약처방”의 저자로도 알려진 일본의 니미 마사노리 선생은 심장이식수술을 시행한 마우스의 이식 거부반응 억제에 한약처방셋트인 시령탕(소시호탕 + 오령산)이 아주 유효함을 확인한 뒤, 시령탕을 구성하는 한약재를 하나씩 뺀 채 동일한 실험을 진행했는데, 시령탕에서 구성 한약재 중 단 하나라도 빠진 경우에는 원래의 시령탕과는 완벽히 다른 효과를 보임을 확인하여 보고했다1. 시령탕을 복용했을 때는 모든 마우스가 100일을 넘겨 생존했지만, 한 가지 한약재라도 빠진 경우에는 생리식염수를 복용한 마우스와 동일한 수준의 생존기간을 보였던 것이다. 이는 시령탕의 효과가 각 구성 한약재 효과의 단순 총합이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로서 하나의 셋트로 구성된 한약처방은 다양한 효과를 내는 한 가지 약제로 보아야 함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따라서, 한약처방셋트를 활용하면 고령 뇌졸중 환자가 보이는 다양한 증후에 하나의 약제로 대처할 수 있는 것이다.

 

4. 한의치료를 활용한 다약제사용에 대한 새로운 치료 패러다임

한약치료 외에도 한의치료에는 다양한 비약물요법이 있다. 바로 침구치료, 부항치료, 한방물리요법 등이다. 이 비약물요법을 적극 활용한다면 굳이 약제를 사용하지 않고도 다양한 증후의 개선을 도모할 수 있다. 2020년 1월 미국의 메디케어에서 만성요통에 대한 침치료를 보험적용 대상에 포함시켰는데, 이런 움직임 역시 약제를 사용하지 않고도 증후를 개선할 수 있는 효과에 주목한 것이 아닐까 한다.

또한, 고령 뇌졸중 환자가 호소하는 다양한 증상, 증후에 대한 한의치료의 적용은 이전 기고에서도 지적했던 약제가 사용되었던 근원적 이유를 간과했던 기존의 평가기준 적용법과는 달리(2편 참조), 환자의 호소, 곧 “증후”에 집중함으로써 약제 사용의 근원적 이유를 해소하면서도 약제 사용수는 급격히 증가하지 않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따라서, STOPP와 같은 평가기준을 적용하여 환자에 대한 복약지도와 교육을 시행하면서(PIMs에 해당하는 약제, 이상반응을 일으킨 약제의 중단), 환자가 느끼고 있는 불편감에 대해서는 한의치료를 적용하여 그 자체를 해소해가는 방식으로 고령자의 다약제사용 상태에 대처해 볼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을 적용한다면, 복약지도 이후, 환자가 다시금 불편감을 느껴 재차 문제가 되었던 약제를 사용하게 되던 과거의 한계를 최대한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필자는 이것이야말로 “다약제사용에 대한 새로운 치료 패러다임”이라고 생각한다(그림 2).

그림 2. 한의치료를 활용한 새로운 다약제사용 조정 패러다임

 

참고문헌

1. Zhang Q, Jin X, Uchiyama M, Yakubo S, Niimi M. Impact of sairei-to and its individual constituents on cardiac allograft survival. J Heart Lung Transplant. 2010 Jul;29(7):818-20. doi: 10.1016/j.healun.2010.01.016. Epub 2010 Apr 9. PMID: 2038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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